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환경이 경쟁력 1위 국가 만들다
척박한 환경이 경쟁력 1위 국가 만들다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4.03.28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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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띠 헤이모넨 주한 핀란드 대사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는 어디일까? 세계의 여러 조사기관이나 언론은 핀란드를 꼽는다. ‘독립국’이 된 지 100년이 채 안 됐지만 각종 경제·사회지표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 핀란드는 과연 어떤 국가이며 ‘1등’이 된 비결과 저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미래한국이 마띠 헤이모넨(Matti Heimonen) 주한 핀란드 대사를 만났다. 하이테크 기업 노키아와 산타클로스의 고향, 핀란드로의 지면 여행을 떠나보자.

마띠 헤이모넨 주한 핀란드 대사

- 흔히 핀란드 하면 사우나나 산타클로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에게 핀란드는 ‘미지의 나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와서 보는 핀란드는 어떤 나라인가요.

얼마 전 택시를 타서 제가 핀란드에서 왔다고 하니까 택시 운전사는 자일리톨 껌 얘기를 하더군요. 그 브랜드가 핀란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핀란드의 이미지는 대단히 좋은 것 같습니다. 깨끗하고 친환경적이고 기술력이 뛰어난 국가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핀란드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도 많습니다. 작년에 핀란드와 한국 양국 외교수립 4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습니다. 핀란드는 한국과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핀란드도 한국처럼 가난한 국가였습니다. 오랜 참혹한 전쟁을 겪었고 한국처럼 완전히 잿더미가 되지는 않았지만 역사의 단절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가 빠른 경제성장으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 핀란드는 여러 경제지표에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발전된 나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역시 가장 궁금한 건 그 비결입니다. 눈부신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는 교육이었습니다. 모든 핀란드인들은 질 좋은 교육을 받을 동등한 권리를 갖습니다. 재능만 있다면 대학까지 무료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의 재산과 무관한 것이죠. 특정 대학에 가기 위해 경쟁이 그리 치열하지도 않습니다.

핀란드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일할지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전공을 공부할 것인지에 따라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죠. 특정 대학의 간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해당 학생의 경쟁력과 전문성이죠. 또한 우리는 평생교육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800년간 강대국에 병합, 고난의 역사

- 뉴스위크지는 핀란드를 ‘세계 최고의 나라(best country in the world)’로 꼽은 바 있습니다. 교육의 중요성만으로는 그 비결이 다 설명이 안 될 것 같은데요, 그 외 어떤 다른 핀란드의 특징이 있을까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핀란드에는 천연자원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건 숲과 일부 자원이지만 풍부하진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러시아 등 강대국을 인접국으로 두고 있습니다.

전쟁을 거치면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힘겨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국민들이 강한 의지를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그 의지를 바탕으로 혁신에 나서고 어려운 상황에서의 생존법을 익히게 됐죠.

또 한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추운 날씨입니다. 우리의 자연환경은 아름답지만 생존에 있어서는 그다지 친화적이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은 항상 우리 국민들에게 도전 거리죠. 여름도 있긴 하지만 3개월 뿐이라서 짧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생존력과 경쟁력이 생긴 것 같습니다. 항상 햇볕이 내리쬐고 도처에 과일나무가 있으면서 살기가 쉬운 나라들에서는 국민들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일 필요까지는 없으니까요.

-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것이 불과 1917년이었죠. 그 이전에는 또 오랫동안 스웨덴 왕국의 일부였구요. 역사적으로 중국이라는 강대국과 일본 옆에 살아온 우리 한국에도 교훈이 될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핀란드의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설명 바랍니다.

핀란드는 약 700여년간 스웨덴 왕국의 일부였습니다. 그러다 1809년 스웨덴이 전쟁에서 지면서 러시아에 핀란드를 넘겨주었는데 이후 100여년간 러시아 제국의 일부로 있다가 1917년에 비로소 독립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러시아 치하 100년 동안에도 별도의 군대와 의회를 가지고 있었고 화폐도 따로 있었으며 우리만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우리는 독립을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죠.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핀란드는 독립할 모멘텀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은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직전에 우리는 소련과 전쟁을 치렀구요. 당시 스탈린은 핀란드를 몇 달 내로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쉽지는 않았죠. 비록 그 전쟁에서 영토의 일부를 잃기는 했지만 우리는 독립을 지켜냈습니다.

혹한이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핀란드 특유의 스노하우(snow-how)는 이때부터 시작됐던 것 같습니다.(웃음) 참고로 핀란드의 헬싱키 공항은 유럽에서 눈이 내려도 이착륙에 아무 문제가 없는 유일한 공항입니다.

- 핀란드가 러시아(소련)라는 강대국에 맞서 자율권을 일부 희생하면서 생존해온 비결, 그러한 정책을 두고 ‘핀란드(Finlandization)’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도 포함되는 걸로 아는데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현재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증대해지는 것을 두고 한반도의 ‘핀란드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요.

그 단어에는 부정적 의미와 긍정적 의미가 모두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긍정적 의미가 더 많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때 500만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가 2억명 이상의 인구와 핵을 가진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을 상대하면서 생존하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냉전 중에도 유엔 회원국으로서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소련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서방과도 친하게 지냈던 겁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동서의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핀란드화’는 생존을 지키면서 중요한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노하우였습니다. 소련에게 점령당해 주권을 뺏긴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보신다면 이해가 될 겁니다.

