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정치싸움’은 시작됐다
교육계 ‘정치싸움’은 시작됐다
  • 이원우
  • 승인 2014.08.1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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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교육감 대거 당선 직후 ‘자사고 취소’ 움직임 가시화

지난 6월 4일 치러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여당의 승리인지 야당의 승리인지 판단하기 힘든 애매한 결과로 마무리됐다. 각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아전인수격의 결과분석이 이어지는 형국이지만 교육감 선거가 좌익 후보들의 ‘압승’으로 마무리 됐다는 점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에게 이름조차 생소했던 조희연 후보가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된 사실을 위시해 경기도 이재정, 인천시 이청연 등 17개 광역단체 중 무려 13곳의 교육감 선거가 좌익 후보의 승리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교육감과 경기도교육감이 전부 좌익이라는 점은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처음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무상급식 등의 이슈가 전국적인 정치 이슈로 확대되는 데는 서울과 경기를 아우르는 일련의 ‘공조 체제’가 존재했다. 언제나 밑그림을 그리는 건 학생 숫자가 서울보다 많은 경기도였다. 전임 김상곤 前 경기도교육감이 추진한 이슈를 곽노현 前 서울시교육감이 이어받으면 대한민국 전체 학생들 중 절반가량(약 280만명)이 포섭되는 전국적 이슈가 생성돼 있었던 것이다.

2012년 12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재선거에서 우파 성향의 문용린 후보가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되면서 경기-서울의 협조체제에는 잠시 균열이 생겼다. 그러나 2014년 6월 선거 이후 상황은 재차 반전됐다.

박원순-조희연-이재정의 ‘좌익 삼각형’

교육감 선거가 한쪽의 압승으로 끝난 데다 서울시장 박원순 후보까지 재선에 성공하면서 경기도교육청 이재정·서울시교육청 조희연·서울시청 박원순으로 이어지는 좌익의 삼각형(left triangle)은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한 공조체제를 형성하게 됐다.

세 사람의 관계는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각별하다. 일단 이재정과 조희연의 인연은 성공회대학교로 이어져 있다. 신학대학으로 설립된 성공회대를 어엿한 ‘4년제 IN서울 종합대학’으로 발돋움시킨 데는 이재정 前 총장의 혁신적 리더십이 큰 역할을 발휘했다. 문제는 이재정의 혁신이 오로지 ‘왼쪽 방향’을 향해서만 이뤄졌다는 점이다.

‘교수들 옥살이 햇수를 더하면 육십갑자’라는 농담이 떠돌 정도로 성공회대 교수 임용은 좌편향적으로 이뤄졌다. 본지는 지난 469호 커버스토리를 통해 성공회대의 ‘왼쪽 성장’에 김승연 회장의 한화그룹이 깊게 관여돼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조희연은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20년 복역 후 출소해 성공회신학대학에 임용된 신영복 다음으로 합류한 인물이다. 그는 좌익 경제학계의 대부인 박현채와 함께 80년대 학생 운동권을 주름잡았던 사회구성체 논쟁을 주도하기도 했다. 조희연 교수와 함께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했던 박원순 변호사는 2011년 “내가 다시 젊어 대학을 간다면 나는 성공회대 학생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쓰기도 했다.

성공회대에 적을 두고 활동하면서 수십 권의 책을 저술한 조희연 교수지만 교육문제와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집필 활동을 한 것은 올해 초 교육감에 출마하면서 펴낸 ‘병든 사회 아픈 교육’이 처음이다. 이 책을 보면 ‘교육감 조희연’의 정책적 지향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의 교육 현장 전체를 ‘과잉경쟁’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이 책의 40페이지에는 흥미롭게도 박정희가 등장한다(‘박정희라면 특권 귀족고 현상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조 교육감(당시 후보)은 박정희의 1969학년도 중학교 무시험 진학, 1974년 고등학교 무시험 진학 정책을 ‘과잉으로 치닫는 교육 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박정희의 고육지책’으로 언급했다. 그리고 현재의 교육 경쟁을 재차 상기시키며 “경제적·계급적 불평등을 통한 교육 불평등이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없앤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이 책에서 ‘이 비정상적인 입시 경쟁을 혁파하기 위한 급진적 생각까지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썼다.

 

이재정, 자사고 1곳 ‘지정 취소’ 평가

‘급진적 움직임’은 이번에도 경기도에서 먼저 시작됐다. 신임 이재정 교육감은 취임 만 20일이 되지 않은 지난 7월 18일 자율형사립고(자사고)로 운영되는 안산 동산고등학교에 대한 지정취소 협의 신청서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이는 학교재단과 학부모들의 자율과 재량을 존중한다는 점 때문에 좌파들로부터 ‘귀족학교’라는 비난을 듣는 자사고에 대한 좌파 교육감의 ‘상징적 공격’으로 이해된 측면이 크다.

우파 성향의 학부모단체와 시민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자유경제원은 7월 23일 긴급 토론회를 개최해 자사고 폐지 움직임에 담긴 의미를 분석했다. 패널로 참석한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는 “일반고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자사고를 폐지한다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성토하며 “좌파 교육감들의 역점 사업인 혁신학교야말로 세금 지원을 받고 있는 특권학교”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조형곤 21세기미래교육연합 대표는 흥미로운 자료를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조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에 따라 자율형 사립고가 대거 등장하자 중고등학생의 해외 조기유학은 크게 줄어들고 있음이 확인됐다”며 ‘15세 내국인 국제이동현황’ 통계자료를 첨부했다. “결과적으로 자사고가 매년 1조원의 국부 유출을 막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 조 대표는 “국내적으로는 매년 3000-4000억원의 세금을 절약하는 계기가 자사고로 인해 마련됐다”고 주장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역시 7월 28일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서 바른교육실천행동 대표 김기수 변호사는 “자사고 폐지는 대통령 고유한 권한이지 교육감의 권한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관련 초중등교육법 법령을 근거로 제시했다. 한편 지정 취소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안산 동산고 측은 지난 7월 30일 “평가점수 산정이 잘못됐다”며 재평가를 요구하고 나서며 경기도교육청과 대립했다.

학교들이 신입생 모집 요강을 확정하고 학생 선발 절차에 들어가려면 늦어도 8월 초에는 자사고 지정 여부에 대한 결론이 정해져야 하지만 자율(自律)과 특권(特權)을 혼동하는 해묵은 논쟁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교육계는 다시 한 번 정치 싸움의 지난한 터널 속으로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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