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했던 이집트 여행기
아슬아슬했던 이집트 여행기
  • 미래한국
  • 승인 2014.03.2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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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서준수 (충남대 로스쿨 재학)

“카이로는 어때?”
“카오스예요.”
“치안 때문에?”
“아뇨,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요르단은 양반처럼 느껴질 걸요? 요르단은 완전 선진국이에요.”

이스라엘의 숙소 침대에 누워 세계여행 중에 이집트를 거쳐 요르단에 들어온 친한 동생과 SNS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위태했던 요르단의 고속도로 사정과 암만 시가지를 기억하던 입장에서 그 친구의 요르단 선진국설(說)은 쉽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이미 걸프지역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기에 중동 지역에 대한 편견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랍권은 다른 여행자들처럼 나에게도 꽤 난코스였다. 이집트에서 간발의 차로 사고를 피했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둘러보며 겪은 경험들을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와디럼 밤하늘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의 배경 요르단

먼저 요르단은 북쪽으로 시리아, 남서쪽으로 홍해를 마주하고 길게 뻗은 나라다. 북부지방을 제외한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이라 그 지대는 대표적인 관광자원이다. 얼마 전 타계한 배우 피터 오툴이 주연을 맡은 아라비아 로렌스의 실제 배경이 됐던 곳 또한 요르단이다.

요르단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페트라다. 페트라는 고대에 이 지역에 거주하던 유목민족 나바테이안이 바위를 깎아 건설한 도시로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그 명성만큼이나 세계 최고의 유적 입장료를 자랑하기도 한다. 보통은 한화로 7만~8만 원선이지만 입국 당일 방문한 사람은 14만원 가까이를 입장료로 내야 한다.

이 페트라 유적지가 요르단 국세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요르단 국가 경제에 기여(?)하게 된 여행자는 페트라 입구에서 또 다른 몸살을 앓게 된다. 말을 빌려주거나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호객꾼이 끊임없이 달라붙기 때문이다.

와디럼은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곳이다. 수도 암만에서 내려오는 방법도 있지만 남부 항구도시 아카바나 페트라에서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베드윈 캠프에서 1박을 하며 사막의 풍광과 천체를 바라볼 때면 연신 탄성이 뿜어져 나온다. 아라비아에 반한 로렌스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기존의 캠핑장이 관광객 사이에서 만족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수, 새로운 장소를 알아보기로 했다. 알아본 장소는 진짜 유목민이 인터넷을 통해 운영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이야말로 진짜 ‘디지털 노마드’가 아닌가!

요르단은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인 국가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인근 국가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이 많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눈으로 볼 것은 많지 않지만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는 이스라엘 항구도시 에일랏에서 육로로 건너 입국을 했다. 이곳을 통해 타바 국경을 넘게 됐는데 그때로부터 2주 후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이집트의 정치 불안을 드러내듯 국경은 인적이 매우 드물었다. 전날까지 홍해 앞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맥주를 마시고 붐비는 인파 사이에서 쇼핑을 했지만 단지 국경이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스산함이 몰아쳤다.

국경에서 이스라엘 관문 쪽 관리자로 보이는 노인은 우리에게 연신 이집트는 조심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귀중품을 깊숙이 간수할 것을 당부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집트로 깊이 들어갈수록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건물들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홍해와 대비돼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국경 하나를 마주했을 뿐이지만 두 나라의 상황은 달랐다. 무엇이 이 정도의 격차를 만들었을까?

이스라엘 국경

폭탄 테러 직전 들렀던 이집트

국경을 넘어 카이로로 가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카이로 직행버스를 찾아 헤맸지만 어디를 가도 답은 노(No)였다. 시나이 반도 북부지역은 매우 위험한 지역이기 때문에 이미 교통편이 폐쇄됐다고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반도 남단인 샤름 엘셰이크까지 돌아서 가는 버스에 탑승할 수밖에 없었다. 단체 관광객이 아니었기에 긴장되는 버스 투어였지만 버스에서 만난 영국인 여행객과의 대화가 긴장을 약간이나마 덜어줬다. 시나이 반도 남부는 인기 있는 휴양지여서 아직까지는 다른 곳보다 안전한 편이다.

카이로에서 인상적이었던 장소가 둘이 있다. 하나는 역시 피라미드를 비롯한 고대 이집트 왕조의 유적지고 또 하나는 콥트교도들이 거주하는 일명 ‘쓰레기 마을’이다. 피라미드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많은 유물들을 두고도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집트 조상들의 작품들은 오랜 세월에도 웅대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돌을 세우고 조각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사업이 이집트인들의 복지사업(?)이었다는 설명에는 조금 웃음도 나왔다. 카이로에서 고고학박물관을 방문하면 미라를 만들었던 시설과 투탕카멘의 황금가면도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다.

