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보수론은 유효한가
호남 보수론은 유효한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4.1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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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고민이 깊어 간다. 다가오는 6·4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서울시장 선거 때문이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인구 천만의 서울특별시는 특별한 정치적 위상을 갖고 있다. 차기 대권 주자들간의 격돌장이자 승리한 정당의 수권 능력이 점쳐지기 때문이다.

정몽준과 김황식 사이, 갈등하는 여권

“솔직히 갈등된다.”
여권의 한 중진 인사는 서울시장 선거에 대해 ‘갈등’이라는 말로 속내를 표현했다. 박원순 후보의 재임을 막기 위해 잠룡인 정몽준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정 의원이 승리할 경우 그의 독자 행보는 피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 여기에 길항적 리더십으로 호남 출신의 김황식 전 총리가 출격했지만 여러 면에서 정몽준 후보에게 열세를 보이고 있다.
“김황식 후보가 박원순 후보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다면 경선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지요. 우파를 결집시키는 게 중요한 거예요.”

여론조사와 선거전략의 국내 권위자인 이영작 한양대 석좌교수의 말이다. 이 교수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승리를 투표율 오차 범위내로 정확하게 예측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런 이 교수는 김황식 후보가 박원순 후보를 누를 수 있는 ‘자신만의 아이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김황식이라는 인물에 많은 새누리 지지자들이 기대를 걸까. 익명의 한 새누리 당직자의 말을 들어 보자.

“정몽준 후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다만 박원순 후보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서민 대 재벌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하면 수도권 전체 판세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런 우려들이 새누리당 내에 있다. 정몽준 후보와 박원순 후보가 본선에서 겨루는 과정에 재벌 對 서민이라는 구도가 형성되면 좌파진영의 총집결을 가져오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수도권 직장인들에게 그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 여기에 독자 노선을 걸을 것으로 예상되는 정몽준 후보에 대한 박근혜 지지자들의 결집력이 과연 끝까지 작동하겠느냐는 의문도 자리한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호남 출신에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김황식 후보가 박원순 후보와 대결하면 이기든 지든 ‘재벌 승리’라는 프레임은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런 김황식 후보가 과연 경선에서 정몽준 후보를 이길 수 있느냐는 점에 있다. 현재까지 김황식 후보는 정몽준 후보에 대해 열세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김황식 후보의 진가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정치는 생물이니까요.”

김황식 후보를 돕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호남보수’의 코드

실제로 김황식 후보에게는 정몽준 후보가 갖지 못한 메리트가 있다. 먼저 그가 호남출신이라는 점과 대법관을 거쳐 총리직에 이른 사법, 행정 전문가라는 점이 여러모로 ‘기득권’으로 비쳐지는 정몽준 후보에 대한 전략적 장점이다. 그런 김 후보의 전문성은 ‘포퓰리즘 행정’이라는 비난을 받는 박원순 후보에 대해 또 다른 장점으로도 작용한다. 그런데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호남보수’ 라는 정치적 코드는 선거에 유효할까. 이 질문은 다시 박원순 후보가 소속된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 민주당에게로 돌아간다.

비록 이승만 정권과 정적의 위치에 있었지만 신익희, 조병옥, 윤보선, 유진산, 허정, 장면, 현석호, 박순천, 이철승, 정일형 등과 같은 민주당 인사들은 지사(志士)이자 사상가의 면모를 가진 위인들이었다. 이들은 야당인사들이었으나 한국 정치사에 빛나는 스승이자 별들이었고 지성(知性)이며 양심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들이 대한민국을 사랑한 애국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신익희, 조병옥, 윤보선의 민주당을 호남정당으로 만든 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동시에 김대중의 카리스마는 민주당 내 인물이 자라나지 못하는 토양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러한 민주당은 자신의 외연을 호남에서 비호남으로 넓혀야 하는 숙명을 갖게 됐지만 동시에 그것은 민주당 내 호남 기득권의 약화라는 또 다른 권력투쟁을 수반해야 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민주당의 약점을 파고 든 것이 종북이념과 친노그룹의 영남 패권이라는 분석은 설득력을 갖는다. 민주당의 큰 정신적 축인 민족주의는 민노당 계열이 ‘우리민족끼리’라는 김정일의 유혹에 팔아넘겼고, 친노 주사파 386의 선동세력이 이를 부산 영남권에 확장시키면서 민주당 전체가 종북의 늪으로 견인돼 갔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민주당은 제1야당임에도 지난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고 종북계열이 주도하는 야권연대에 의지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 여기저기서 ‘야권통합’, ‘야권연대’라는 말들이 나왔지만 대한민국의 정통 야당은 역사적으로 종북세력과 손을 잡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승만 정권 때도, 박정희 정권 때도, 전두환 정권 때도 야당은 종북세력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어요.”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던 김경재 전 의원의 말이다. 그는 친노세력이 정통 야당에서 수권 정당에 성공한 민주당의 전통을 모두 파괴했다고 주장한다.

