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주 효과’ 그 주인공을 만나다
‘권선주 효과’ 그 주인공을 만나다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4.03.2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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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 은행장 권선주 IBK기업은행장
 

“폭탄주 10잔을 마셔도 끄떡없다”는 소문이 들리기에 잔 다르크인가 했다. 첫 출산 후 한 달 만에 복직하고 두 번째 출산 전날까지 출근해 ‘전투’에 임했다기에 아마조네스인가 했다. 둘 다 아니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문학 소녀에 가깝다.

조곤조곤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는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저력으로 30년 넘게 달려온 걸까. 여성 최초로 은행장 자리에 오른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거의 모든 질문에 “맞습니다”라고 긍정한 뒤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취임 3개월의 ‘여성 최초 은행장’을 만났다.

- ‘여성 최초’ 이야기는 어차피 나올 테니까 차라리 먼저 하겠습니다. (웃음) 취임 이후 워낙 많은 기사가 나왔는데요. 여성 금융인들의 약진이 두드러진 현상을 두고 ‘권선주 효과’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시선이 너무 몰리는 게 부담스럽진 않으신가요?

‘시류인사’ 아니냐는 평가도 사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업계를 자세히 보시면 얘기가 달라져요. 여성금융인 모임인 ‘금융인 네트워크’에서 10년간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멤버들을 보면 임원직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이미 여성 인력풀이 풍부하게 형성돼 있어요.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47.4%로 집계됐습니다. 자세히 보면 문제도 있겠지만 낮은 비율은 아닌데요.

신입사원 중에선 여성 비율이 높은데 중간 관리자 계층으로 가면 줄어드니까요. 늘 나오는 얘기지만 한국의 경우 육아 부담이 존재하고 있어서 쉽지 않습니다. 다만 개선되고 있는 추세임을 고려해야겠죠. 30년 후에는 성별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 철저히 능력 위주로 가는 시대가 열릴 거라고 봐요. 그때까지 중간관리자 계층이 더 두터워져야 할 텐데 주변을 보면 후배들이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례가 빈번하죠.

- 벽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예를 들어 자녀가 학교에 입학하는데 적응을 못한다든지, 사춘기를 심하게 겪는다든지 하면 일이 손에 안 잡히거든요. 그만두는 비율이 높아지죠.

“어려움 있지만 여성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 권 행장님은 모든 벽을 돌파해 오신 셈인데요.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이 여기에 적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권 행장님 얘기를 하면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여성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속된 말로 ‘아예 씨앗이 다른 알파걸’이라는 건데요.

거기에는 ‘폭탄주 10잔’ 얘기가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은데요. (웃음) 모든 여성들이 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었어요. 제가 36년 직장생활 하면서 초반에 겪었던 열악함을 말하다 보니 그런 사례가 나온 거죠. 사실 술을 즐기지도 않아요. 다만 부딪치다 보니 적응이 되더라는 거죠. 의도치 않게 후배님들에게 부담을 드렸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하고 싶습니다. (웃음) 폭탄주 10잔 꼭 마실 필요 없고요. 지금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마셔도 충분히 이해 받는 분위기가 정착이 됐습니다.

- 이제 좀 더 중요한 얘기를 해 보죠. 취임 이후 “3년 안에 기업은행을 세계 100대 은행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가능한 겁니까? 목표를 너무 세게 잡으신 건 아닌지요.

내실을 알고 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2012년 말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Foutune) 기준으로 저희 기업은행이 105위에 랭크됐어요. 세계 100위는 3년 안에 반드시 도달해야만 하는 목표이겠고요. 더불어 해외 네트워크 강화에도 힘을 많이 쓸 예정입니다.

- 그러고 보니 다음 달 홍콩에서 해외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업설명회(IR)를 개최하실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데요. 은행들의 해외 영업이라는 게 기업들이나 유학생들 송금채널로 활용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느냐는 지적입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사실 저희 기업은행도 모스크바 사무소를 오랫동안 뒀다가 결국 진출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어요. 오히려 글로벌 기업들하고 해외로 함께 진출하는 전략이 타당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중국을 예로 들면 중국으로 진출한 한국기업을 통해서 중국 리테일뱅킹 네트워크에 진입을 하는 거죠.

이미 베이징에서 가장 큰 구(區)인 차오양(朝陽) 번화가에 기업은행 ATM기가 나가 있어요. 근로자들이 은행 거래를 자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벌써 손익분기점에 근접한 거래량이 발생하고 있어요. 한국이 세계 10위 경제대국이고 세계 각지에 기업들이 나가 있는데 기업은행이 함께 나가는 건 사실 당연한 귀결이죠. 그 방법론에 있어서 연구를 계속 진행 중입니다.

- 국내 상황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은데요. 국내경기가 저성장 기조로 굳어지면서 활로 모색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밖으로는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하고 안으로는 저성장·저금리로 인해 수익성이 부진해지는 진퇴양난 상황이에요. 특히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큰데 중소기업 지원은 저희 기업은행의 본분인 만큼 ‘중소기업 대출금리 한자리수 인하 정책’ 등 대출금리 체계 개편사업을 올해부터 추진하고 있어요.