‘쓰레기 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은 이집트 내에 소수 기독교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곳 인구는 이집트 각지에서 수거되는 쓰레기를 모아 분리수거 및 재활용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삶을 연명해가고 있다. 일부는 외관과 다르게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나 대개 마을의 역겨운 냄새 속에서 불쾌한 삶을 살고 있다.

반면 콥트교회 지역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더러운 오물과 냄새는 씻은 듯이 사라진다. 이슬람의 나라에서 예수님의 성화와 교회를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이한 경험이다. 우리는 이곳 교회 앞 벤치에서 물씬 올라오는 쓰레기 냄새를 맡으며 이집트의 분식과도 같은 ‘코샤르’로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요르단 마다바에서 찍은 현지인

‘쓰레기마을’이라 불리는 이집트의 기독교 마을

개인적으로는 불안정한 카이로보다 나일강을 따라 남쪽에 위치한 룩소르나 아스완이 기억에 남는다. 카이로 서남쪽인 바하리아 사막도 가 볼 만한 곳이다. 사막을 차로 가로지르는 가운데 목격하는 자수정 밭이나 마치 손으로 빗은 듯한 바위산, 순백의 백사막은 색다른 인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집트 남쪽의 도시는 요르단이 그랬듯 훨씬 풍족하고 여행하기 안전한 곳이다. 사람들도 더 여유로워 보였다. 룩소르는 고대에 테베라고 불렸던 곳으로 알렉산더에 의해 정복되기 전에 신왕조까지 수도가 됐던 곳이다. 하트셉수트여왕 신전은 늘 관광객 인파로 붐비는 곳인데 이집트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고대 건축물이다. 시내와 가까운 곳에는 카르낙 신전이 있다. 비위가 좋다면 룩소르에서 이집트의 보양식 비둘기 고기를 주문해보는 것도 묘미가 될 것이다.

이집트 최남단 도시 아스완은 나일강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에서 유람선을 타고 카이로까지 가는 코스는 유럽 관광객들에게 여전히 인기가 많다. 도로에는 차뿐만 아니라 온갖 마차가 즐비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인이 직접 손으로 운전하는 보트인 ‘펠루카’를 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협상만 잘하면 택시보다 저렴한 가격에도 탑승이 가능하다. 이 배에 올라타 석양을 바라볼 때면 낭만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카이로에서 찌든 때가 아스완의 평화로운 공기에 씻겨나가는 듯했다.

이곳의 한 고급 식당에 들어가 먹은 양고기도 일품이었다. 한국 물가의 1/7 수준이기에 햄버거 세트 2개 가격에 불과했다.

이집트뿐만 아니라 한국은 물론이고 다른 아랍 문화권에서도 이 가격에 이 정도 수준급의 양고기 요리 맛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리 얘기를 더하자면 이집트 또한 소와 떼어놓을 수 없는 생활상 때문인지 식사 전에 꼭 우리네 사골을 닮은 요리가 나온다. 아랍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 한국인들도 이집트 음식만큼은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알 카즈네 신전

이집트가 가난한 이유는

아스완에서 받은 좋은 인상은 다시 카이로의 공항에서 깨져버렸다. 공항 직원들이 우리에게 게이트 통과를 대가로 뇌물을 요구해 온 것이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면 적어도 관료일 텐데, 그것도 한 나라의 얼굴인 공항 직원이 외국인을 상대로 뇌물을 요구하다니. 화가 난 우리는 한 시간 가까이 뇌물을 주지 않고 실랑이를 벌였다. 그들은 인샬라를 외치며 보내줬지만 우리에게는 더 큰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검색대에서 우리를 불러 세운 경비대는 가방을 풀어볼 것을 지시했다. 대충 수색하는 시늉을 하더니 뒤에서 보고 있던 직원이 다가와 재차 뇌물을 요구했다. 이 나라는 어느 곳 하나 부패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사막과 유적지엔 그들의 자존심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근래 각 지역에 다소 상이한 국체가 들어선 이후로 국경을 따라 전혀 다른 삶의 질을 누리고 있는 것도 이 지역을 둘러볼 때 유의해서 살펴볼 점이다. 여기에는 자연 기후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이 있는 것 같다. 같은 관광업에 종사하더라도 그들의 생활 양상은 각기 다르다.

이집트 시가지를 둘러보면 옥상 위로 철골이 치솟은 건물들이 흔하다. 이곳 법률에 의하면 완공되지 않은 건물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선 옥상을 덮지 않고 자손 대대로 건물을 올려가며 같은 건물에서 한 식구를 이루며 살아가는 생활상이 더 굳어져 있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바라보는 별밤은 요르단에서 바라본 찬란한 하늘보다는 다소 혼탁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안락한 가정의 불빛이 그 별을 대신하고 있었다. 대런 애쓰모글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머리말은 ‘왜 이집트는 미국보다 가난한가’로 시작된다. 대륙 문물의 중심지로서 수천 년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던 이집트였기에 인근 국가들과 비교되는 현재의 모습은 사뭇 대조적이다.


서준수
충남대 로스쿨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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