배반당한 호남의 진보 민심

실제로 故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던 호남의 진보 민심은 노무현 대통령 당사자로부터 배반의 설움을 겪어야 했다. ‘호남이 나를 지지해서 찍었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그가 모태인 민주당을 헌신짝 같이 걷어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내뱉은 말이었다. 그래도 호남의 민심은 노무현을 밀어 줬지만 정작 그가 추구했던 것은 부산을 기반으로 한 영남 패권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그마저 실패함으로써 열린우리당은 고사했고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은 호남의 민심은 종북세력이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견인하는 민주당에 속절없이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1997년 건국 이래 민주당이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했을 때도, 지금의 통합진보당과 구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의 권영길 후보와 일체의 단일화 협상 없이 각기 따로 갔습니다. 오히려 당시 김대중 후보는 정통산업화세력인 공화당의 김종필, 박태준 씨 등과 연합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지요. 2002년 대선 역시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는 민주노동당과 손을 잡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김경재 전 의원의 말이다.

김 전 의원은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이 된 후 지난 총선에서 종북 비난을 받는 통합진보당에게 민주당이 의석을 양보해야 한다고 했던 사실을 상기하며 분노했다.

“한국의 민주당은 종북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연평 포격 당시조차 북한을 비판하지 않고 대한민국 정부를 비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였습니다. 더구나 자신들이 집권 시기에 추진했던 한미 FTA를 종북세력과 함께 결사 반대하기도 했지요. 민주당은 집권했을 때를 상정해 국정운영 능력을 보여주기는커녕 틈만 나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고 버스를 타며 좌파운동권 단체의 아류로 전락한 겁니다. 제1야당이 좌파운동권단체와 똑같이 행동하니 야권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아류가 아닌 원조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사실 이제 대한민국에 ‘민주당’은 사라진 지 오래다. 창당도 하지 않은 안철수 의원의 신당과 합쳐 민주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간판을 내걸었고 이를 통해 지지율 10%대를 눈가림으로 30%대로 끌어 올렸다. 그런 신당 창당의 명분은 ‘새정치’였고 그 고리는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 무공천’이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스스로 그 결정을 뒤집었다.

엄밀히 말해 처음 맺었던 백년가약은 무효가 된 셈이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위장결혼은 지속되고 있고 안철수 공동대표는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결국 안철수 효과로 대권 반열에 오른 박원순 후보의 비전에도 빨간불이 들어온 셈이다.

“새누리당의 압도적인 승리가 예상되죠. 그런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그런데 정몽준 후보와 박원순 후보가 대결하면 상황은 또 바뀔 수 있습니다. 전선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죠.” 새누리당의 다른 한 당직자의 분석이다.

이쯤에 이르면 보수진영은 혼란스럽다.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장 재선을 막아야 하는 절박함은 누구에게나 같지만 어떤 카드로 막느냐는 선택의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연 호남보수론은 효과가 있을 것인가. 이영작 교수는 호남보수론이 작동하려면 김황식 후보가 좀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대권 가능성을 보여줘야”

“호남 출신이라도 호남 사람들이 표를 던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김황식 후보가 대권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대권 가능성을 보여주면 호남표가 움직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영작 교수의 주문은 지금의 김황식 후보에게는 무리다. 하지만 김황식 후보가 호남보수세력의 한 축을 자임하고 그 모멘텀을 차기 정권 창출에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으로서는 새로운 정치 실험이 될 수도 있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용당해 버려지고 안철수 의원의 ‘친노굴종’에 의존해야 하는 호남 정치 민심은 이미 과거의 민주당을 버렸다.

그렇기에 호남의 정치 민심은 사실 마음 둘 곳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런 공백에서 이제 대한민국의 정치적 주류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새누리당과 보수가 호남보수세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고래(古來)로 호남은 근대문명을 흡수하는 최전선에 있었다. 인천과 함께 군산과 목포 등의 항구는 근대 문물이 교류되는 중심지였다. 근대 은행과 주식회사의 설립이나 혹은 상업과 무역시설에 대한 역사만 보아도 호남은 근대의 선두주자였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본지 미래한국 칼럼에서 그렇게 썼다. 실제로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호남은 북방 고조선의 청동기 문명을 한강 이남에 전파했던 마한(馬韓)문명의 발상지였다. 거석문화를 상징하는 전세계 고인돌의 70%는 한반도에 몰려 있으며 그 가운데 또 대부분은 호남지역에 남아 있다.

인류 문화유산의 귀중품을 간직한 호남은 조선 태조임금이 훈요십조로 남겼다는 ‘배역의 땅’이 아니다. 배역은 전국 어디서나 지배층이 백성을 수탈하고 탄압하면 발생했고 그런 점에서 어쩌면 호남은 역대 왕조로부터 가장 많은 수탈을 당해야 했던 한반도의 풍요로운 젖가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호남의 저항의식이 한국 정치에 작용해 왔다면 이제 호남의 정치의식은 새로운 미래로 승화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황식 후보에게 거는 보수의 기대가 있다. 그가 무거운 역사의 수레바퀴를 좀 더 미래로 굴려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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