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한전부지 10조원 매입이 암시하는 것
현대차, 한전부지 10조원 매입이 암시하는 것
  • 미래한국
  • 승인 2014.09.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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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현대차 컨소시엄이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공사(한전) 본사 부지를 낙찰 받은 것을 놓고 말이 많다. 서울 강남의 ‘알짜배기 땅’을 샀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가격이 말썽이었다. 현대차 그룹이 제시한 가격은 무려 10조5500억원. 감정평가액의 2배가 넘었다.

이후 현대차 그룹의 주력업체인 현대차와 기아차 주가는 급락세를 보였다. 특히 외국계 투자자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현대차 그룹의 한전 부지 매입을 두고 “현대기아차의 위기가 곧 가시화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연 매출 200조원, 사내 유보금 20조원 이상이라는 현대기아차 그룹이 ‘땅값’좀 낸다고 몰락한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는 점을 위험하다고 보는 것이다.

 

가격은 두 배로, 품질은 절반으로

국내 자동차 소비자들이 보는 현대기아차 그룹은‘외형만 소소하게 바꾸면서 매년 7%씩 가격을 올리는’얌체기업이다. 실제 쏘나타, 아반떼, 그랜저와 같은 스테디셀러 차종의 경우 2001년 초반과 지금 출시되는 차량의 가격은 단순 비교로도 100%, 그러니까 2배의 가격 상승폭을 보여준다.

현대차 그룹 측에서는 이에 대해 “매년 발전한 기술을 적용하고 안전 측면을 강화해서 그렇다”고 해명하지만 소비자들은 믿지않는다. ‘터지지 않는 에어백’ 논란, ‘주행 중 박살나는’ 파노라마 선루프, 급발진 논란 등이 언론과 인터넷의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다. 거기에 현대차의 ‘강성노조’가 매년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 공개되면 현대차 그룹의 해명은 ‘또 하나의 거짓말’취급을 받는다.

소위 ‘옵션 장난’으로 불리는 판매정책도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수입차들의 경우 자신이 필요한 것만 선택해 차량을 주문할 수 있다. 반면 현대차 그룹은 특정 그레이드를 주문해야만 자신이 필요한 옵션을 넣을 수 있다. 필요 없는 옵션까지 포함되는 탓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가격이 올라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부 모델은 어찌 보면 가장 기본적인 선택인 수동 변속기 선택조차 불가능하다. 여기에 해외 생활 경험을 가진 국민들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제기된 비판도 있다. 시쳇말로 현대차 그룹이 “자국민들의 피를 빨아서 해외에 퍼다 준다”는 지적이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로 국내 유통 차량가격을 해외보다 최소 10%, 최대 1.5배 이상 비싸게 책정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국내 판매가격은 유럽이나 동남아에 비해서는 비슷하거나 조금 차이가 있는 수준이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너무 심하다. 국내에서는 1억원을 훌쩍 넘는 차량들이 미국에서는 6만~7만달러 선(한화 6200만~7300만원)에 팔리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1+1 행사’를 펼치는 미국 딜러들도 있었다. 최근에는 그 숫자가 줄었다고 하지만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제네시스 사면 베르나를 끼워준다”는 광고들이 지역지에 나붙었다. 제네시스의 가격도 한국보다 1만~2만달러 싼 편이었다.

국내 소비자들을 더 분노케 한 것은 한때 이렇게 싸게 파는 ‘수출 모델’의 안전장치나 편의장비, 사양 등이 ‘내수용’보다 훨씬 좋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실이 몇몇 매체와 블로거, 자동차 전문기자를 통해 공개되기 시작하자 현대차 그룹도 대응에 나섰다. 2012년 말부터 일부 모델에 대해 가격을 인하하고 공세적인 언론 플레이를 시작한 것이다. 이와 함께 매년 가격이 인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경제단체 등을 통해 ‘강성 노조가 원인’이라는 식으로 홍보를 했다. 하지만 10년 넘게 쌓인 소비자들의 불만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고, 이는 2013년 부터 서서히 결과가 나타났다. 2014년에는 현대차 위기론까지 불거졌다.

