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쿠, 이런 곳인 줄 몰랐네”
“아이쿠, 이런 곳인 줄 몰랐네”
  • 정용승
  • 승인 2014.09.19 11:0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독] 생활협동조합 아이쿱, ‘이념공동체’ 꿈꾸나

‘문간에 발 들여놓기 전략(Foot in the door)’은 경영학도라면 한 번쯤 배우게 되는 마케팅 전략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한다면 ‘작은 것부터 요구하라’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뭔가를 부탁할 때 작은 것부터 시작해 조금씩 큰 것으로 옮겨가는 식이다. 대형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1행사, 시식 행사 등이 이에 해당된다.

1+1행사로 자사의 제품을 사용해보게 한 뒤 자사의 고객으로 포섭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이면서 다가가기 쉬워 기업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마트뿐만 아니라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마케팅이기도 하다. ‘도를 아세요’도 이와 비슷한 전략을 쓴다. “10분만 빌릴게요” “설문에 좀 응해주세요” 같은 말로 발길을 잡은 후 나중에 진짜 요구사항을 말하는 식이다. 좋게 말해 마케팅이지 당하는 입장에선 ‘사기’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이런 문간에 발 들여놓기 전략이 엉뚱한 데에서도 쓰이고 있다. 바로 iCOOP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아이쿱)이다. 아이쿱도 장사를 하는 곳인데 여기에서 이 전략을 쓰는 게 뭐가 그리 큰 문제냐고 할 법도 하다. 기본적으로 협동조합 시스템을 이용해 싸고 좋은 제품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그런 전략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쿱이 갖는 ‘정체성’에 있다.

아이쿱이 홈페이지에 게재한 스스로의 '정체성'

소비자를 위하여? 노동자를 위하여!

아이쿱은 1997년 9월 경인지역생협연대(현 한국생협연대)가 모태인 협동조합이다. 2008년에는 연합회 총회에서 조직이름을 ‘iCOOP생협’으로 변경하고 ‘iCOOP생협은 윤리적 소비다’라는 10주년 기념 정체성을 선언한 바 있다.

아이쿱이 말하는 ‘윤리적 소비’는 뭘까.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문구를 옮겨보면 이렇다.

“소비는 경제에 있어서의 투표라고 합니다. 우리 지갑 속 현금이나 카드가 투표용지입니다. 그 표를 누구에게 던지겠습니까? 어린이들의 노동을 착취하여 만든 초콜릿을 샀다면 그 기업에게 더 많은 부와 힘을 보태주는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자연과 소비자에게 정직한 생산자, 노동자와 함께하는 기업, 동물복지를 고려하며 지구환경을 위해 윤리적인 생산을 지지하고 촉진하는 일, 바로 우리의 소비로써 가능한 일입니다. 윤리적 소비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작지만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아름다운 소비입니다.”

‘노동자와 함께 하는 기업’ ‘어린이들의 노동을 착취하여 만든 초콜릿’ 같은 문구들이 아이쿱의 정체성을 넌지시 노출시키고 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직접 명시하고 있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생협 정체성’ 부분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자유화를 통해 자본주의의 속성인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을 끝없이 강요한다. 그것은 개별 국가를 넘어서 전 지구적인 규모로 물질과 생명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순환의 고리를 끊어지게 한다.

또한 노동자와 서민이 낸 연금, 재테크 자금까지도 결국 투기 자본으로 흘러들어가 지역사회의 중소기업을 파산시키고 노동자와 서민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있다. 나아가 초국적 기업과 투기 자본가들은 영구적 식량 지배 체제를 만들기 위해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를 수출하고 학교 급식에 사용할 것을 요구하며 유전자를 조작한 동식물을 식용으로 사용할 것을 가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논리의 글은 아이쿱의 다른 문서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신자유주의를 악(惡)으로 규정하고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이 ‘세월호 특별법’과 만날 때

아이쿱이 나름대로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신자유주의를 악으로 규정한 부분에서는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다. 이들은 신자유주의가 비정규직과 지역사회를 파괴시킨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 기업들이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를 학교 급식에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광우병을 언급한 부분에서는 이들이 정말 ‘건전한’ 단체인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광우병은 그동안 좌익단체들이 반정부 시위를 할 때마다 가지고 나왔던 주요 테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쿱에는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다만 문제는 이런 정체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아이쿱에 가입하는 시민들이다. 아이쿱이 그저 먹거리를 필요로 했던 시민들에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은근히 소개하고 그 정체성을 갖도록 끌어들이는 상황을 우려한다면 지나친 일일까.