2014년은 은행권 전체적으로 쉽지 않은 한 해가 되겠지만 선제적으로 건전성을 관리하고 신규고객 유치를 늘리면서 경비를 절감하는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동반자 역할에 충실하면서 수익성, 건전성, 성장성, 사회적 책임이라는 네 가지 가치를 조화롭게 성취하는 게 올해 저희의 구체적인 목표입니다.

- 권 행장님은 ‘2번째 자행 출신 은행장’이라는 기록도 갖고 계신데요. 한국 금융계의 경우 ‘모피아(Mopia)’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인적 네트워크가 하나의 필수코드처럼 통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모피아에 대한 문제점은 많이 지적됐지만 막상 인적 네트워크의 부족함을 느끼신 적은 없나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해서 모든 게 투명하게 오픈되고 공개된 절차에 따라서 전략이 실행되고 있어요. 아직 취임 3개월 밖에 안 됐지만 그 부분과 관련해서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고 보고 있고요. 정부도 항상 금융 산업에 대해서 경청하는 자세로 열려 있다는 느낌이에요. 뭐든 진심이면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조경제 발 맞춰 ‘창조금융’ 선보일 것”

- 노조와의 관계도 지속적인 관심사항인데요. 역시 ‘진심은 통한다’는 입장이신가요?

그렇죠. 자행 출신의 두 번째 은행장이다 보니 전 직원은 물론이고 특별히 노동조합이 기대하는 바가 정말 크다는 걸 느껴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한 말이지만 노조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소통’과 ‘신뢰’가 주요 키워드이겠고요. 상생의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동조합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격의 없는 대화를 할 생각입니다. 상호 간의 의견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 때 그 때 합의점을 찾아내는 게 경영자의 역할이고 자질이겠죠.

- 덧붙여 ‘창조금융’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하기도 하셨는데요. 워낙 한국의 은행들이 정부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졌던 터라 “정권 흐름에 맞춰서 나온 얘기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창조경제’의 실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꼭 좋은 얘기는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당연히 그렇게 느껴지실 거예요. 창조(創造)라는 말 자체가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기업은행은 이미 창조금융을 시작해 온 기업입니다. 예를 들어 문화콘텐츠금융부를 이미 활발하게 운영 중이죠. 드라마, 영화, 공연 등에 대해 2011년부터 2013년 말까지 3040건의 대출과 투자를 진행한 총액이 5417억 원이에요. 이 금액은 7500억원으로 늘어날 예정입니다. 대표적인 창조금융의 실현이죠.

문화산업은 일자리 창출에도 굉장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같은 서비스산업이 더 많은 일자리를 낼 수 있도록 근본적인 기술력을 제대로 평가해 주겠다는 게 저희 입장이고요. 대한민국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로 가는 과정은 곧 기술력 있는 기업들이 중소·중견기업으로 발전하는 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고 있어요.

“누구도 ‘100% 안전’ 장담 못해 … 기본에 충실해야”

- 그야말로 ‘기업은행’다운 발상이네요. 그런데 사실 최근 금융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썩 좋지는 못합니다. 개인정보유출 같은 문제들이 금융권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하락시키고 있는데요. 일련의 사태에 대한 기업은행의 입장은 어떤지요.

기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아마 모든 은행이 마찬가지일 겁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 모든 은행들이 많은 작업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특히 고객들이 스스로 가입한 상품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도록 프로세스를 만들고 개발 단계부터 소비자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을 확충해야 해요.

소비자 보호 부서의 인원을 늘리고 전문가 비율을 확충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신용 보호를 위해 지속적인 투자가 진행돼야 할 필요도 있겠고요. 금융권의 누구도 자신의 회사가 100% 안전하다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일 거예요. 기업은행은 제가 취임식 때 얘기한 대로 ‘내실 있게 성장하는 강한 은행’이라는 목표에 매진할 예정입니다. 특별히 2014년엔 불합리한 업무 관행 개선을 위한 ‘Clean IBK 10대 운동’도 시작했고요.

- 사실 요새 ‘기업은행답다’는 얘기를 듣는 또 하나의 분야가 있다면 ‘전국노래자랑’ 송해 선생님이 나오는 광고가 아닐까 하는데요.

그렇죠. 그 광고가 3년 동안 구축해낸 효과가 엄청나요. 올해도 송해 선생님과 함께 하되 약간의 추가나 변형을 가해서 새로운 컨셉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좋은 건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완하고 발전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겠죠.

- 기업은행의 새로운 ‘아이콘’인 행장님이 직접 출연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글쎄요. 이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한 번 해보네요. (웃음)

- 마지막으로 ‘미래한국’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얘기 나온 김에 저희 광고 카피를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네요. 미래한국 독자님들, IBK기업은행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거래할 수 있는 은행입니다.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립니다.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웃음)

- 진짜 마지막 질문입니다. 여성 최초 은행장이 ‘권선주 신화’의 마지막인가요?

당연하죠. 철저하게 은행원으로 커 왔기 때문에 그 이상은 능력 밖이에요. 은행장 직분을 잘 수행하는 게 제 마지막 경력이라 생각하고 매진하고 있습니다. (웃음)


인터뷰/황성준 편집위원
정리/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사진/주동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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