2014년 8월 기준으로 수입차의 월별 시장점유율은 15%를 돌파했다. 연간으로 따질 경우 올해에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시장점유율이 처음으로 70% 이하로 추락할 가능성도 높다는 게 여러 자동차 전문매체들의 지적이다.

현대차 그룹이 여전히 확고하게 시장을 잡고 있는 부문은 소형, 준중형(C세그먼트), 중형, 승합차, SUV, 상용차 시장 등이다. 이렇게만 보면 현대차 그룹의 미래가 어둡지 않아 보이지만 자동차 업계에서 ‘고부가 가치 부문’으로 꼽히는 대형차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34% 수준으로 형편 없다.

수입차의 한국 시장점유율이 15%를 넘어서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에쿠스, 제네시스, K9 등과 같은 대형차 시장을 독일차와 일본차가 거의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대차의 수익률 전망까지 나빠졌다. 해외 생활 경험이 많고 학력이 높으며 금전적 여유가 있는 소비자의 경우 현대차 그룹 차량을 사지 않는다는 뜻이다.

無개성, 無가치, 無비전

한국 소비자들이 점점 더 현대차 그룹의 제품을 외면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몰개성, 무가치, 비전이 보이지 않는 제품 특성 때문이다.

최근 한국의 자동차 구매자들은‘기왕이면 수입차’라는 식으로 차량을 구매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해당 브랜드가 가진 개성과 특징, 가치 등을 더 중시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특히 ‘내 집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사회 분위기에서 ‘차가 곧 나’라는 인식이 늘어나면서 ‘차=개성’이라는 생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 그룹의 제품은 개인의 개성을 나타내기에는 여러 측면에서 부적합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현대차 그룹은 ‘미래는 디자인 승부’라는 생각을 뒤늦게 가지고 2006년 아우디와 폭스바겐 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던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했고 2011년에는 BMW 출신의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채프먼을 영입했다. 하지만 이후 K시리즈 등 일부 모델을 제외하고는 한동안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언론계에서는 ‘디자이너들이 고심 끝에 신차 디자인을 내놓으면 현대차 그룹 임원들과 엔지니어들이 이러쿵 저러쿵 불만이 많고, 이를 회사 측이 받아들여 결국 신차 디자인은 산으로 간다’는평가가 많이 나왔다. 기자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고객들의 반응도 시큰둥해 결과는 매출 감소로 나타났다. 현대차 그룹은 2013년 피터 슈라이어를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그에게 디자인 전권을 쥐어 줬지만 이 같은 약점을 파고 든 수입차 브랜드들은 지금도 약진하고 있다.

차량 내구성 때문에 현대차를 구매하는 게 가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겉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5~6년만 지나면 고장 나기 시작하는 내구성, 밟아도 달리지 못하는 성능, 사고 한 번 나면 캐빈(자동차의 탑승 공간)까지 찌그러드는 차체 강도, 10년만 지나면 여기저기 생기는 녹, 도색 벗겨짐 등은 ‘오래된 현대차 그룹 제품을 타는 것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확산되게 만들었다.

출시된 지 10년이 조금 더 지나면 수리부품을 만들어 내지 않고, 현대차가 만든 ‘정품 부속’이 아니면 제대로 수리를 해주지 않는 현대차 그룹의 AS 정책 또한 한국 소비자들이 현대차 그룹의 제품보다 수입차를 더 신뢰하게 만드는 이유다.

참고로 이미 파산한 지 몇 년이 지난 스웨덴의 사브나 인도, 독일 등에 인수된 영국의 자동차 브랜드들 그리고 포드, BMW, 메르세데스, 아우디, 폭스바겐 등은 30년 전의 제품 부속을 지금까지 공급하고 있으며‘정품 부속’을 사용하지 않았다 해도 수리를 해주고 있다.

국민 2명 가운데 1명이 차량을 소유한 한국에서, 내수 시장 덕분에 급격히 성장한 1위 자동차 업체가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국민들 사이에서는 ‘현대차 그룹은 한국 소비자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매우 많은 국민들이 이에 동의하고 있다.

