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이 자사고를 폐지할 수 있는가?
교육감이 자사고를 폐지할 수 있는가?
  • 미래한국
  • 승인 2014.09.18 10:21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폐지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사실은 오래된 논쟁이다. 자사고를 폐지하는 것과 이대로 놔두는 것, 어느 것이 옳을까? 이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말대로 정말로 자사고가 일반고의 위기를 불러 왔는지, 아니면 일반고 자체가 더 큰 위기인지 세세히 따져봐야 한다.

공교육은 공적 재원으로 운영하는 교육이며 사교육은 사적 재원으로 운영하는 교육이다. 우리는 먼저 ‘고등학교는 모두 공교육인가’라고 물을 수 있다. 물론 아니다. 공적 재원이 투입됐는지의 여부를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반고는 30%는 사적 재원인 학생수업료로 나머지 70%는 공적 재원인 세금으로 운영한다. 따라서 이들 학교는 민간부담률이 비교적 높은 공교육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고를 제외한 대부분의 특목고나 자사고는 공적 재원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 거의 모든 교육비를 사적 재원인 학부모의 수업료로 충당하고 있다. 따라서 자사고나 특목고의 경우는 고등학교이지만 사교육으로 구분해야 옳다. 일반 사립학교들은 설립 형태만 사립일 뿐 재정상의 운영원리는 공립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사립학교는 공교육이라고 구분해야 한다.

이렇게 명확한 구분을 하고 나면 공교육 정상화 대책 역시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교육정책들은 말로는 ‘공교육을 정상화’ 시킨다면서 실제로는 ‘사교육 길들이기’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공교육인 학교교육을 정상화 시킨다면 사교육인 학원 교육이 필요 없을 것인데 열심히 노력하는 사교육, 즉 학원을 없애려는 노력에 치중하다 보니 학원이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곤 했다. 여기에 필자는 사교육의 범주에 학원 이외에도 자사고 특목고 등 일부 사립학교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사고 특목고도 ‘사교육’이다

자사고의 경우 학생 1인당 수업료는 연간 600만원에 이른다. 사립이든 공립이든 일반고의 경우 학생 1인당 수업료는 200만원도 안 되지만 나머지는 재정결함보조금으로 국가가 전액 지원하는 체제다.

학생이 1000명이 있는 일반고와 자사고를 비교할 때 자사고는 학생 수가 단 10명만 줄어들어도 연간 6000만원의 예산이 부족하게 된다. 그러나 일반고의 경우 학생 수가 무려 100명이 줄어도 학교 예산에 큰 변화가 없다. 부족한 부분을 국가가 다 대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일반고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무책임하게 된 것이다. 반면 자사고는 학생 모집에 최선을 다한다. 뿐만 아니라 일단 들어 온 학생은 단 한 명도 낙오가 없도록 가르쳐야만 한다. 학생수업료가 학교 재정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반면 재정결함보조금이 있는 일반고의 경우 소위 ‘문제 학생’들에게는 자퇴를 권하기도 한다. 무더기로 전학을 가도 학교 재정에 전혀 문제가 없고 극단적으로 교사들 월급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이러한 운영체제 속에서 학생들의 학력 신장이나 인성 교육에 대해 책임을 다해 가르칠 분위기가 아예 조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일반고의 문제이며 당면한 위기이다.

만약 이 문제가 아니라면 조희연 교육감의 말대로 일반고가 소위 ‘슬럼화’됐다는 주장은 교육 효과를 포기한 것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특목고나 자사고로 빠지고 일반고에는 중하위권 학생들만 모였으니 이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아예 포기했고 그러니 교육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일반고는 교육을 포기한 것이다. 즉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없으니 가르쳐봐야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가 될 뿐이다. 다시 말해 서울대를 보내는 것은 교육을 시켜서가 아니고 원래부터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비교육적 논리로 귀결된다. 그러니 일반고가 무슨 교육을 하고 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즉 학생들만 포기한 것이 아니라 교사들도 교육을 포기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자사고를 강제로 폐지한 후 몇몇 우수한 학생들이 그런 ‘교육포기 학교’에 나누어 들어가고 그들이 서울대에 입학한다고 한들 그것이 일반고가 교육을 잘해서 일류대를 갔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일반고 전환은 ‘공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공적 재원이 투자되는 일반고의 경우 학교당 연간 40억원 정도의 국가 세금이 투자된다. 전국적으로 자사고가 50여개가 있으니 약 2000억원 정도의 예산을 절약했거나 아니면 이 예산을 무상급식 등에 사용했을 것이다. 만약 전국의 자사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려면 다시 2000억원의 국가 예산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세금을 더 걷든지 무상급식을 줄여야만 한다.

