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서관의 겉과 속
서울도서관의 겉과 속
  • 이원우
  • 승인 2014.03.2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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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1년 반 … 특정세력의 ‘숙주’ 되지 않으려면
 

2012년 10월 26일 개관한 서울도서관은 광장으로 상징되는 시청 앞에 ‘책’이라는 새로운 테마를 제시했다. 1926년에 준공돼 오랫동안 서울시청사로 사용된 경성부청 건물(등록문화재 제52호)은 이제 27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서울도서관(관장 이용훈)이 됐다.

오세훈 前 시장 시절부터 도서관 용도변경이 추진돼 4년간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장 자리는 박원순 현 시장에게로 넘어갔다. 정치는 요동쳤지만 지상 4층, 지하 3층에 연면적 1만8711㎡짜리 도서관 개관은 계속 추진됐다. 개관 1년 반이 지난 서울도서관의 겉과 속을 들여다본다.

접근성은 아주 좋다. 지하철 시청역 5번 출구로 나오면 곧바로 보이는 ‘그 건물’이다. 주로 약속장소로서만 기능했던 옛 시청건물의 간판이 ‘서울도서관’으로 바뀌어 있다. 서울도서관은 이미 개관 100일 만에 방문객 70만 명을 돌파했다. 요즘에도 하루 평균 8000여 명의 국내외 방문객들이 같은 문을 열고 있다.

‘광장에서 책 읽기’

이 장소에 도서관을 개관한 것은 ‘파격’으로 평가 받았다. 보통의 도서관과는 달리 시청 앞 광장은 소음에 그대로 노출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땅 값이 쌀 리도 없을 뿐더러 문화재 건물까지 쓰고 있으니 알고 보면 2중 3중의 파격이 서울도서관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광장 주변에서 대규모 시위라도 일어났다 치면 책이 과연 제대로 읽힐지 의문스럽다는 우려도 있다.

도서관 디자인의 미학은 흔히 아래층과 위층을 잇는 방식에서 발현된다. 서울도서관의 경우 일반열람실 1층과 2층을 터서 5미터 높이의 17단 벽면서가를 만들어 ‘생각마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식 속에 파묻힌다는 도서관의 이상적 이미지를 멋지게 풀어냈다.

인구 1000만의 대형도시 서울에 새로 생긴 도서관인 만큼 다양한 계층의 이용자를 고려한 배려도 눈에 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과 촉각도서 1300여종, 모유 수유실, 도서 대출자들을 위한 책 소독기, 외국인 이용자들을 위한 캄보디아 몽골 태국 베트남 러시아 도서 등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3층부터는 옛 시청 건물이라는 의미를 살린 공간들이 배치돼 있다. 서울시에서 취급한 각종 문서들의 원문과 그 밖의 기록이 보관된 ‘서울기록문화관’이 대표적이다. 서울시 종합상황실을 복원한 공간과 각국 대사관과 문화원에서 기증받은 자료를 모아 둔 세계자료실도 있다. 서울시장 집무실에는 김상철 본지 미래한국 창립회장의 사진을 비롯한 역대 서울시장들의 모습이 전시돼 있다. 5층엔 리모델링 과정에서 추출된 옛 청사의 흔적을 모아두며 ‘관광명소’로서의 임무를 완수한다.

새로 생긴 도서관이라 쾌적하고 청결하며 곳곳에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단점을 찾자면 규모에 비해 소장도서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과 열람 공간이 400여 좌석 정도로 많지 않다는 정도다. 시간이 흐르면 장서는 늘어날 테니 첫째 단점은 언젠가는 개선될 문제다. 70만 권까지 장서를 늘릴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오히려 관건은 나머지 50만 권이 ‘어떤 책들’로 채워지느냐다.

서울도서관 장서 27만 권 상세 분석

본지는 서울도서관의 도서 비치 현황을 좀 더 상세하게 알아보기 위해 서울도서관의 장서목록을 입수해 분석 작업에 착수했다. 서울도서관으로부터 제공받은 총 소장도서의 숫자는 27만3288권(3월 10일 기준).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출판사들은 역시 대형회사들이었다. 민음사 2972권, 문학동네 2339권, 김영사 1467권, 나남출판사 1192권, 열린책들 656권, 해냄 470권, 쌤앤파커스 260권 등의 도서가 비치된 가운데 좌익성향 학계의 대부 격으로 꼽히는 백낙청 편집인의 출판사 창비는 1199권을 비치하고 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책들을 주로 취급하는 기파랑 출판사의 경우 책이 95권 밖에 없어 대조를 이뤘다.

