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대학 개혁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엉터리 대학 개혁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 미래한국
  • 승인 2014.04.01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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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 중앙대 경영경제대학 교수
 

대학교육 문제 많다. 교수들 정말 문제 많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먹고 노는’ 교수들 혼내주는 대학 경영자는 개혁의 상징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해법’이라고 내놓는 것들도 속사정은 여전히 심란해서 오히려 문제를 잔뜩 더 꼬아 놓기도 한다. 나랏돈 펑펑 써 가면서… 개혁을 내세운 꼼수, 겉보기만 그럴듯한 대책을 넘어 무엇이 문제인지, 왜 엉망이 되는지 남들이 안 하는 얘기들을 생각해 보자.

“대학 나와도 일자리가 없다. 중학교만 나와도 될 일을 하려고 입시경쟁에 대학 학비에 부모 등골 뺀다.” “대학에서 배우는 것도 없다. 세상에 필요한 지식은 가르치지도 않는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대학은 누구나 가야 하는 곳도, 당장 써먹을 것 배우러 가는 곳도 아니다.

‘진리 탐구’ 같은 고색창연한 단어는 아니더라도, 더 깊이 좀 다르게 생각하라고 만든 어떻게 보면 비생산적인 기구이다. 이렇게 동네마다 하나씩 많을 필요도 없고, 온 국민이 대학 간다고 청춘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실업자 양성소가 개혁 불감증?

‘과거급제’가 유일한 출세이던 나라에서 ‘제국대학’ 나와 고시 붙은 도련님들이 떵떵거리고, 가난하던 시절 공무원, 선생님, 의사 같이 대학 나와야 한자리 하는 세상이 이어졌다.

소 팔아서라도 가려는 대학, 막상 갈 곳이 얼마 없으니 입시지옥이 펼쳐졌다. 5공 신군부는 대학 정원 늘려서 ‘민심’을 샀고, 이어진 민주화 시대에 대학과 정원은 마구 늘어났다. 동네에 대학 하나 생기면 1만~2만 명이 와서 돈을 쓰니 로비가 이어진 결과이다.

대학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남아서 줄지어 대학을 갔다. 저성장 경제, 환상의 대가는 가혹해서 번듯한 일자리는 없고, 정원 못 채우는 학교는 늘고 있다. 과연 ‘스스로 택한’ 교육소비자만 책임을 져야 할까? 아무튼 학생들은 구제해야 하니 정원조정 하고 보조금 주면서 버텨 보자? 학생이 학교와 지역 이해관계의 인질인 셈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회사처럼 학교도 사고 팔게 해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 함부로 떠들 일이 아니다. 설문지 답하는 실무자들이야 당장 부려먹을 졸업생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최고경영자는 오히려 ‘기본이 튼튼한 인재’를 찾기도 한다. 고색창연한 ‘진리탐구’가 얼치기 전문지식보다 낫다는 얘기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2,30년 전 기억을 더듬어 대충 대답한 설문 결과 갖고 호들갑 떨지 말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분들이 모여서 고민해야 한다. 당장 써먹을 기술만 가르치면 된다? 이것은 ‘직업교육’의 몫이다. 인문학의 기반이 없는 콘텐츠 산업, 자연과학의 기반이 없는 기술이 오래갈 수는 없다. 대학도 학생이 세상에 나갈 준비를 돕고 직업학교 출신도 필요하면 대학 입학을 돕는 것이 답이지, 대학을 모두 ‘직업학교’로 바꿔서 될 일은 아니다.

 

연구하는 대학, 미래의 희망?

신문 방송에 나오는 교수는 대선캠프나 기웃거려서 ‘한자리’ 얻고, 연구비나 빼돌리다 학생도 건드리는 ‘악질’들이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세상에 정년이 보장된 철밥통들이니 가뜩이나 얄미운데, 공부는 안 하고 가르치는 것도 없이 폼만 잡는다. 그래서 ‘연구하는 대학’, 그 성과를 밝히는 ‘대학평가’는 너무나 좋은 일이다. 과연 그럴까?

공부를 해야 잘 가르칠 것 아니냐?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연구업적을 쥐어 짠다고 교수들이 더 잘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뻔한 얘기일수록 논문 편수 늘리기는 좋고 학생은 귀한 시간 뺏는 방해물이 될 뿐이다. 좋은 논문, 의미 있는 연구를 하면 될 일 아니냐고? 경영학 논문을 읽고 참고하는 경영자가 아무도 없는데 도대체 어떤 연구가 의미 있는 연구일까?

“논문 편수 채우다 보니 신문기사도 이해가 안 간다. 그런데 학생들은 진로를 상의하니 난감하다. 요즘 젊은 교수들은 나보다 더 한심하다.” 제법 유명한 경영학 교수의 솔직한 고백이다. 별 생각 없이 ‘연구’ 운운하기엔 세상 일이 복잡하다는 얘기다.

