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는 더 이상 강제 될 수 없다
KBS 수신료는 더 이상 강제 될 수 없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7.0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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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 30일 자신을 목사라고 밝힌 한 시민은 성명서와 보도자료를 기자에게 보내며 그렇게 말했다. KBS의 문창극 후보에 대한 왜곡과 편파보도를 항의하며 수신료를 낼 수 없다는 취지의 성명서였다. 단체의 이름은 ‘시청자주권찾기시민행동’이었다.

교회 목사님이 그러한 시청자 운동을 한다는 것이 의아했다.

“저는 노숙자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문창극 후보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들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의 원인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문창극 씨에게 친일 낙인을 찍은 KBS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 단체의 대표 김정필 목사(하늘부흥교회)는 너무나 기가 막혀 KBS를 찾아가 1인 릴레이 항의 시위를 하자고 몇몇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고 순식간에 20여명이 동의를 해줬다고 한다. 이번 KBS 수신료 거부 시위는 그렇게 시작됐다. 언론에 보도가 되자 우파 논객 변희재 씨와 서경석 목사 등이 ‘KBS수신료거부운동본부’를 결성해 본격적인 항의집회를 KBS 앞에서 열었다. 이번 KBS의 문창극 후보에 대한 보도는 전문적인 시민운동 단체가 아닌 일반 시민들을 KBS 앞으로 모이게 했다. 그 정도로 보도는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도 남았다.

 

일반 시민들을 모이게 한 KBS 보도

문제는 처음 이 보도를 작성해 내보낸 홍모 기자였다. 그는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다가 지난 정연주 사장의 외부인사 특채시에 KBS에 입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온라인과 SNS상에서는 홍모 기자가 자신이 KBS에 입사하기 위해 자신의 이념을 숨기고 KBS 심사위원들의 입맛에 맞는 대답을 했다는 고백이 보수진영의 네티즌들을 통해 급속하게 확산되기도 했다. 사실이라면 이는 KBS 기자가 특정이념에 경도돼 고의적으로 문창극 후보의 동영상을 친일로 왜곡 편집해 보도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왜 저희들은 보기 싫은 KBS를 돈을 내가며 봐야 한다는 겁니까. 시청자의 선택권은 어디에 있는 것이죠?”

김정필 목사는 그렇게 항의한다. 미디어 이론을 공부한 바 없는 성직자이지만 본질적으로 공영방송의 수신료 논쟁의 본질을 짚어 버렸다. 왜 우리는 강제로 수신료를 내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지난 10여년간 지치지 않고 논의되는 우리 사회의 이슈 가운데 하나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TV 수신료를 전기료와 합산해 징수하는 것에 합헌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이유는 공영방송 재원을 위해 수신료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그 징수 방법을 방송법이 KBS가 아닌 제3자를 통해 위탁징수하는 것은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 이는 수신료를 TV 수상기에 대한 부과금으로 보는 해석이었다. 하지만 헌재는 수신료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강제징수하기 위해 전기를 끊는 행위는 위헌적이라고 명시했다.

이러한 헌재의 해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같은 문제가 일본에서 일어났을 때 일본은 NHK의 수신료를 TV 수상기에 부과하는 부과금이 아니라 공영방송을 국민이 수신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수수료로 봤다.

 

주변국과 다른 수신료 지불 방식

따라서 당연히 공영방송의 질과 품격에 하자가 생기면 수요자 입장에서 수신료에 대한 거부나 인하 요구가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NHK는 수신료를 시청자가 자율납부하는 제도로 운영해 왔다.

수신료를 TV 수상기에 대한 당연 부과금으로 보고 이를 또 전기료와 합산징수하게 되면 시청자들은 KBS의 방송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항의할 방법이 없다.

이런 식으로 수신료를 걷는 나라는 터키와 우리나라뿐이다. 이런 식의 징수는 과연 정당할까.

2004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의결했고 이에 KBS는 무려 12시간 동안 탄핵방송을 하면서 ‘탄핵에 국민은 없었다’와 같은 내용의 보도마저 편성했다. 방송에는 ‘헌정중단’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이에 탄핵에 찬성했던 민주당은 ‘KBS의 편파 보도’를 주장하며 한나라당과 함께 ‘수신료 분리징수’를 주장하며 나섰다.

조순형 대표와 장성원, 박금자, 양승부, 심재권 의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연이어 KBS를 방문해 안동수 부사장과 면담했고 그 자리에서 조순형 대표는 “많든 적든 (탄핵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갈리고 있는데 어떻게 헌정 중단 사태가 잘못됐다고 하느냐, 이래서 어떻게 국민 시청료로 운영되겠느냐”고 지적한 뒤 “수신료 분리징수, 통합징수 문제가 나왔을 때 당내에서도 분리징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지만 (한나라당에) 협조하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우리가 협조하면 내일이라도 통과시킬 수 있다”고 압박했다. 한나라당은 이후 탄핵이 헌재에서 기각되자 KBS 수신료 분리 문제를 사실상 포기해 버렸다.

이 문제는 2008년 이헌 변호사 등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위헌소송에서도 기각되면서 수면밑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2011년 한나라당이 KBS 수신료 인상을 기습처리하려 하자 비교섭단체인 자유선진당으로 이적했던 조순형 의원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조 의원은 당시 한나라당과의 협조를 거부하며 “KBS 수신료는 전 국민이 부담하는 준조세나 다름없다”며 “수신료 인상안 심의과정에서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공적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했는지,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자구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 적절한 수신료 배분과 수신료 결정방식이 합리적으로 진행됐는지를 심도 있게 검토하는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한나라당과 KBS로 하여금 진땀을 흘리게 만들었다.