서울도서관에 비치된 책들이 주로 어떤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지도 알아봤다. 제목에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포함된 책들을 검색해 본 결과 제목에 ‘김대중’이 들어가는 책이 124권으로 가장 많았다. 2위는 노무현으로 103권이며 다음부터 이명박 96권, 이순신 90권, 박정희 85권, 안철수 82권, 김정일 46권, 박근혜 45권, 이승만 40권, 안중근 31권, 히틀러 31권, 김영삼 27권, 정주영 26권, 마오쩌둥 26권, 체 게바라 25권, 이건희 25권, 시진핑 23권, 이병철 20권, 백범 김구 22권, 박원순 21권, 김일성 17권, 김정은 17권, 전태일 12권, 스탈린 12권, 덩샤오핑 11권 등의 순서였다.

한편 서울도서관에 비치된 책들이 다루고 있는 국가 중 가장 ‘핫’한 나라는 중국으로 분석됐다. 제목에 ‘중국’이 들어가는 책은 서울도서관에 1965권 소장돼 있다. 다음은 ‘일본’으로 1905권, 북한 1141권(‘북조선’ 6권 포함), 미국 1033권, 러시아 287권, 아프리카 199권 등의 순서다. 대륙별로는 아시아 1153권, 유럽 760권(유라시아는 29권), 아메리카 121권, 남극 48권, 오세아니아 16권 등이다.

임의로 기입해 본 주요 키워드 중에서는 ‘문화’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제목에 ‘문화’가 들어간 책은 5217권이었으며 경제가 4458권, 교육 3188권, 민족 572권, 인권 563권(‘북한인권’은 57권), CEO 347권, 민주주의 318권, 불교 264권, 세계 239권, 스포츠 222권, 기독교 153권, 친일 34권, 독재 32권, 북핵 20권, 천주교 16권 등이다. 반미는 4권, 종북은 3권, 친미와 친북은 1권, 친중은 없었다.

주요 작가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인물은 조정래였다. 그의 책은 서울도서관에 125권 비치돼 있다. 박경리 작가는 110권을 차지했고 그 다음으로 이문열 96권, 황석영 64권, 이외수 54권, 공지영 51권, 신경숙 41권, 이청준 38권, 한비야 30권, 은희경 30권, 김동리 28권 등이다.

서울도서관은 ‘2014년 서울도서관 장서구성계획’에서 ‘사상과 종교, 정치적 입장, 개인적 이해관계 등을 배제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자료를 선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겠다는 의도지만 출판시장 자체가 편향됐을 경우 도서관의 ‘탈가치’ 원칙은 편향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결국엔 ‘이용자’가 도서관을 만든다

김일성을 ‘자수성가한 민족의 영웅’으로 표현한 역사학자 한홍구의 책은 서울도서관에 25권 비치돼 있다. 도올 김용옥의 책은 무려 56권이나 있다. 동영상 ‘백년전쟁’으로 날조 논란에 휩싸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지은 책은 57권, 전교조 출신의 교사들이 주축이 돼 만든 ‘전국국어교사모임’이 지은 책은 25권이다.

그 밖에 신영복 26권, 리영희 25권, 박현채 23권, 강만길 16권 등의 수량 또한 생각해 볼 만한 여지를 남긴다. 전직 대통령의 저서의 책 비중은 이명박 17권, 노무현 12권 등이며 박정희 3권, 박근혜 2권, 이승만 2권 등이다.

개관한 지 이제 1년 남짓 지난 서울도서관의 운명은 결국 이용자들이 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용자들이 어떤 책을 원하는지에 따라 서울도서관의 성향이 사후적으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도서관의 시스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좋은 책들이 비치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물론 정부(문체부)를 비롯한 공공기관들이 추천도서를 올바르게 선정하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

서울시민이거나 서울시 소재 직장인이면 누구나 서울도서관에서 도서를 대출할 수 있다. 우선은 홈페이지에 가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lib.seoul.go.kr). 그 뒤 신분증을 가지고 도서관 2층에 내방해 회원증을 만들면 3권의 책을 14일간 빌릴 수 있다(7일 연장 가능). DVD 자료 역시 3점을 7일간 대출할 수 있다.

아직 서울도서관에 비치돼 있지 않은 좋은 책을 알고 있다면 ‘희망도서 신청’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홈페이지 상단 메뉴에서 ‘나의 공간 -희망도서’를 클릭한 뒤 책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면 월 3권, 1년에 15권을 신청할 수 있다. 출판시장의 좌편향이 극심한 현재 상황에서는 서울도서관 또한 좌편향으로 가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일 수도 있다. 서울시민들의 관심이 절실한 이유다. 그 관심이 결국 서울도서관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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