대학평가는 논문 편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특색 있는 연구와 교육? 너나 없이 남다르다고 주장할 테니 결국 잘 모를수록 숫자로 간다. 연구업적 짜내기엔 이공계만큼 좋은 분야가 없으니 어문계열을 잘 키우던 학교마저 이공계 전공을 늘린다. 나름 특색 있던 분야들마저 연구 업적 짜내기 흉내 내다 엉망이 되기도 한다. 연구자들 자리 많이 생기니 좋은 일 아니냐?

천만의 말씀이다. 전공이 커지니 연구비가 더 필요하고 대학원생도 더 필요하다. ‘이공계 위기론’에 힘입어 어떻게든 지원은 이어지니 이제 졸업생이 넘쳐난다. 결국 이공계 인력의 몸값은 떨어지고 젊은이들의 시름은 더 깊어진다. 그래서 지원을 더 요구하게 된다. 미국의 8,90년대 R&D정책이 낳았던 문제가 반복되는 셈이다.

우리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미국 학생들은 이공계 전공을 해도 세상에 나갈 ‘기본’은 갖춘다. 학부에서 가르칠 내용은 세심하게 다시 설계한다. 우리는 솔직히 학부는 신경도 안 쓴다. 대학원 수업 대충 엎어서 가르치고 실험실 연구원 할 애들 고르는 일이 더 중요하다.” 당장 내 논문 작업에 부려먹자고 대학원 진학 시키고 미안해서 잠을 못 잤다는 공대 교수의 고백이다.

학문 세계에 작은 벽돌 한 장을 놓으면 다행이라며 말없이 연구하는 분들을 매도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대학 진학도 잣대 하나로 줄 세우지 말자면서 막상 대학 평가는 더 심해서야 곤란하지 않을까?

잘 가르치는 노력은 제대로 하고 있을까? 학교마다 요란한 경영학 열풍을 생각해 보자. 영어 강의도 하고 외국 인증도 받으니 대단해 보이지만 아직도 “XXX에 대해 쓰시오” 4~5 문제를 외워서 답하는 시험이 대부분이다. 인터넷 제대로 검색하면 10분에 긁어 붙일 내용 갖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여기 저기 긁어다 붙여 쓴 교과서 한 권 외우는 수업, 그나마 경제, 역사,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니 비판적 창의적 추론은 없다.

발표능력과 팀워크를 기른다는 팀 프로젝트, 학기말이면 모이는 데 시간 다 가고 물려받은 족보자료로 점수 따기도 한다. 교수가 제대로 지도하고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발표 시키고 수업시간 편하게 때우려는 의도도 있다고 한다.) 이론과 현실이 만나는 사례연구? 비판적 추론은 고사하고 ‘잘난’ 대기업 경영자 우상숭배에 그치기도 한다. ‘영어 많이 쓰는 상업학교 수업’이지 대학 수업이라 할 수 있을까?

 

구체적 현실을 모르면 ‘改惡’에 불과

하버드대 학부에는 EC10이란 과목이 있다.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특별히 편집된 신문기사와 영상, 강의노트를 개발해서 가르친다. 샌델의 철학 강의 ‘정의란 무엇인가’ 만큼이나 인상 깊은 과목이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이런 과목들을 가르치면 어떻게 될까?

경영교육 관련 인증에서 문제가 된다.지정된 교과서가 없다, 강의당 학생수가 많다, 사례연구 요건이 맞지 않다… 걸리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비싼 돈 들이는 ‘인증’이 과연 잘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 눈길 끄는 선전 아이템일 뿐인지 생각해 볼 부분이다. 필자가 잘 아는 경영학 수업을 예로 들었을 뿐이다. 공학은 다르고 자연과학은 다를까? 인문학은 어떨까?

모두가 대학만 가려 하고 취업 스펙만 쌓다 세월 보내니 경제도 잘 안 된다. 여기까지는 맞는 말이지만 세상 일은 만만치 않다. 실업계 특성화 고등학교에 가서 직업부터 갖고 필요할 때 대학 가라는 ‘선 취업 후 진학’ 특별전형, 중학교 때 공부 손 놓은 학생들은 공부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실업계 교육 현장이 어떤지, 대학은 이를 메워줄 준비가 됐는지 살피지 못하면 부모 학력에 ‘대졸’ 쓰자고 시간과 돈을 (정부 지원 포함해서) 쓰는 셈이 된다.

구체적 현실을 모르는 어설픈 정책은 세상 일을 더 꼬이게 한다. 그럴듯한 아이템 띄워서 자기 몫 챙기는 분들만 즐거울 뿐이다. 대학 문제만 그럴까? 쓸데없는 짓 막는 용기가 나라를 살린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경제학 교수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국가비전2030 기획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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