당시 김창수·조순형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수신료 인상 선행조건으로 제시했던 것은 △KBS 지배구조 개선과 광고 축소 내지 폐지 △KBS의 조직 정비와 경영합리화 및 구조조정 선행, △난시청 해소 및 재난방송 역할 강화 등 공적 책임 실천방안 마련, △수신료 통합 징수제도 폐지 등이었다.

KBS 수신료 문제는 다른 나라들의 경우도 그렇지만 공영방송의 문제와 항상 결부된다. 각 나라들은 수신료에 대해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제도를 취하고 있다. 영국 BBC와 독일 공영방송들은 수신료를 의무화하지만 당연히 이에 대한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일본 NHK의 경우 수신료 자율납부제를 의무납부로 전환하면서 국민들의 저항에 봉착해 있다. NHK는 형식적으로는 수신료 의무납부를 고지하지만 우리처럼 강제징수는 하지 않는다. 다만 수신료를 자율납부할 경우 수신료 할인 혜택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수신료가 체납되는 경우 방문징수 등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공영방송이라 할 수 있는 PBS의 경우 시민들의 후원금과 정부 보조금으로 방송을 제작한다. 따라서 교양과 교육을 위한 고급 다큐멘터리들이 제작돼 왔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가 PBS에 대한 정부지원을 계속 한 결과 PBS는 공영방송의 독립적인 마인드를 많이 잃어버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렇듯 각 나라들은 공영방송의 수신료를 의무화하거나 자율납부로 하거나 또는 기부와 후원에 맡기는 등 서로 다른 제도를 시행하고는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정치적 중립과 공동체 가치를 위한 공익성, 그리고 재난과 같은 위급시에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안전망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KBS는 과연 그러한 공영방송의 역할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지난 2012년 KBS는 정권말의 공백기를 틈타 ‘13억 대륙을 흔들다, 음악가 정율성’ 편을 방송했다. 정율성은 <인민해방군가>와 <조선인민군가>로 대표되는 군가, 행진곡 작곡가였다. 6·25 때는 중공군으로 지원해 참전도 했다. 당시 KBS는 그러한 정율성에 대해 일방적인 미화 다큐로 방송을 내보냈다. 프로그램에서 <인민해방군가> 외 다른 군가는 전혀 다루지 않았고 또 다른 대표곡으로 정율성이 북한군에 전쟁을 잘 하라고 만들어 준 <조선인민군가>는 일체 언급이 안 됐다.

대신 모호한 항일행적과 <연안송>, <연수요>처럼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덜한 노래 몇 곡을 소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는 말미에 역사학자도 아니고 음악전문가도 아닌 김대중 정부 당시 정보분야 책임자가 나와서 ‘이런 분도 외면하지 말고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기자’는 멘트로 결론을 내렸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 KBS

이에 KBS 공영노조는 ‘추악한 프로그램 정율성보다 더 추악한 제작자들과 간부들’이라는 성명을 통해 이 프로그램의 부당성을 비판했던 바 있다.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여당 측 위원들이 “정율성은 대한민국을 침략해 파괴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유린하는 데 가담했다”며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비난하자 다큐를 제작한 박건 PD는 한 매체에 보낸 글에서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측을 북한내 체제 옹위파와 등치시키며 “내가 수호하고 싶은 체제는 냉전 이데올로기를 교묘히 이용해 잘 먹고 잘사는 그런 체제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던 바 있다.

이러한 KBS 제작자의 태도는 KBS 내에 공영방송으로서 실질적 기능이 무너져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어찌 보면 문창극 사태는 그런 KBS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전개될 수 있는 또 다른 ‘애국’이고도 남는다.

KBS의 수신료가 지금처럼 국민의 준조세로 징수되는 것이라면 KBS는 대한민국 헌법이 명시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규범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만일 그러한 자유를 누리려면 KBS는 스스로 수신료를 거부하고 민영방송으로 나서든지, 아니면 시민모금을 통한 또 다른 공영방송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 어느 국민도 KBS에 수신료를 납부하면서 자신의 이념과 가치에 맞지 않는 방송을 볼 의무가 없으며 보기 싫으면 보지 말라는 태도라면 수신료도 자율납부제로 바꾸는 것이 옳다.

왜 방송 수신료가 무조건 TV 수상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내야 하는 ‘강제 부담금’이라는 건가. 더구나 KBS는 국가가 출연한 세원을 재투자하는 공기업이다. 흑자가 나면 다른 공기업들처럼 배당을 해야 하지만 우리 방송법은 KBS 공영방송의 발전을 위해 이익금을 배당하지 않고 국회 동의를 얻어 유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실제 국회는 늘 KBS의 배당 유보에 손을 들어 줬다. 그리고 적자가 날 때는 KBS에 지원을 해줬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정직하게 실토하는 KBS 공영노조의 성명 한 대목을 읽어 보자.

지금 KBS에는 반국가, 반정부 성향을 드러내야 자율성이 확보된 것으로 행세하는 비뚤어진 문화가 일부 제작자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자율의 전제는 다양성과 자유다. 획일적 시각에 눌려 있는 집단이 주장하는 자율은 정당성이 없다.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을 펼치는 것을 제작 자율로 호도하지 말라. 그리고, 대한민국 법률의 보호와 감시를 받고 있고 가가호호 수신료를 거두어 들이는 KBS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공격하고 부정하지 말라. 그럴 거면 KBS를 속히 떠나 재야 운동가로 나서라.
- 2012년 1월 16일 KBS공영노동조합 ‘추악한 프로그램 정율성, 더 추악한 제작자와 간부들’ 성명 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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