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아시안게임 참여, 통일은 가까워질까 더 멀어질까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여, 통일은 가까워질까 더 멀어질까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4.08.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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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발행인

북한은 지난 7월 17일 열린 판문점 남북실무접촉에서 오는 9월 개최되는 인천아시안게임에 700여명의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하겠다고 통보했다. 한달 전에는 150명 규모의 선수단을 보내겠다고 통지하더니 갑자기 응원단까지 더해 선수 및 임원단과 응원단을 각각 350명씩 보내겠다고 한 것이다.

북한은 왜 갑자기 아시안게임에 대규모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하겠다고 하는 걸까? 남북한의 신뢰회복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우리 사회에서는 ‘남북관계의 훈풍’이니 ‘화해모드’니 하며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여를 환영하는 목소리가 대세다. 조금 거북하더라도 드러내놓고 반대를 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고 그러자면 ‘반평화주의자’ 혹은 ‘수구꼴통’으로 몰리는 걸 감수해야 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과거 국제사회는 인종차별정책(Apartheid)을 유지하고 있던 남아공의 국제 스포츠경기 참여를 일제히 보이콧했고 이것이 1994년 남아공의 차별정책 폐지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

국제사회, 인종차별 남아공의 스포츠 보이콧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은 네덜란드 식민통치시대 때부터 존재하다가 1948년 공식 입법됐다. 아파르트헤이트 법안은 남아공의 국민들을 흑인, 백인, 유색인, 인디언 등 4개 인종으로 분리하고 지역을 인종별로 할당했다. (한국, 일본 등 경제적 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의 일부 아시아인들에게는 ‘명예 백인’이라는 타이틀과 권리를 부여하기도 했다.) 지역구분 정책에 따라 1960년부터 약 350만명의 비(非)백인들이 자신의 고향과 집에서 강제로 쫓겨났고, 1970년부터는 비백인들의 정치 참여가 아예 금지가 되고 흑인들은 시민권리가 통째로 뺏기기도 했다.

이에 남아공 국내외에서 저항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 등 국제 스포츠계가 여기에 동참해 남아공을 멤버에서 축출하고 각종 스포츠 경기로부터 보이콧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국제정치학자들은 남아공이 1991년 인종차별정책을 공식 폐지하고 1994년 넬슨 만델라가 선거에서 승리한 배경에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보다 국제스포츠계의 보이콧이 남아공 정부에 더 강력한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한편 북한 문제에 대해 스포츠계가 아무런 관심이 없는 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내부에서 남아공과 같은 저항운동이 없는 건 북한 정권이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악랄한 대국민 탄압정책과 출신성분에 따른 주민격리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민들은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 등 3대 계층과 51개 세부 분류로 나뉘어 배급 등에 철저히 적용되며 인구 70%에 해당하는 동요계층과 적대계층은 평양이나 인근 지역에서 추방돼 함경도 등 ‘변방’지역에서 거주하고 있고 90년대말 아사한 300만명의 주민들도 대부분 이 두 계층 소속이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국제사회나 우리나라는 북한을 보이콧하기는 커녕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이다. 우리는 ‘평화’와 ‘용서’의 국민이기 때문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방한에서 과거 요한 바오로 2세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분명한 언어로 정죄했던 것처럼 북한 독재체제를 준엄하게 꾸짖어 주실 것을 기대했던 것 또한 비현실적 몽상이었던가?

2005년 8월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입국중인 북한응원단 일행. 이 중에는 후일 김정은의 부인이 된 리설주도 있었다

남남갈등 부추겼던 북한 ‘미녀 응원단’ 컴백?

과거 북한의 응원단이 대거 우리나라에 입국해 우리 사회를 흔들어 놓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9월 부산아시안게임에 처음으로 280명의 북한 응원단이 파견돼 인공기를 흔들며 체제선전을 펼쳤고 이는 그해 노무현 정부의 탄생과 연이은 효순이 미선이 사태 등 반미운동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당시 언론들은 ‘북한의 미녀들이 남한 남성들의 정신을 쏙 빼놓고 있다’며 ‘평양미인신드롬’이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부산아시안게임 직후 국내 최대 결혼정보회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남한 남성 64%가 “예쁘고, 순박하고, 정조관념이 강할 것 같다” 등의 이유로 북한 여성과 결혼하고 싶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하에서도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 303명, 2005년 9월 인천 아시아육상대회에도 리설주를 포함한 101명의 ‘미녀 응원단’이 파견돼 선전활동을 펼쳤다. 이들이 가는 곳마다 이들을 보겠다며 언론과 국민들이 몰려들었다. 길에 걸린 김정일 환영 플래카드가 비에 젖었다며 타고 가던 차에서 내려 눈물을 흘리며 플래카드를 걷어 품에 안고 가던 북한 응원단 소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처음엔 그들을 그저 호기심으로 바라봤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내 거기에 익숙해졌다. 세상이 참 이상하게 돌아가던 시절이었다.

김정은의 북한이 이번 아시안게임에 참여하고자 하는 배경을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대대적인 대내외 체제 홍보와 선전, 그리고 이를 통한 대북제재 완화 및 경제적 지원 유도, 남남갈등 유발 등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들의 체제 선전에 동원되는 미녀응원단의 남한체류 비용도 남한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 겠는가. 

 

김범수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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