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의 ‘행복’ 비결을 찾아서
코스타리카의 ‘행복’ 비결을 찾아서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4.05.2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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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로페스 뜨리고 코스타리카 대사
 

Pura Vida(프라 비다)! 코스타리카人들이 만날 때마다 나누는 인사말이다. ‘행복한 인생’이라는 뜻. 영국의 한 싱크탱크는 세계 국가행복지수에서 코스타리카를 1위로 꼽았다. 삶의 만족도, 기대수명, 인간개발지수, 환경청렴도 등 지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한다.

코스타리카는 또한 세계 최초로 군대를 폐지한 나라로도 알려져 있다. 군대 없는 국가가 어떻게 가능할까? 코스타리카에서 대통령 선거가 벌어지고 있던 지난 달 7일 서울 마포에 위치한 주한 코스타리카 대사관에서 마누엘 로페스 뜨리고(Manuel Lopez Trigo) 대사를 만났다.

- 바로 오늘 코스타리카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시간 45분 전에 본국에서 모든 선거가 완료됐습니다. 곧 투표 결과가 나오겠지요. 어제는 코스타리카 사상 처음으로 재외국민 투표가 이곳 주한 대사관에서도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 모두 21명의 한국내 자국 국민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습니다.

- 이번 선거는 좀 특별한 선거였다고 들었습니다.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선거였다지요?

이번 선거는 1948년 이후 처음으로 2차 선거에 들어간 경우인데 1차 선거에서 아무도 40% 이상 득표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차 투표를 얼마 앞두고 한 후보가 선거유세활동을 스스로 종료하는 이변이 일어났죠. 그가 밝힌 이유는 1차 선거에서 선거 유세 비용을 모두 써버려서 2차 선거 유세를 더 이상 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국민들과 소속당의 원성을 사는 등 좀 문제가 됐죠. 이번에 선거를 포기한 후보는 1차 선거에서 1위인 루이스 기예르모 솔리스 후보와 1% 미만의 득표차밖에 안났었습니다.

마누엘 로페스 뜨리고 코스타리카 대사

유력 대선후보 중도 포기, 세계 최초 군대 폐지…왜?

- 그렇다면 2차 선거에서 승리 가능성이 상당히 있었던 건데 단순히 재정문제 때문에 조기 철수를 했다는 것이 전혀 이해가지 않는데요.

그 후보 말로는 첫째 이유가 재정 파탄이었고 두 번째가 코스타리카 국민들의 마음에 이미 결정이 났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 방금 1차 선거에서의 두 후보간 득표 격차가 1% 미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종의 물밑 거래가 있었거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닙니까.

사실 저도 이해가 잘 안갑니다. 이상한 일이죠. 남겨진 후보는 ‘유령후보’ 와 접전을 벌이게 된 우스운 상황이 벌어졌죠. 상대 후보가 개인적으로는 사퇴를 했는데 코스타리카 선거법은 2차 선거에서의 사퇴를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후보 간 검은 거래가 있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봅니다. 사퇴한 후보가 6개월 전쯤에는 50% 가까운 지지율을 보였는데 최근 계속 하락세를 보여왔죠. 그래서 그가 이 선거는 스스로 당선이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 원인이 된 것 같습니다.

-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생결단 하는 일반적 정치 상황과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는 걸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코스타리카를 얘기할 때 또 하나의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군대를 처음으로 폐지한 나라라는 겁니다. 군대가 없는 나라,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코스타리카에서는 1948년 12월부터 사실상 모든 형태의 군대가 사라졌는데 다음해인 1949년부터 새 헌법이 제정되면서 비무장이 공식화됐죠. 군대가 없는 나라가 어떻게 가능한지 물으셨는데 코스타리카가 바로 산 증거가 아니겠습니다.(웃음) 그 배경에는 국제법과 국제기구, 그리고 정부에 대한 신뢰와 같은 생각들이 깔려 있습니다.

 

아웅산 사태로 북한과 단절, 한국 적극 지지

- 군대를 폐지한 이후에도 인접 국가와 갈등이 있지 않았습니까.

북쪽에 인접한 니카라과와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코스타리카에는 3개의 계절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우기인 겨울과 건기인 여름, 그리고 니카라과와의 ‘문제의 시즌’이 있다는 말이었죠. 특히 산후안 강(江)을 둘러싼 니카라과와의 국경 분쟁은 국제법적 문제로 크게 비화돼 왔습니다.

- 인접국가와의 그러한 분쟁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군대를 자발적으로 폐지할 수 있었는지 당시 상황을 좀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1948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이 발생하자 호세 휘겔레스(Jose Figueres)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내전이 발생하게 됩니다. 정부를 장악한 휘겔레스는 자발적으로 군대를 폐지시키고 역사적인 혁명의 주인공이 됐고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하면서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게 됩니다. 1953년 첫 민주주의 선거에서 스스로 대통령으로 당선했고 1990년대 들어서는 그의 아들도 대통령이 됐습니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었죠.

- 한국과 코스타리카가 국교를 수립한 게 50년이 넘었죠. 양국 관계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1962년 외교관계가 수립됐는데 이때 20개국이 넘는 남미지역의 나라 중 15개국이 넘는 나라가 수교를 맺었죠. 코스타리카는 언제나 친 민주주의 국가였고 그것이 국가적 이념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코스타리카 국민의 혼에 매우 강력히 심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과의 공통점이지요. 코스타리카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힘을 국제사회에서 적극 실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정치적 외교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국제무대와 남북관계에서 우리는 분명히 한국의 입장을 대변해 왔습니다.

