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이 확실하다” -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인터뷰
“유병언이 확실하다” -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인터뷰
  • 미래한국
  • 승인 2014.09.0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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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세월호 참사 발생. 그 이후로 대한민국은 두 번의 선거를 경험했다. 6월 4일 치러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하나, 7월 30일 치러진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가 하나다. 두 선거는 전부 ‘세월호 정국’ 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이해됐지만 이를 ‘정권 심판’으로까지 연결시킨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에게 민심은 싸늘하게 반응했을 뿐이다.

많은 국민들은 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채로 항해했던 세월호의 선사(船社) 청해진해운과 세모그룹의 창업주 유병언의 행적에 시선이 집중되지 않는지 궁금해 했다. 피해를 입은 유가족들 역시 청와대를 상대로 시위를 벌이고 특별법을 요청했을지언정 유병언 일가에 대해서는 집단행동에 돌입하지 않았다.

그러던 세월호 정국이 급변한 것은 지난 7월 22일. 검찰은 6월12일 한 구의 시신을 입수했으며 DNA 조사 및 시신의 지문 1점을 채취해 검색한 결과 ‘유병언이 확실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3일 뒤인 25일 경기도 용인의 한 오피스텔에서 유병언의 장남 유대균이 검거되면서 비로소 유병언 일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지만 그와 함께 불거진 것은 다시 한 번 ‘음모론’이었다.

검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백골이 돼 버린 그 시체가 유병언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사실은 그 시체가 유병언이어야 하는 다른 거대한 음모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기이하게 뒤틀린 순간, 다시 한 번 과학적 진실과 논리적 추론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유병언은 살아 있다’는 주장이 횡행하고 있다. 이 일이 제2의 광우병 사태,제2의 천안함 음모론으로 번지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미래한국>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판단했다. 국과수 서중석 원장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었던 이유다.

- 원론적인 얘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유병언 사체 맞습니까?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유전자 검사가 일치했고요. 치아 검사, 신장, 또 생전에 갖고 있었던 손가락 단절과 같은 신체적 결함까지 일치하고 있어요.

- 사망원인은 ‘불명’ 이라는 게 국과수 입장인데요. ‘사체가 유병언인 건 확실하지만 왜 죽었는지는 모른다’는 말에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 7월 25일 브리핑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만 부패가 너무 심하다는 게 원인불명의 이유입니다. 독극물에 의한 사망 여부, 질식사 가능성, 지병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 멍 등 외력(外力)에 의한 사망 가능성 등을 모두 열어놓고 분석했지만 사체 내부의 장기들이 소실되고 부패가 심해서 사인을 특정 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 ‘유병언 시체가 바꿔치기 됐다’는 인터넷 괴담이 떠돌고 있습니다. 알고 계신가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저희의 정확한 조사 절차를 모르시는 분들은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국과수의 감정 시스템에 대한 얘길 해야겠네요. 국과수는 처음 감정물이 접수돼 수사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관리연속성(chain of custody) 이라는 개념에 입각해 매우 과학적인 품질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의 원 자료(raw data)가 저장되기 때문에 바꿔치기 될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봉쇄됩니다. 몇 년 전 방영된 ‘싸인’ 이라는 법의학 드라마가 방영된 일이 있는데요. 거기에서 처럼 국과수가 사건을 조작하거나 국과수 원장 또는 연구원이 증거물을 감정하는 데 개인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없습
니다. 투명하고 정직한 기관이에요. 저희 입장은 ‘국민들이 믿지 않는다면 할 수 없다’는 선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반드시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사체 감정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는 서중석 원장 

“이 이상 어떻게 더 해명을 하나”

- 좀 더 적극적인 해명을 하거나 의견을 피력하실 의향은 없으신가요?

저희로선 굉장히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7월 25일 오전 10시에 유병언 시신에 대한 정밀감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국과수가 직접 발표를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어요. 워낙 세간에 이상한 괴담이 돌아서 수사기관에서 요청을 한 거였죠.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이 필요한 사안인데 감정기관이 하는 것보다 국과수가 직접 발표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발표하고 했는데 저희로서는 이 이상 뭘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지 모
르겠어요.

- 결국엔 ‘소통이 부족하다’는 얘기인데요. 이것도 국과수 입장에선 너무 답답한 말일까요?