용인에 사는 한 주부는 지난 5월 아이쿱 생협 설명회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참석자들은 대부분 일반인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 의심 없이 설명회를 듣고 있었는데 설명 내용이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먹거리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절반은 정치 담론이었다. 당시 이슈는 ‘세월호특별법’ ‘6·4지방선거’ ‘의료민영화’ 등이었다.

당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후보에게 투표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은근슬쩍 흘리며 투표를 독려하면서 세월호특별법이 통과돼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 설명회에 참석했던 주부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먹거리 얘기가 아닌 전혀 다른 말들이 오가서 당황했고, 편향된 담론에 대해서 불편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끝날 즈음에는 소식지와 추천도서 목록을 나눠줬다. 소식지에는 아이쿱 행사와 소식에 대한 기사도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9월 소식지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20만 조합원의 지혜 모으기 운동을 제안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자사의 캠페인을 소개하고 있다.

이 운동의 과정은 네 단계로 구분돼 있다. ①지혜 모으기 ②제안하기 ③공유하기 ④행동하기 등이다. 이 중에서 ‘지혜 모으기’는 ‘조합원 20만 명의 지혜카드 작성으로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대안을 함께 알아본다’는 내용이다. ‘제안하기’는 ‘작지만 제안된 작은 지혜들을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공동의 행동으로 모은다’이며 ‘공유하기’는 ‘제안된 의견을 모아 전국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아이쿱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집담회(集談會)를 진행한다’는 내용. 마지막으로 ‘행동하기’는 ‘지혜에 참여하는 조합원의 수만큼 기금을 모아 조합원의 지혜를 실천하는 사업에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 교수의 강의 소감문까지

6월호 소식지에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강의를 들은 한 학생이 쓴 소감문이 게재돼 있다.

“한홍구 교수님의 강의에서 처절한 투쟁을 통해 이루어진 민주주의가 몇몇 사람에 의해 후퇴하는 것을 듣고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역사는 늘 진보한다고만 여겼는데, 우리의 아버지들이 목숨을 걸고 얻어낸 민주주의가 잘못된 세력에 의해 후퇴하고 있고, 그 아버지들을 고문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니 비록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나지만 이것은 충분히 부당하게 들렸다.”

한홍구 교수는 대표적인 좌익 인사다. 한 교수는 김일성에 대해 “자수성가형 민족영웅”이라고 찬사한 바 있고 2005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남쪽 사회 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깎아내리는 일 만큼은 용인해서는 안 된다. 남과 북은 서로 더 많이 고무하고 찬양하자.”

설명회에서 나눠준 추천 도서 목록도 상당히 편향적이다. 몇 권의 책을 꼽아보자면 노암 촘스키의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 공저의 ‘평등이 답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고이데 히로아키의 ‘원자력의 거짓말’, 김익중의 ‘한국탈핵’ 등이다. 대다수 먹거리와는 큰 관계가 없는 책일 뿐더러 한쪽으로 경도된 도서들이다.

아이쿱이 단순히 먹거리에 집중하는 협동조합인지 이념단체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는 단체인지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에게 맡긴다. ‘먹거리에 이념을 얹어 마케팅하는 아이쿱’이라는 구호가 경영학도 입장에서는 배울 만한 점이 있겠지만 평범한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어쩌면 지금 시장에는 ‘농약급식’ 이후 가장 위험한 먹거리가 등장해 있는지도 모른다.


정용승 기자 jeongys@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장연철 2020-06-05 15:40:28
진짜 쓰레기들이었군요. 공산화를 위한 모든 것을 획책하고 저지르고 있던 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