현재 진행 중인 자사고 폐지 논쟁에는 이와 같은 논의가 전혀 없다. 재정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대부분의 급진좌파 논객들은 신자유주의 운운하며 교육을 돈으로만 이야기하는 게 문제라는 식으로 둘러댄다. 그런데 정책은 어차피 돈이다. 재정 없는 정책은 말뿐임을 모를 리 없건만 핵심을 지적하면 ‘돈타령’ 운운하는 무책임한 전문가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자사고 폐지 문제가 속빈 깡통처럼 요란해지는 것이다.

다시 쟁점으로 돌아오자. 만약 조희연 교육감의 뜻대로 자사고가 폐지된다면 일반고의 슬럼화 문제가 해결될까?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앞으로의 상황을 예상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강제로 평준화된 일반고 내에서는 학생들의 학업수준 격차로 인해 다시 수준별 학습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일반고 교실보다 훨씬 심각한 학업포기 현상이 많아진다. 한 교실 내에 서울대에 들어갈 실력의 학생과 지방의 3류 대학에도 들어가지 못할 실력의 학생들이 모여 있으니 어디에 기준을 두고 수업해야 하는지 심각한 문제가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준별 학급을 구성해서 수준별 수업을 하면 된다고 할지 모르나 지금의 급진좌파들은 이 또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이를 용납해 일반고 내에서 1반은 서울대 연고대반, 2반부터 3반까지는 2류 대학 진학반, 4~5반은 3류 대학 진학반 이런 식으로 나눈다면 이는 차라리 현행처럼 자사고 특목고 식으로 구분해 ‘개별학교 내에서라도 차별이 없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쉽게 말해 이 논쟁은 자사고가 문제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의 실력이 평등이 돼야 한다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그릇된 주장 그 자체에 본질적 문제가 있다.

특목고가 생긴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면 특수한 목적, 즉 외국어 실력 함양이나 과학 전문지식 함양이 아닌 ‘실력 있는 아이들끼리 경쟁해 보자’는 그 이면의 목적이 더 강했다. 만약 국내에서 실력 있는 학생들끼리 경쟁할 무대가 마련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과잉된 교육열은 필연코 해외 조기유학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며 해외 조기유학 통계 또한 같은 사실을 증명한다.

자사고는 해외 유학 수요를 흡수한다

2007년까지 매년 3만명이 넘는 중고생이 해외 조기유학을 떠났는데 자사고가 생긴 이후 지금까지 해외 조기유학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 학생 수가 연간 1만5000명이고 자사고에는 어림잡아 연간 1만2000명의 입학자가 있으니 얼추 맞아 떨어진다.

3년간 4만~5만명의 해외 조기유학 수요가 줄어들었다면 이는 연간 1조~2조원의 막대한 자금이 국외로 나가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내수경기에 녹아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자사고 정책 하나가 우리나라에 최소 1조5000억원에서 많게는 3조원 정도의 내수효과를 진작시킨 것이니 이러한 정책이야말로 최고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자사고를 폐지하자고 할 것인가?

통념과는 달리 자사고는 사교육이다. 그리고 사교육 문제의 경우 공교육의 수장인 교육감이나 장관에게는 그 폐지 권한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자사고 폐지 논쟁을 풀어가는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조형곤 21C미래교육연합 대표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숙현 2014-09-25 18:11:51
제가 알기로는 교육감의 자녀도 특목고를 다니고 있다죠.
자사고나 특목고나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고, 결국 좋은 학교를 보내고 싶은 학부모의 욕구는 진보교육감인 조희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자나요.
내 자녀는 좋은 학교 보내야 하고 남의 자녀는 일반 학교, 그것도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포 포기하다시피 한 그러한 학교를 보내야 한다는 것은 정말 큰 무책임의 경지 같아서 한마디 합니다. 정신차리세요.

고창현 2014-09-25 17:52:01
박근혜 정부의 공약 중에 고교 무상교육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자사고를 제외한 일반고는 사실상 무상이나 마찬가지였네요.
자사고가 있어서 마이스터고등학교에 많은 예산을 지원할 수도 있었구요.
그렇다면 만일 자사고를 없애면 마이스터고도 없애야 하나요?

고창현 2014-09-25 17:48:14
자녀 교육 만큼은 최고 수준으로 시키고 싶은 학부모의 욕구를 아십니까?

일반고보다 훨씬 비싼 수업료를 받는 자사고를 보내는 단 한가지 이유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데 보탬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사고에 가면 내신이 불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사고를 보내지 않고 일반고를 보내면 공부할 분위기가 나지 않는 큰 이유가 있어요. 이 기사가 자사고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김성희 2014-09-25 15:04:48
자사고가 그런 학교인줄 몰랐습니다.
귀족학교로 비난 받아야 마땅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상 받아야 할 학교더군요. 자사고 교장 입장에서 학생 모집이 안되면 큰 걱정거리가 되겠네요.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