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선배’에게 듣는다
통일의 ‘선배’에게 듣는다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4.08.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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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프 마파엘 독일대사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났을 때 생긴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행운을 잡을 준비가 됐을까? 통일이 더 이상 머나먼 미래의 일이 아님을 알리는 듯 최근 정부는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통일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 아래서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는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그러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이뤄냈다. 구(舊) 동독 재건을 위해 투입된 천문학적 비용 부담 때문에 한때 독일은 큰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며 유럽의 병자(the sick man of Europe)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20여년. 현재 독일은 ‘유럽의 엔진’으로 거듭나며 유럽의 강자로 부활했다.

이런 독일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지난 7월 1일 만난 롤프 마파엘(Rolf Mafael) 주한 독일대사는 독일의 성공적인 통일 과정과 한국과 독일의 관계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 한국에 오신 지 2년쯤 됐다고 들었는데요. 한국생활은 어떠십니까.

서울은 굉장히 살기 좋고 흥미로운 도시입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의 여러 곳을 여행하곤 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특히 강원도 설악산과 낙산사, 전라남도 해남의 독일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이 인상에 남습니다. 독일대사로 한국에 근무하는 것은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독일의 국가 이미지가 좋은 편이고, 한국인들이 우호적으로 대해주기 때문에 일하기도 편하죠.

- 최근에는 특히 독일이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많은 시선이 쏠렸는데요. 통일된 독일의 이름으로 얻은 우승이라 더 값진 것 같습니다. 독일 축구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장기적인 계획 수립과 팀워크에 비결이 있다고 봅니다. 독일은 2001년부터 후진 양성을 체계적으로 시작해 10년 넘게 꾸준히 투자하고 선수들을 양성했어요. 감독이나 코칭스태프들이 개인 위주가 아니라 팀워크를 중요시 했습니다. 이번 월드컵 우승의 원동력은 팀워크라고 생각해요.

“서울은 흥미로운 도시 … 한국 근무는 특권”

- 작년이 한독 수교 130주년이었습니다. 양국의 주요 교류 현황을 소개해주세요.

한국과 독일의 교류는 100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습니다. 양국이 UN, G20, OECD에 함께 속해 있어 서로 협력하는 부분이 많기도 하고요. 한국은 여러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금융시장 안정, 기후, 환경보호 등 글로벌 문제들에 있어서 독일의 주요 파트너입니다. 또한 세계 안보정책에서도 주요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죠.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 해적을 퇴치하는 데 양국이 함께 참여 중인 것이 대표적이겠네요.

- 정치와 경제 분야 교류는 많은 편이지만 상대적으로 문화 분야의 교류가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국민들 간의 문화 교류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제 생각엔 독일 문화가 이미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다고 생각해요. 독일 출신의 세계적 작가인 괴테,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은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습니다. 오케스트라와 세계 5대 발레단 중 하나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자주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고요. 반면 한국 문화는 독일에 덜 알려져 있어요. 양국의 균형 잡힌 문화 교류를 위해 앞으로 한국 문화를 독일에 더 많이 알릴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독일은 여행지로도 각광받고 있는데요. 관광 인프라 시설이 워낙 작 발달돼 있어서 여행하기 수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으니 베를린이나 프랑크프루트와 같은 독일의 대표 도시에서 한국 드라마를 촬영하면 어떨까 싶어요. 최고의 광고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웃음)

- 최근 독일의 국내 이슈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9월에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예정돼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동독 공산당에 뿌리를 둔 링케당(Die Linke, 좌파당)의 후보가 주총리에 당선될 가능성이 있나요? 연정 가능성에 대해서도 궁금한데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링케당이 많은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공산주의’라는 단어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선출한 모든 정당이 정부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고 생각을 하고요.

연정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과거 독일에서는 사회민주당(SPD)과 링케당이 연정을 이룬 적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를린 같은 경우에는 베를린 주정부 내에 사회민주당과 좌파당이 연정을 이뤘던 적이 있었고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브란덴부르크 등에도 연정을 이룬 사례가 있습니다.

현재 독일은 서로 사상이 달랐던 서독과 동독이 합쳐진 국가입니다. 과거 공산주의를 지지하던 동독 사람들의 정치적 의사도 독일 정치에 충분히 반영돼야 합니다. 그들의 정치적 성향과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 것이 정상적이고 건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독일 중앙정부는 링케당을 연정 파트너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다음 2017년 국회선거에는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드레스덴에서는 친환경에너지 발전 사업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비중이 많게는 50% 정도 된다고 하던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나요?

현 정권의 에너지 정책 핵심은 ‘핵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 에너지원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50% 이상의 에너지가 드레스덴 지역에서 태양열로 생산된다는 점은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주목할 점은 독일 정부는 2022년까지 독일의 모둔 원전을 폐쇄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겁니다. 8년밖에 안 남았죠. 그때가 되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아져 있을 겁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2015년에는 40%를 돌파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일이 주변국들에 사과한 이유는 일본과 다르다(?)

