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바이러스도 막지 못한 것
에볼라 바이러스도 막지 못한 것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4.08.2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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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미국 선교사가 미국 사회에 던진 질문

올해 33세의 켄트 브랜틀리는 의사다. 그는 지난해 7월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그리스도 동남부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아프리카 라이베리아로 2년 간 의료선교를 떠난다는 인사를 했다. 그동안 아이티, 온두라스, 케냐, 우간다 등에서 단기로 의료선교를 해왔기 때문에 그의 라이베리아 선교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켄트는 세계적 복음전도자인 빌리 그래함 목사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래함이 운영하는 해외선교기관인 ‘사마리아인의 지갑(Samaritan’s Purse)’ 소속으로 라이베리아에 가 현지인들을 치료하며 복음을 전했다.

당시 라이베리아에서는 치사율이 90%에 달하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사람들이 감염돼 죽어갔다. 에볼라는 치료약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전염병으로 열, 구토, 설사, 장출혈 등의 증상을 유발하다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악성 전염병이다. 세계건강기구(WHO)는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기니 등 서부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가 무려 1770건이나 되며 이 가운데 961명이 사망했다고 밝히고 있다(2014년 8월 9일 기준).

에볼라 감염으로 본국 송환된 켄트 브랜틀리가 에모리 대학 병원에 도착한 모습.

선의의 봉사, 가혹한 대가

지난 7월 23일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돌봐주던 켄트는 발열증세를 경험하면서 혹시 에볼라 바이러스에 자신도 감염된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격리한 후 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감염’이었다. 그는 그 순간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깊은 평안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라이베리아에서 의료선교 활동을 하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켄트 이외에도 있었다. 59세의 낸시 라이트볼이라는 여성 간호사다. 미국의 선교사역(SIM USA) 소속인 낸시 역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명된 환자들을 돌보다 같이 감염됐다.

이 소식을 들은 ‘사마리아인의 지갑’은 미국 질병통제 예방센터(CDC)에 치료제가 있는지 문의했고 CDC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해 공식적으로는 검증이 되지 않은 지맵(ZMapp)이라는 약을 구했다. 인체의 면역 시스템을 강화시켜 에볼라 바이러스와 싸우도록 하는 약인데 급하게 라이베리아에 도착한 이 약은 한 사람에게만 투여될 수 있는 양이었다. 켄트는 간호사 낸시에게 양보를 했다. 얼마 후 추가로 약이 도착해 투여를 받은 후 두 사람의 상태는 호전됐다.

지난 5일 이 두 명의 미국 선교사는 특별기로 미국에 귀국해 애틀란타 에모리 대학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이 돌아오자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선교를 하러 가서 나라를 어려움에 빠트렸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논객인 앤 쿨터 역시 여기에 가담했다.

그녀는 6일 우파성향 웹사이트 ‘휴먼 이벤츠’에 ‘바보 수준으로 격하된 에볼라 감염 의사의 상태’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의사 켄트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대체 왜 아프리카에 간 것인가? 치사율 90% 에볼라의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아프리카 여행을 간 이유는 무엇인가? 더 이상 미국에서는 그리스도를 섬길 수가 없기 때문인가?”라고 물었다. 또한 앤 쿨터는 “미국에서는 매년 1만5000명이 살해되고 3만8000명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는다.

신생아의 40%는 혼외자로 태어나고 ‘한밤 길거리 농구(1990년대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의 범죄를 막기 위해 고안된 길거리 농구시합)’의 성공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살인과 강간을 한다. 권력에 미친 대통령은 국민의 10%를 무보험자로 만들었고 모든 엘리트 문화단체들은 순결을 비웃으며 성생활을 찬양한다. 여기서 기독교인이 할 일이 없단 말인가?”라고 했다.

미국 최대 개신교단인 남침례교의 신학교 총장인 알버트 모흘러는 앤 쿨터의 비판에 대해 “선교사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해서 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신실하게 따르는 진정한 복음 선교사들”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은 “모든 민족에게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에 따라 해외선교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매년 성인 160만 명이 단기로 해외선교를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흘러 총장은 “지상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명의 선교사 역시 자신들이 라이베리아로 간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라고 말했다. 켄트는 병원에서 쓴 편지에서 “내가 배운 한 가지는 하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종종 우리를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라며 “지금은 완전히 다른 환경에 있지만 내 관심은 동일하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으로 논란의 중심이 된 선교사들

미국 내 찬반양론 ‘격렬’

낸시 라이트볼의 남편인 데이비드 라이트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부르심 때문이다. 예수가 인간을 위해 한 위대한 사랑을 보라. 그는 하늘을 버리고 고통과 아픔의 장소로 왔다”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라고 하는 곳이 어디든지 가서 섬길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언론이 선교사들에게 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의 대표적 논객인 니콜라스 크리스포트는 지난 6일 “두 명의 선교사가 지구적인 전염병을 초기에 막아보려고 한 것은 인도주의적 및 국가적 이해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감사와 찬사를 받아야 한다고 칼럼에서 밝혔다.

켄트는 병원에서 쓴 편지에서 자신과 낸시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하며 “우리가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신실하게 따라가도록 기도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워싱턴=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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