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이순신 그리고 원균
김무성, 이순신 그리고 원균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9.0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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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석 편집위원

‘무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별명이다. ‘무성대장’을 줄인 표현이다. 별명이 암시하는 것처럼 김 대표는 통이 크다. 거침없는 그의 성격과 리더십 스타일은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런 김무성 의원은 이른바 ‘원조 친박(親朴)’으로부터 의심의 눈길과 견제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김 의원은 과거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라서기도 했다. 이후 당내 견제세력이 그에게 붙이는 평가는 ‘한 번 배신한 자는 또 다시 배신한다’였다.

의혹의 눈초리는 지난 철도파업에서 보다 날카로워 졌다. 그가 청와대의 강경노선을 제치고 코레일 파업노조와 협상타결을 봤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김무성 의원이 본격적으로 대통령의 뜻을 거역했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그는 “대통령과 내 뜻은 같다”며 단호하게 대응했다. 이후 그에 대한 당내 평가 및 호불호는 더 갈렸다.

철도파업 사건을 계기로 새누리당 내 김무성 의원의 영향력은 본격화됐다. ‘박심(朴心)’이라던 서청원 계(系)에 대한 길항적 리더십을 갖추며 당 대표로 당당히 선출되더니 세월호 여파로 새누리당의 무덤이 될 수도 있었던 6월 지방선거에서 선방, 7·30 재보선을 지휘해 승리로 이끌었다. 이로써 현재 그는 최소한 겉으로 보면 박근혜 정권의 2인자 자리를 차지하게 됐고 새누리당 내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했다. 지금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다면 내후년 20대 총선의 막강한 공천권은 그의 것이 된다.

김무성 대표에게는 오랜 세월 풍찬노숙을 겪은 정객(政客)의 면모가 있다. 부유한 집안과 재벌가의 친인척이라는 배경과는 달리 그에게는 과거 민주화운동 정치인의 개혁적 코드가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항상 ‘보수혁신’을 외친다. 하지만 그러한 점이 다시 김무성 대표에 대한 일각의 우려로 등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김무성 대표의 지난 정치적 행보는 이념성향에서 분명하지 않았다. 문창극 총리 후보의 발언이 문제가 됐을 때 그는 문창극 후보를 지지하는 편에 서지 않았다.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심중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대다수 보수진영의 의지와는 분명히 다른 행보였다. 그는 최근 관훈토론회에 참여해 본인과 당의 이념적 방향성에 대해 “극우의 비판이 있겠지만 당의 정체성을 중도로 옮기겠다”고 발언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최근 영화 ‘명량’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순신 리더십’이 국민들의 화제가 됐다. 왜적으로부터 누란지세였던 조선을 구해냈던 성웅 이순신의 기적과 같은 활약도 함께 조명을 받고 있다. 하지만 원균 또한 명량해전의 주요 인물이었음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역사적 기억의 편린을 거쳐 오늘날 우리는 이 둘을 ‘간신 대성웅’의 구도로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원균과 이순신은 세월호 정국에 갇혀 있는 21세기 대한민국 위정자들의 내면에서 여전히 첨예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지 모른다. 새누리당 장수들의 마음속에서라면 더 그렇다. 세월호를 앞세운 친노(親盧)의 거대한 침공 앞에서 그들은 원균과 이순신 사이를 끊임없이오가는것이다.

우리는 김무성 대표를 두고 이렇게 묻게 된다. ‘무대’는 과연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결론은 김무성 대표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한정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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