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대학의 교수는 왜 벌목공이 됐나
김일성대학의 교수는 왜 벌목공이 됐나
  • 미래한국
  • 승인 2014.10.0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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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이사회가 지난 5월 초 실시된 북한에 대한 보편적 정례검토(UPR) 결과를 담은 최종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고 딜립 신하 유엔 인권이사회 부의장이 밝혔다. 이번 보고서에는 북한의 연좌제 폐지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권고안 이행,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북한 방문 허용, 정치범 수용소 폐쇄, 성분에 따른 차별 철폐 등이 포함돼 있다.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한 집안에서 한 밥상에 앉을 때뿐이고 성장해 자립을 하고 부모의 수하에서 벗어나게 되면 통제가 어렵게 마련이다. 한국의 학자들과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3대 세습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요소를 주체사상과 사상교육이라고 역설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가정혁명화와 그 토대에 해당하는 연좌제야말로 핵심이다. 연좌제로 인한 가족의 몰락은 너무나도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가족 간에도 서로 통제하고 감시할 수밖에 없다.

연좌제야말로 세습체제의 토대

내 외삼촌은 우리 가족의 탈북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분은 6·25전쟁 때 인민군 장교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와 심장에 파편이 박혀가며 싸웠고 평생을 군인으로 지낸 인민군 고위 장교였다. 본인에게는 그야말로 아무런 잘못이 없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여동생 때문에 북창 18호 관리소에 끌려가 집도 없이 짐승처럼 천대받으며 억울하게 동사(凍死)하셨다.

북한에 살 때 우리 옆집에는 김일성대학 어문학부 강좌장으로 지내다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형의 잘못 때문에 풍서 림산사업소 벌목공으로 추방됐던 박사 부부가 살았다. 이 부부는 북한에서도 보기가 드문 ‘박사 부부’였다. 아내는 모스크바 종합대학에서 유학한 미생물 박사였고 남편은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어학박사였다.

비극은 남편의 형이 술자리에서 무심코 체제에 어긋나는 발언을 한 데 기인한다. 결국 그는 정치범으로 수감됐다. 그리고 김일성대학 교수이자 북한의 권위 있는 어학박사 동생 또한 대학에서 임산의 벌목공으로 쫓겨났고 러시아에 유학 가 있던 아들은 강제로 소환됐으며 부인도 산간오지 노동자로 추방당했다.

故 황장엽 선생이 망명한 후 황 선생과 관련이 있던 모든 친인척들이 강제 추방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평상시에는 황 선생과 친인척 관계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숙청당하면서 비로소 알았다는 웃지 못할 일화인 것이다.

북한에서 ‘6군단 사건’이라는 대형 정치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특히 인상에 남는 에피소드는 6군단 정치위원의 6촌쯤 되는 사람이 친척 방문을 했었는데 6군단 정치위원은 그 친척이 산골에서 온 노동자기 때문에 “그런 친척은 모른다”고 하면서 문전박대를 했다고 한다.

친척이라고 믿고 찾아간 집에 발도 들여놓지 못한 채 돌아와 분하고 원통한 마음이 하늘을 찌르던 가운데 6군단 사건이 터졌다. 6군단 정치위원의 가족들은 사돈에 8촌까지 다 숙청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그 사람도 가족과 함께 정치범들을 수용하는 집단관리소로 끌려갔다. 자신은 6군단 정치위원을 만난 적도 없고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끌려가면서 알게 되는 ‘웃지 못할 친인척 관계’

북한의 김정숙군 행정위원장이었던 김분옥이라는 여성은 일을 잘하기로 양강도에서 소문이 자자했던 사람이다. 삼수군 행정위원회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정숙군 행정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엄청난 신임을 받았고 김분옥의 형제들도 모두 국가안전보위부와 당기관, 안전부 등에서 간부로 활동했다.

김분옥은 아이를 낳지 못해 남자 고아를 입양해 키웠는데 그 아이는 양어머니를 잘 둔 덕에 김일성대학에까지 입학을 했다. 그런데 그 양아들이 반(反)정부 음모에 가담했다고 해서 어머니였던 김분옥은 당장 모든 직위를 박탈당하고 출당까지 당한 채 농장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형제들 또한 모두 보위부와 당 기관, 안전부에서 쫓겨나 탄광, 광산 노동자로 전락했다.

국가를 위해 어떤 헌신을 했든, 아니면 평소에 알고 지냈든 모르고 지냈든 상관없이 싸잡아서 집단적으로 처벌하는 연좌제. 바로 이 연좌제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2014년 바로 지금 이 순간 저 북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애란 편집위원·북한전통음식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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