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The Devil)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악마(The Devil)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 미래한국
  • 승인 2014.10.0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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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창작뮤지컬 ‘더 데빌’ 연출한 이지나 감독
 이지나 감독

2014년 하반기 한국 뮤지컬계에 가장 화제가 되는 작품이 있다. 독일의 대 문호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된 뮤지컬 ‘더 데빌(The Devil)’이다. ‘더 데빌’은 ‘광화문 연가’ ‘헤드윅’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서편제’ 등 여러 작품을 히트시키며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시도를 해왔던 이지나 연출가의 창작 뮤지컬이다. 연출 꿈나무들, 특히 연출가가 되고 싶은 여학생들의 독보적인 ‘워너비’로 자리하고 있는 이지나 연출가를 만나봤다. 중견 연출가로서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유쾌한 옆집 언니 같았던 이지나 연출가와의 대화를 시작해보자.

- 연출가님 프로필을 보면 매니아층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유명한 ‘헤드윅’ ‘아가씨와 건달들’ ‘광화문 연가’ 등의 작품들이 많습니다. 모든 작품들이 애착이 가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나요?

우선 데뷔작이었던 ‘록키호러쇼’가 기억에 남고요, 제가 연출가로서 인정받게 된 작품인 ‘그리스’도 기억에 남아요. 세간의 화제가 됐던 작품인 ‘헤드윅’도 기억에 남네요. 앞서 언급한 작품들은 외국 라이센스 작품들이고, 창작했던 작품들은 직접 낳은 자식 같은 작품이니까 아무래도 애정이 더 있죠. ‘서편제’ ‘바람의 나라’ ‘잃어버린 얼굴’ ‘더 데빌’ 등등 다수의 창작 작품들에 대해선 애정을 넘어선 집착 같은 게 있어요.

- 한국 영화계를 보면 특정 감독과 배우들이 여러 작품을 지속적으로 같이 하면서 일명 ‘OOO 감독 사단’ 같은 게 존재하는데요. 혹시 연출가님과 특히 잘 맞는다 싶은 배우가 있으신가요?

저와 함께 작품을 했던 배우들은 거의 다 잘 맞았어요. 물론 잘 맞는 배우와만 작품을 할 수는 없지만, 작품을 함께 하다보면 서로 잘 맞게 되는 것 같아요. 제게 ‘이지나 사단’ 같은 건 없고요. 작품마다 가장 어울리는 배우가 저에게 잘 맞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더 데빌’은 직접 낳은 자식”

- 이번 질문은 연출가님 개인에 대한 질문인데요, 예전에는 배우를 하고 싶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연출로 분야를 바꾼 계기는 무엇인가요?

연기를 정말 잘해서 ‘연기 신동’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어요, 뮤지컬 배우는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 실력도 중요한데 노래를 못했어요(웃음).

원래는 연기를 전공했는데 유학길에 올라 제 길을 찾은 거죠. 배우로서 연기도 해보고 영화사에 취직해 기획 업무도 해봤고 비서 업무도 해봤고, 영어강사, 부모님을 도와 장사도 해보고 이것저것 많이 해봤어요. 다양한 아르바이트도 많이 해봤고요. 그런데 연출을 해보니 그 당시까지 했던 일 중에 제 적성에 맞고 재미 있더라고요. 지금도 가장 적성에 맞아요.

- 작품을 연출하실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어2떤 건가요.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측면이나 군사력 등의 측면에서 세계 10위권이잖아요? 어쩔 수 없지만 한 국가의 문화수준은 사회, 경제적인 측면과 그 수준이 비슷해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우리나라 뮤지컬계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수준보다 유일하게 더 높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반도체가 세계 1위를 하고,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보다 높은 것처럼 뮤지컬도 더 높은 경지에 이르길 바랍니다. 비인기 종목에 불모지라고 볼 수 있었던 피겨스케이팅 분야에서 김연아 선수가 세계 정상에 오른 것처럼 한국 뮤지컬의 수준을 더 높이고 싶어요.

사실 현재 우리나라 뮤지컬 작품들의 수준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뛰어나요. 이제 우리의 경쟁 상대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요. 우리만 모르고 있어요. 우리만 스스로를 낮추고 있는 거죠.

- 많은 예술인들이 작품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하는데요. 감독님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어느 측면인가요?

작품성이 중요하죠. 대중성이라는 것은 연출가가 ‘이런 걸 대중이 좋아하니까 해야겠다’ 해서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연출가가 작품을 즐기며 열정을 다할 때 따라 붙게 되는 겁니다.

제가 작품들을 연출하면서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던 ‘헤드윅’ ‘그리스’ 이런 작품들이 흥행이 됐단 말이죠. 그때 저는 30대 후반 40대였고, 지금은 50대가 됐어요. 저는 점점 전문가, 장인이 돼가고 작가주의적인 측면이 강화돼 가는데 언제나 대중하고 같이 한 호흡 속에 머물 수는 없어요. 제가 피터팬도 아니고 연륜이 생기며 성숙해지는 것은 순리죠. 대중과 멀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마이더스의 손’이 있을 수 없는 거죠.