- 지난달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아프리카의 보츠와나가 이를 근거로 북한과 국교를 단절해 뉴스가 됐습니다. 과거 코스트리카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죠?

현재 코스타리카는 북한과 비수교국가라서 인권 문제 때문에 단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웃음) 우리는 1974년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가 1983년 북한이 아웅산 테러를 일으키자 즉각 단교를 했던 적이 있었죠.

- 다시 북한과 외교적 관계를 수립할 계획은 없겠지요?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체주의 북한체제가 그 이유입니다. 코스타리카는 인권 측면에서 괜찮은 기록을 가진 나라입니다. 이 부분이 북한과 수교를 할 수 없는 큰 이유 중 하나이겠죠. 우리나라는 또 유엔 인권이사회의 오랜 정식 멤버국가입니다.

- 한국과 코스트리카 양국간의 경제협력을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그동안 무역에서는 큰 진전이 없었는데 2012년 양국 무역규모는 3억2600만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이중 5000만달러가 코스타리카의 수출액이었죠. 한국의 수출품목으로는 자동차가 2억7000만달러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가 전자, 마이크로칩 부품 등이 있습니다.

코스트리카가 한국에 수출하는 주요 품목은 코스트리카내 다국적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이 대부분이고 최근 크게 늘어나는 것이 커피입니다. 현재 양국 무역에서 한국이 유리하게 치우쳐 있는데 코스타리카도 돼지고기 수출 등 준비를 통해 서서히 수출량을 늘리고자 합니다.

- 민간 차원에서는 양국간 어떤 교류 협력이 이뤄지고 있나요.

코스타리카 학생들에게 한국 정부가 수여하는 장학금이 있습니다. 52명의 주한 코스타리카인 중 30명이 장학생입니다. 작년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코스타리카 국립대학이 MOU를 체결했습니다. 코스타리카 대학에 한국어 과정이 개설됐고 한국학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해외 관광객이 인구의 50% 넘어, 비결은 환경보호

- 코스타리카는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지난주 미국의 한 민간재단이 사회발전분야에서 코스타리카를 전 세계 21번째 순위에 올려놨어요. 남미에서는 당당히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코스타리카 국민들이 불평을 잘하는 기질도 물론 있어요. 그리고 아직 채워져야 할 많은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사회기반시설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법이 복잡해서 발전이 느리고 일이 빨리 처리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개인이 공공시설에 투자하다 무언가 잘못되면 소송에 들어가고 적어도 4~5년 걸리게 되는 거죠. 그래도 남미지역에서는 우리가 해외투자를 제일 많이 유치하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힙니다.

- 코스타리카는 또한 아름다운 천연환경과 관광으로도 유명하죠.

코스타리카 국토의 26%가 자연생태보호구역으로 설정돼 있습니다. 국토의 51%가 숲을 이루고 있고 아마 전 세계에서 나무를 가장 많이 심는 나라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지난 30여년간 환경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죠.

코스타리카에서는 농부가 나무를 심어서 산소 공급에 기여하면 현금이 지급됩니다. 우리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고 아직까지 이런 혜택을 주는 나라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보호 노력이 1970년대부터 시작됐는데 애초에 관광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자연적으로 세계적인 ‘에코투어리즘’ 명소가 됐죠.

- 결과적으로 경제적 측면에서도 선순환적인 선구적인 국가정책이었던 것이네요. 하지만 여전히 발전과 환경보호 사이에서 갈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금에 대한 채광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환경을 위해서지요. 지난주 어느 지역에 새 항구를 만든다고 하는데 이를 위해 2.5km의 4차선 고속도로를 깔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식물 생태 파괴가 심해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수많은 제약이 가해졌지요.

이와 같이 우리 국민들의 환경민감지수와 시민의식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경제적으로도 효과를 보고 있지요. 코스타리카 인구가 450만명인데 지난 1년간 해외 관광객이 230만명이었어요. 관광객이 코스타리카 인구의 50%가 넘는 것입니다. 에코투어리즘의 정신을 실천하는 ‘착한’ 관광객 들이죠. 우리 국민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첫째가 잘 정착된 민주주의이고, 둘째가 교육수준 그리고 셋째가 건강한 환경입니다.

- 국가적으로 취약한 점, 보완해야 할 점들은 어떤 게 있습니까.

20%에 달하는 빈곤계층이 문제입니다. 다른 남미국가와 비교하면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적은 수치는 아니지요. 그리고 이것이 아마 이번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도 가장 노력해야 할 부분이 될 것입니다. 국민들이 화가 나 있어요. 정부가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지 않다는 불신이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대사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민.관에서 여러 공직을 거쳤습니다. 정치에 몸담기도 했구요. 정보언론부처와 문화스포츠부에서 차관을 지냈기도 했습니다. 젊어서는 청년운동에 깊이 관여했고 빈곤퇴치와 사회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외교관으로서는 이스라엘 대사를 지냈고요. 그외 UNDP에 몸담으면서 여러 나라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인터뷰/김범수 발행인 www.kimbumsoo.net
정리/김경은 인턴기자 wenisekim@gmail.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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