   
 

“‘핀란드화’는 긍정적 생존 전략”

- 핀란드는 냉전 해소에 중요한 단초가 된 ‘헬싱키 프로세스’를 만들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었죠. 역시 현재의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헬싱키 프로세스 모델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헬싱키 프로세스는 갈등을 줄이고 냉전을 끝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양진영의 국가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민감한 군사적 이슈에서부터 부드러운 인권 문제까지 모두 함께 논의를 했습니다.

헬싱키 프로세스는 냉전 종식 외에도 관련 국가들이 서로의 군사훈련을 참관하고 선거를 참관하게 했다는 성과를 낳았습니다. 물론 이걸 한반도에 100% 적용시키긴 힘들겠죠. 하지만 이를테면 군사훈련을 서로 참관하는 것으로 첫발을 내딛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 지리적으로 핀란드는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있습니다. 핀란드인들의 이념적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지요.

핀란드는 다당제인데 현재 의회에 공산당이 없습니다. 좌파정당은 있지만 지지율은 낮고 영향력도 약합니다. 여러 정당들이 활동 중인데 주요 3개 정당들이 번갈아 연합해서 집권합니다.

주요 3당 외에도 4개의 군소정당이 있긴 한데 극좌노선의 정당은 한개도 없습니다. 서방식 민주주의 시스템이 아주 탄탄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평등과 사회민주주의도 뿌리를 내렸죠. 덕분에 복지 수준이 높습니다.

- 핀란드는 잘 발달된 복지시스템으로 유명하고 그 역사도 오래 된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방금 말씀하신 대로 핀란드는 오랜 전쟁을 겪는 등 근래까지 뒤처진 나라였는데 어떻게 복지제도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겁니까.

국가예산과는 무관하게 실행이 가능한 복지제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양성평등이죠. 핀란드는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첫번째 국가였습니다. 1906년입니다. 당시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겁니다.

핀란드에서 여성들은 예전부터 집안 뿐 아니라 의회에서도 활발히 활약했습니다. 현재 우리 장관 중 절반 가량이 여성입니다. 국회의원 중 절반도 여성이구요. 여성의 70% 이상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대사님의 할아버지 세대는 어땠나요. 그 때에도 남성들이 집에서 요리를 하고 가사일을 도왔나요?

좋은 질문입니다.(웃음) 제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는데 농경사회에서는 일손이 많이 필요하니 집안일도 하셨습니다. 모두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제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직장에서 일하셨습니다. 제가 유치원에 가면 제 할머니가 저를 데려오고 돌봐주시곤 했죠. 물론 조부모가 아니더라도 맞벌이 부모들의 자녀들을 유치원에서 돌봐주는 시스템은 그때부터 있었습니다.

따라서 핀란드 여성들은 가족을 이루고 자녀들을 가지는 걸 예전에도 지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핀란드의 출산율은 한국보다 높습니다. 여성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더라도 경력이 단절되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출산 이후에 충분한 출산휴가를 가지고 복직합니다. 출산휴가는 3년까지 가능합니다. 여성들은 아주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분들이 출산 후에 가정에만 머문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 인적 자원의 낭비입니다.

백야 여름밤의 끊이지 않는 축제

- 대사로서 가장 큰 관심은 역시 양국의 경제협력일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과 핀란드의 교류 현황에 대해 소개를 바랍니다.

작년 양국의 무역량은 16억달러가 넘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對 핀란드 수출 규모가 감소하고 수입이 다소 증가했는데 매년 변하는 추세입니다. 아마 한국 내에 있던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제3국으로 옮긴 후에 핀란드에 수출을 한 이유라고 봅니다. 한국이 수입하는 핀란드 제품은 주로 공업용 기계와 발전 장비, 조선 부품 등입니다. 노키아 휴대폰도 여전히 수입되지만 규모는 줄었구요. 한국의 창조경제 정책과도 협력할 부분이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 한국과 핀란드간 직항 항공편은 유럽국가중 가장 짧은 비행거리여서 경유지로도 각광받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핀란드를 방문하고자 하는 한국인들에게 좋은 볼거리 소개해 주세요.

핀란드에는 우선 독특한 4계절이 있습니다. 겨울만해도 12월과 2월말이 전혀 다릅니다. 2월엔 눈이 워낙 많이 쌓여서 햇빛이 눈에 반사되기 때문에 더 밝아 보입니다. 여름에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해가 너무 길어서 핀란드 남부에서도 밤에 조명 없이 신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백야현상이죠. 그런데 백야현상이 있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밤에 피로를 덜 느낍니다. 활동반경도 넓어지죠. 따라서 여름에는 축제가 계속 이어지기도 합니다.

- 양국의 문화적 교류 상황은 어떤가요.

매년 한국과 핀란드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는데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디자인과 건축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서 오는 학생들도 있는데요. 2010년에 서울이 디자인 수도로 선정된 후에 다음 디자인 수도는 헬싱키가 됐습니다.

- 마지막으로, 대사님 개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한국 생활은 만족하십니까.

한국에 오기 전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4년간 있었고 그 전에는 도쿄에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의 3국에서 모두 근무하게 된 거죠. 중국과 일본에서의 경험이 한국 적응에 도움을 준 건 사실입니다. 전 한국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면 덕수궁, 동대문, 남대문 등 명소들을 방문합니다. 인왕산과 북한산도 자주 갑니다. 도심에 이런 멋진 산이 있다는 건 아주 매력적입니다.

 

인터뷰/김범수 발행인 www.kimbumsoo.net
정리/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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