현대차의 예견된 위기

이밖에도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기사나 평가에 대해 광고로‘입막음’을 하는 행태, 해외 자동차 매체나 블로거들에게는 저자세로 최고급의 신차를 평가해 달라며 무상제공하면서도 정작 국내 자동차 매체나 기자들에게는 차에 손도 못 대게 하는 이중적인 태도, 오프라인 매체와 온라인 매체를 철저히 차별하는 태도,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생겨도‘그런 일 없다’ 고 딱 잡아떼는 태도 등 현대차 그룹이 국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한전 부지 매입에 10조원(약 100억달러)을 쓰기로 한 것은 오히려 별 문제가 아니다. 현재 세계 유수의 자동차 업체들이 ‘배기량은 적게 만들면서 출력을 높이는’ 다운사이징(downsizing) 트렌드로 가고 있음에도 현대차 그룹은 차량 크기와 엔진을 더 키우는 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테슬라모터스를 필두로 한 전기차와 독일, 일본브랜드들이 이끌고 있는 하이브리드 전기차가 가까운 미래의 주류가 될 것임에도 현대차 그룹은 과학자들이 ‘연료 안전성’ 문제로 상용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수소연료전지차(FCEV)에‘올인’하고 있다.

아반떼, 쏘나타, K5 모델 가운데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놓기는 했지만 소비자들의 욕구는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2013년 한 자동차 블로거가 연비 나쁘기로‘악명’높은 페라리 모델과 쏘나타 하이브리드 모델 간의‘산길 연비 대결’을 벌인 결과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연비가 오히려 페라리보다도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나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자동차 매체와 전문가들은 현대차 그룹이 수십년 동안 관료 조직과의 유착을 통해 ‘시장 진입장벽 만들기’ ‘기업 우선제도 만들기’라는 관행에 빠짐으로써 스스로의 미래를 망쳐버렸다는 주장을 내놓기 도 한다.

전 세계에서 팔리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에 들어가는 2차 전지와 캐피시터(capacitor) 등이 한국산(産)임에도 한국에서는 제대로 구동되지 않는 것이‘정부의 현대차 보호하기’증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내연기관 차량과 전기차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현재의 자동차 규제 제도와 보험정책을 쉽게 만들 수 있음에도 현대차 그룹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미루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때를 틈탄 중국·인도 업체의 약진

이런 식의 지적이 수차례 나와도 현대차 그룹은 여전히 귀를 닫고 있다. 2013년 말 기준으로 전체 판매량의 약 80%가 해외시장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한국 시장을 ‘우습게’봐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의 위기는 언제나 소리 없이, 보이지 않게 다가오는 법이다.

인도의 타타 자동차와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이미 자국 내 시장에서 비약적인 발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인도와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자국 시장은 물론 비교적 환경규제가 약한 아프리카, 중동 시장까지도 손쉽게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과 일본, 미국 업체들의 미래 전략도 현대차 그룹과는 전혀 다르게 가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폭스바겐 그룹은 고급화 전략을 채택한 BMW, 아우디, 벤츠와 달리 젊은 층 공략 정책을 펴고 있다.

도요타는 과거 ‘카이젠(改善)’정책을 통해 비용절감에만 급급하던 전략을 버리고 철저한 현지화 정책과 함께 저비용 고효율, 고(高) 내구성 제품을 만드는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 특히 공격적인 현지화는 현대차 그룹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정책이다.

또한 최근 도요타는 중형 세단 캠리의 한국 판매가격을 신형 쏘나타의 고급모델 가격에 맞춰 출시하기 시작했다. 쏘나타의 가격 인상을 막으려는 것이다. 이런 수입차 브랜드들의 공격과 한국사회의 적대적 분위기만이 문제라면 현대차 그룹의 위기는 차라리 극복 가능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바로 한국의 지속적인 경제 침체다.

현재 세계 각국은 미국이 2012년까지 세 차례 실시한 양적완화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한국 화폐가치는 크게 높아진 상태다. 이를 정부가 나서 막을 여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즉 한동안은 한국 제품들이 세계 시장에서‘합리적 가격에 좋은 제품’으로 취급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비관적인 현실에서 현대차 그룹이 지금의 성과가 쭉 이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100억달러가 넘는 현금을 들여 설비투자나 미래기술 개발도 아닌 ‘부동산’을 사들인 것이 국제투자자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들은 미국의 GM이나 크라이슬러의 사례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전경웅 객원기자 enoch2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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