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을 둘러싼 ‘끝나지 않는 진통’
통진당을 둘러싼 ‘끝나지 않는 진통’
  • 이원우
  • 승인 2014.08.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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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통합진보당(통진당) 정당해산심판 8차 공판이 진행됐다. 이 날 공판이 특히 눈길을 끈 이유는 노회찬 前 민주노동당 의원이 통진당 측 증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노회찬은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민노당) 시절부터 관련 세력들의 이합집산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인물 중 하나다.

민족해방 노선의 NL계열이 주류를 점하고 민중민주노선의 PD계열이 연합하는 형태로 출범한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떠들썩한 분당 사태를 경험한 것은 2006년 일심회 간첩사건 때였다. 이 사건에 민노당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자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의 PD계열은 2008년 총선 전에 탈당해 진보신당을 결성했다.

통합진보당은 바로 이 진보신당에서 또 다시 탈당한 이들(새진보통합연대)과 민주노동당, 유시민으로 대표되는 국민참여당 등이 ‘통합’하며 창당된 정당이다. 노회찬은 이 과정에도 참여했으며 통진당은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연대하며 무려 13석의 의석을 가져갔다.

이석기는 이 과정에서 비례대표 2번을 낙점 받으며 국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이내 ‘경기동부연합’으로 대표되는 종북 성향의 네트워크가 유시민 세력에 의해 폭로되며 통진당은 다시 한 번 분당 사태를 맞게 된다. 통진당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 바로 현재의 정의당이며 현재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 등이 모두 정의당 소속이다. 결국 노회찬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지는 NL계열의 종북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인물로 간주될 근거가 충분한 인물이다.

노회찬 “민노당-통진당 북한과 관계없다”

문제는 그런 노회찬이 정당 해산에 회의적인 관점을 표명하면서 통진당의 종북 성향을 부정했다는 점이다. 8차 공판 증인석에서 노회찬은 “몇몇 개인의 개인적 언행에 종북이라는 표현을 쓸 만한 데가 있을 수 있으나 당의 노선으로서 종북주의가 관철된 바도 없고 그런 노선변경 시도도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민노당과 통진당 모두 북한과 관계가 없다고 진술했다. 민노당의 분당 원인에 대해서는 ‘패권문제’라고 대답하며 북한과는 선을 그었다.

2012년 9월 통합진보당을 탈당하는 계기에 대해서도 단순한 ‘견해 차이’라는 쪽으로 진술했다. 즉, 당시 문제가 됐던 당내경선 과정에서의 부정은 “어느 한 정파에 의해서만 이뤄진 게 아니고 밝혀진 바에 따르면 거의 (모든 정파가) 다 관련이 돼 있었으므로 (…) 선출된 이들이 희생적으로 물러서는 것으로 속죄해야 한다고 판단했으나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고, 그것이 탈당과 분당에까지 이르렀다”고만 진술했다. 종북 성향이 탈당과 분당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다.

22일 같은 건으로 헌법재판소에 증인으로 출석해 “통진당이 객관적으로 주사파(종북) 세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진술한 이종철 청년지식인포럼 회장은 노회찬의 위 발언에 대해 “(통진당의) 분당 쟁점을 다르게 바꾸고 있다”며 비판했다.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회장은 “(통진당 측의 진술은) 상대방의 입을 통해 종북이 아니었다고 말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노회찬의 발언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재판부는 노회찬의 관점을 어디까지 수용할까. 이 문제는 때마다 ‘노선 차이’로 갈등을 빚으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국내 좌파세력의 성향과 정치 패턴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

노회찬의 진술이 좌파진영 내부에서 나온 ‘엄호사격’이었다면 세력 외부, 그러니까 종교계에서 나온 비호는 또 다른 방식으로 논점을 변화시켰다.

내란음모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던 이석기 통진당 의원에 대해서는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서울고법 형사9부, 부장판사 이민걸). 지난 28일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1심 때 구형했던 징역 20년의 정당성을 재차 강조하며 “피고인이 대한민국을 적으로 규정한 혁명조직 RO를 통해 내란범죄 실행을 구체적으로 준비한 점을 고려할 때 원심이 선고한 징역 12년은 지나치게 가볍다”고 밝혔다. 결국 검찰은 다시 한 번 징역 20년을 재판부에 구형했다.

 

교단 지도자들 ‘이석기 선처’ 탄원

4대 종단 성직자들이 재판부에 ‘이석기 선처’를 탄원한 것은 구형 바로 전날인 7월 27일이었다.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과 불교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김영주 목사,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 등 4대 종단 최고위 성직자들은 서울고법 형사9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특히 피고인측 가족들을 1시간가량 면담한 것으로 알려진 염수정 추기경은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이석기 등에 대한 재판부의 선처를 탄원했다.

내란음모 혐의자에 대해 최고위급 종교 지도자들이 직접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역풍(逆風)의 조짐 또한 심상치 않다. 종교지도자들의 탄원 소식이 알려진 직후 한국교회언론회,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호국보훈안보단체연합회 등은 곧장 규탄성명을 냈다.

기독북한인연합, 망명북한펜센터, 북한개혁방송, 북한민주화위원회, 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 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 NK지식인연대, 자유북한방송, 하나여성회 등 탈북자단체 또한 일제히 반박성명을 발표했다. 정규재TV를 진행하고 있는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또한 염 추기경의 행동에 대해 ‘너무 가벼운 처신’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분명한 사실은 세간에 엄청난 충격파를 주며 시작된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세력의 종북 논란이 어느덧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논점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지만 통진당 사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너무 빠른 적응은 이 중대한 문제에 관한 매듭짓기를 시시각각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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