-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독일은 반(反) 러시아 전선의 최전방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독일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문제와 우크라이나 사태는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취해 왔습니다. 다만 러시아에 대해 너무 성급한 제재를 가하기보다는 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열어놓자는 입장이었죠. 그래서 제재 조치에 대한 독일의 태도는 상당히 신중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을 보호하거나 군사무기 교류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독일은 러시아가 국제사회와 대화하길 원했습니다만 말레이시아 항공기 피격사건을 대하는 러시아의 태도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러시아에게 강력한 제재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 한국과 일본은 민감한 역사·과거사문제로 갈등을 반복해오고 있는데요, 일본과 달리 독일은 철저히 과거사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사과했는데 왜 일본은 그러지 못하는 걸까요.

동북아 지역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게 국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입니다. 이런 중요 지역 내에서 국가 간 외교 갈등이 지속되는 건 우려되는 현상입니다. 최근 한일관계, 일중관계 등 동북아 지역 내 문제들이 더 악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하루빨리 동북아 국가 간 문제가 개선되길 바랍니다.

2011년 9월에는 서울 종로구에 한중일 세 나라 정부가 설립한 국제기구인 한중일협력사무국(Trilateral Cooperation Secretariat)이 설립됐습니다. 이 국제기구는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국제기구 설립은 동북아 지역의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독일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주변국과 화해하는 것이 독일 발전에 있어서 절실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어느 국가든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 한국 입장에서 독일은 통일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데요, 독일 통일에 대해 궁금한 점들이 많습니다. 특히 올해는 독일 통일 24주년,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만 느낌이 어떠신지요.

대부분의 독일인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독일 통일이 행복하고 기쁩니다. 25년이 지난 지금은 통일비용 부담이 거의 끝나가고 있기도 하고요. 현재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된 당시보다 더 발전하고 강해졌기 때문에 ‘통일이 독일의 발전에 큰 디딤돌이 됐다’고도 말할 수 있죠.

- 독일 통일이 가져온 구체적인 성과와 이득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구 동독지역에 사회 인프라가 성공적으로 설치됐습니다. 드레스덴, 바이마르, 포츠담과 같은 옛 주요 도시들이 복원됐고 과거와 현대가 조화를 이뤄 더 발전된 도시로 변화했죠. 정치적으로는 동독 출신의 연방총리와 대통령이 선출된 점을 꼽을 수 있겠네요. 구 동독의 경제성장률도 서독의 경제성장률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이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독일은 이미 하나의 국가가 됐다고 봅니다. 경제적, 정치적 성과도 중요하지만 통일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심리적 측면의 변화입니다. 통일 전 서독인들은 최고가 돼야 한다는 경쟁심과 불안감이 있었어요. 그러나 통일 이후에는 삶의 만족도와 행복지수가 올라갔습니다. 국민들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은 거라고 봅니다.

최근 독일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는 걸 실감합니다. 독일이 통일되지 않았다면 지금만큼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통일 후 ‘하나의 독일’이 돼 개최한 2006년 독일 월드컵은 큰 의미가 있었죠. 과거 분단 시절에는 동서독이 하나가 돼 월드컵을 즐기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으니까요.

“대북정책 핵심은 일관성과 지속성”

- 통일이 완성됐다고 하셨는데 아직 남아 있는 과제들은 없을까요?

공식적으로 독일에서는 2019년이 되면 통일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 동독지역에 위치한 주들을 ‘신 연방주’라고 부르는데 2019년에 이 연방주들에 대한 재정지원이 완전히 끝나거든요. 메클렌부르크와 같은 주는 아직 경제적으로 취약해 지원이 더 필요하지만 그 외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에서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는데요. 이 회담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근혜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의 정상회담은 매우 생산적이었다고 평가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던 비슷한 시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일본 외무 장관이 독일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한중일 3국의 최고위급 정치인들이 독일을 방문해 한독문제뿐 아니라 전반적인 동아시아 정세를 파악할 수 있었고 경제협력에 관한 여러 의제들을 논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친한 해외 정치인으로 메르켈 총리를 꼽았을 정도로 두 정상은 인연이 깊어요. 회담 결과가 한독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확신합니다.

- 정상회담 중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기 위해 다면적 협력체계를 구축해서 독일의 통일과 통합 경험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3~4년 전부터 양국의 통일전문가 자문회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매년 고위급 전문가들이 만나고 있고요. 독일 측에서는 동독의 마지막 총리인 데메지에르 총리와 슈뢰드 전 동독 인민회의 내 사민당 원내대표가 자문회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 개최된 한독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과 독일이 외교부 차원에서 통일을 위한 외교정책을 위한 전문가 회의를 구성할 계획입니다. 올해 하반기에 처음으로 양국의 외교정책 전문가들의 만남이 이뤄질 것입니다. 더불어 한국과 독일 대학 간 통일 관련 공동연구가 진행될 예정이고요. 독일에서는 베를린 자유대학이 참여합니다.

- 마지막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한국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1969년부터 추진된 독일의 동방정책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1989년까지 일관적으로 유지됐습니다. 20년간 지속적으로 통일정책을 추진했기에 독일 통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통일을 준비하는 한국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의 대북정책은 지속성 없이 정권에 따라 좌우되는 경향이 있는데요. 대북정책의 핵심은 일관성과 지속성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터뷰/김범수 편집위원 www.kimbumsoo.net
정리/한은희 기자 snail_no1@naver.com
양희경 인턴기자 hkyang13@gmail.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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