- 연출가의 눈으로 보는 한국 뮤지컬계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개선의 방향은 어떻다고 생각하는지요?

저는 프로듀서가 아니라 일개 연출가이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무대에 올라가는 작품 숫자에 비해서 시장이 너무 작은 것, 관객층이 한정된 연령대의 여성으로 포커스가 맞춰진 것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지금 우리 공연계에 필요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예요. 프로듀서나 슈퍼스타들이 관객에게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뮤지컬계를 위한 것을 해야 돼요. 뮤지컬은 예술과 동시에 산업의 한 분야이기도 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를 위한 예술, 나를 표현하는 예술일 뿐만 아니라 뮤지컬계 모두가 결부된 문제거든요.

- 최근 몇 년 간 많은 TV 스타들이 무대에 오르고, 반대로 무대 위 스타들이 TV로 진출하기도 합니다. 보수적인 뮤지컬 팬들은 TV 스타의 무대 출연을 크게 반기지는 않는데요. 감독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저는 그런 것들은 신경 쓰지 않아요. TV 스타가 됐건 아이돌 가수가 됐건 그 작품의 배역을 잘 소화할 수 있으면 되는 거죠. 아이돌이라 작품에 쓰거나 안 쓴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작품을 빛나게 해주면 그 캐스팅이 올바른 캐스팅인 것이고, 단순히 작품의 인지도를 높이려고 하는 의도라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연계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필요해”

- 그렇다면 무대 위의 진정한 배우가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어떤 배역이 주어지든 간에 그 배역에 녹아들어서 잘 하는 배우가 제일 멋있는 배우죠. 그리고 책임감을 가진 배우였으면 합니다. 특히 팬을 많이 거느린 배우일수록 책임감을 가져야 해요. 왜냐하면 그 배우의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길게 보면 팬들에게도 작품을 고르는 안목으로 ‘교육’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 최근에 공식적으로 마련됐던 두 차례의 ‘더 데빌’ 관객들과의 대화 행사 외에도 연출가님 개인적으로 티타임 행사를 열어 관객들과 작품에 대한 소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관객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얻는 신선한 자극들은 제가 일하는 에너지가 돼요. 뮤지컬 마니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정말 똑똑한 게 느껴져요. 학위 논문을 써도 될 정도에요. 웬만한 문화부 기자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거든요.

 

- 이번 작품 ‘더 데빌’과 관련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헤드윅’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에 이어 이번에도 락 뮤지컬을 연출하셨는데 기존의 락 뮤지컬과 이번 ‘더 데빌’은 어떤 면에서 차별성이 있나요?

이번엔 좀 세게 한 번 해봤어요. 왜냐하면 요즘 국내 뮤지컬 트렌드가 창작 뮤지컬 중에서는 음악적으로 좀 락(rock)적인 요소가 좀 부족하지 않나 싶어서요. 이제 창작 뮤지컬에선 락을 잘 안 하거든요. 그래서 조금 강한 감성으로 풀어봤어요. 그래서인지 관객들의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괴작(怪作)이라는 소리도 들었고요. (웃음) 그런데 ‘서편제’ 초연 때도 괴작이라고 그랬어요. 지금은 그런 사람 아무도 없지만요.

“첫째도 음악, 둘째도 음악, 셋째도 음악”

- ‘한발 앞서 간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제가 앞서 나간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트렌드에 맞춰 소위 말하는 대세에 편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유행이 너무 만연할 때 저는 그 유행이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걸 추구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앞서 간다는 것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유행의 반대급부로 ‘더 데빌’이 탄생한 거죠. 제가 관객의 입장이라면 유행을 타는 것이 이해가 되지만, 저는 공연을 만들고 관객들에게 작품을 제시하는 사람으로서 그건 아닌 것 같아요.

- 연출가로서 꼽는 이번 작품 ‘더 데빌’의 명장면, 백미는 어느 부분인가요?

음악이에요. 음악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우리 작품의 백미라서 첫째도 음악, 둘째도 음악, 셋째도 음악이에요. 그 다음에 저는 이 작품을 ‘쇼 뮤지컬’로 만들었어요. ‘쇼 뮤지컬’이라는 외형적 특성을 알리기 위해서 코러스들이 춤을 추고 밴드가 무대 위에 노출되지요. 특히 일반적인 뮤지컬에서 쓰지 않는 ‘쇼 조명’을 택했어요. 이런 조명은 어느 뮤지컬도 쓰지 않죠.

 

인터뷰/한은희 기자 snail_no1@futurekorea.co.kr
정리/이보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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