'석기시대'의 출구에서 386의 역사를 복기하다
'석기시대'의 출구에서 386의 역사를 복기하다
  • 이원우
  • 승인 2014.03.0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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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한국 467호 문화브리핑
 

<386> (남정욱 著 북앤피플 2014)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이석기는 1962년생이다. 82학번. 얼마 전 내란음모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다.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 같은 이 386은 ‘당연히’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다.

작가 남정욱은 1966년생이다. 85학번. 겉으로만 봐서는 이석기와 별 다를 바 없는 386세대로 보인다. 하지만 남정욱은 새 책 ‘빠이 386’에서 이석기를 비롯한 386세대에 직격탄을 날린다. 언뜻 이 풍경은 386이 386을 부정하는 자학적 장면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386세대는 육체의 상태가 아닌 마음의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386을 정의하는 남정욱의 관점은 흥미롭다.

“386의 특징을 꼽으라면 반미, 친북 민족주의, 반(反) 대한민국 정서다.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이 책을 썼다. 시간이 흘렀다고 386을 486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해괴한 발상이고 잘못된 표현이다. 위에 적은 세 가지가 386의 기본 정서였고 그 정서에 호응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386이다.”

현대인들은 1977년 우주탐사선 보이저호에 실렸던 당시 최첨단 컴퓨터보다 7500배 가량 속도가 빠른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다. 이제 아무도 386 컴퓨터를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386세대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흔하게 관찰된다. 느닷없이 안녕하냐며 대학교에 대자보를 붙였던 이들도, RO를 조직해서 KT 혜화전화국 등 주요 거점과 시설을 파괴하고 싶었던 이들도 (출신과 연령은 다르지만) 모두모두 386이다.

‘은밀하고 발칙한 남한 좌익 운동의 절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386의 기원을 면밀하게 추적한다. 문체는 재기발랄하지만 목차는 논리적이다. 386의 본질인 반미, 친북, 反대한민국에 각각 하나씩의 챕터를 할당했다. 그리고 2부로 넘어가선 이들이 보여줬던 찬란한 사건들의 본질을 해부한다. 일심회 사건, 실천연대, 왕재산 사건, 경기동부연합, 그리고 이석기 RO에 대한 얘기들이다.

책의 전반부가 386의 본질을 알기 쉽게 해부했다면 후반부는 치밀한 자료들을 제시하며 생동감을 높인다.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비롯한 한국 현대사의 주요 국면들을 재치 있게 해석하는 문장들도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그는 최근 ‘편견에 도전하는 한국 현대사’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1부와 2부의 중간에는 왕년의 ‘프로 386’ 황성준 본지 편집위원의 인터뷰도 수록됐다.

보수 진영엔 언제나 자료가 넘친다. 어떤 의미에선 너무 많다. 그러나 자료가 서 말이어도 꿰어야 팩트다. 누가 그 자료들을 흥미롭게 엮어서 독자들이 쉽게 삼킬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주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남정욱 교수는 전작 ‘빠이 전교조’에 이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료를 꿰어내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능력을 입증했다. ‘석기시대’는 끝나가지만 386의 시대는 여전히 진행 중인 지금,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런 문장가가 더 많이 필요하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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