소통을 위한 노력은 저희도 많이 합니다. 어떻게 설명을 드릴까요. 저희(국과수)가 강원도 원주로 본원을 이전했는데 지역사회 일반인이나 초중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수사 체험학교를 운영하고 있어요. 언론이나 방송 관련된 부분에도 적극적인 편이에요.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도 특별히 수사에 지장을 주거나 왜곡시킬 가능성이 없으면 응대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과학수사 기법을 전부 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선에서는 국민들에게 잘 알려드려야 범죄예방 차원에서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요란하게 나설 순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국민들 생활 속에 녹아들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고 있어요.

- 그런데도 정작 이런 중요한 건에 있어서는 소통 부족이라는 말을 들으니 답답하시겠습니다.

국과수의 역할과 본분을 넘어가선 안 되니까요. ‘법의학’ ‘법과학’은 무언가를 주도하는 학문은 아닙니다. 국민을 도와주고 사법적 판단을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과수가 지나치게 앞에 나서서 리드하고 선전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이번에 발표하시는 것 들어보니까 국과수가 굉장히 여러 가지 분야를 커버하고 있는 것 같던데요.
많은 국민들이 ‘국과수’라고 하면 부검만 하는 기관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많은 분야에 대해 연구하는 기관입니다. 유전자 감식, 교통사고나 화재 사건에 대한 화학적 감정을 포함해서 수사 전반의 과학적 검증을 총괄한 뒤 수사기관에 넘겨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나서서 스스로 선전하고 그러는 건 본말이 전도된 행위라고 보는 거죠. 불가피한 경우도 있긴 하겠지만요.

   
유병언 사체가 발견된 전남 순천의 매실밭

“국과수는 오로지 과학으로 말하는 집단”

- 국과수에 할당되는 예산은 어느 정도 되나요?

지금 이 자리에서 예산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고요. 국가 전체가 상당히 어렵지 않습니까? 여러 국가기관들이 예산 절감을 하려고 노력중이고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사회적으로 사건 사고도 늘고 범죄도 느는데 앞으로는 국과수의 중요성이 더 부각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수사 분야에 대한 투자가 조금 더 필요하다는 말씀도 첨언하고 싶네요.

- 예산만이 아니라 인재들도 법의학을 기피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 적이 있는데요. 실제로 그렇습니까?

그런 경향이 전혀 없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내과의사가 된다면 대학 교수가 되거나 개업을 하거나 병원에 취업을 하는 등 진출할 곳이 많잖아요? 그런데 법의학을 전공하면 진출할 분야가 대학 교수 몇 자리 아니면 국과수의 법의관 정도 밖에 없거든요. 국과수 법의관도 23개 정도 자리 밖에 없고요. 법의학이 돈을 많이 벌거나 하는 학문이 아니라서 사람이 많이 몰리지는 않고, 또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법의학 분야에 대한 투자도 그다지 원활하지는 않은 편입니다. 그나마 ‘CSI 시리즈’ 같은 미국 과학수사 드라마를 통해 법의학이 대중적으로 소개가 돼서 청년들 관심이 제고된 측면은 있죠. 다행히 국과수에 들어오려고 지원하는 인재들도 많이 있습니다.

- 한국의 경우 과학수사의 진실성을 음모론과 추측이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문제에는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까요?

최근 우리나라에 세월호 사건, 광주 헬기추락사건, 유병언 시체 발견 등 사회적으로 큰 사건들이 많았죠. 사회가 복잡해지면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사건과 범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개인적 생각으로는 범죄를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외국 수준의 법의학 인프라를 하나의 사회적 자본으로 간주해서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행정가들이나 공무원들에게 법의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 다시 유병언 문제로 돌아가겠습니다. 국과수 원장으로서 국민들에게 꼭 전달하고 싶은 말씀을 해 주시죠.

이미 언론을 통해서도 이야기한 바 있듯이 과학수사의 시스템과 인프라, 제도적 뒷받침, 국가적인 관심, 그리고 국민들께서 과학적으로 감정되는 것에 대해 신뢰를 보내주셔야 더 힘을 내서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국과수 원장인 저부터 시작해 모든 감정인들이 앞으로 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할 겁니다.

국민들이 믿지 않으면 밤새워 감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힘들고 어려움을 느낍니다. 국과수는 오로지 과학을 통해서 진실만을 말하는 집단이에요. 국민들이 국과수에서 과학적으로 규명돼 나가는 결과들에 대해서는 믿어주시는 것이 바로 저희를 지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인터뷰/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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