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절망과 희망 사이
부산국제영화제, 절망과 희망 사이
  • 미래한국
  • 승인 2014.10.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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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번째를 맞는 국내 최대의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지금 홍역을 앓고 있다. 이상호 기자가 만든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다이빙벨’은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세월호 일반인 유가족과 단원고 유가족마저도 영화 상영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유가족을 위로하고 특별법 제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거하게 준비한 영화계 정치꾼들의 다양한 퍼포먼스(?)는 동력을 잃어 버렸다.

10월 6일 ‘다이빙벨’의 첫 상영관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다는 구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라”는 초라한 1인 시위 구호만이 공허하게 내걸려 있었다.

 

누구를 위한 상영인가?

이 국면에서 ‘다이빙벨’ 논란이 일자 다수의 사람들은,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의아해한다. 관객들이 거부하고 유가족마저 반대하는 영화를 기어이 상영하는 이유가 뭔가 하고 말이다.

표현의 자유? 글쎄다.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일 뿐이고 또한 그건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의 입장일 뿐이다. 70억 원이 넘는 세금으로 공식적인 행사를 치르는 영화제의 입장은 될 수 없는 것이다.

‘19년 동안 상영을 취소하는 일이 없었다’는 말도 들린다. 유가족들의 슬픔보다 영화제의 자존심이 먼저인가? 차라리 그 시간에 19년만에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를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체제전복용 다큐멘터리, 대선용 정치영화들, 국가보안법상 범죄자를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영화들이 아니라 노란 깡통 ‘다이빙벨’이 문제가 됐던 이유, 바로 그것을 말이다.

그건 바로 국민정서상으로 건드려선 안 되는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에 있다. 대중의 감성에 민감한 상업영화라 손해를 무릅쓰고, 세월호로 인해 개봉시기를 늦췄음에도 흥행에 실패하는 ‘해무’같은 영화들이 나오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고 문화인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영화제는 귀를 막고 상영을 강행했다. 결과는?

작품의 수준은 이상호 기자 스스로 말했듯 논할 가치가 없을 정도고, 그들은 정치적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다이빙벨’ 영화 상영이 끝나고 가진 이상호 기자의 GV(관객과의 대화) 시간은 차라리 새로운 야당 정치인의 탄생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필자의 입장에서 본 그들의 이런 행위는 의아해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다. 부산영화제의 이번 사태는 오래 전에 이미 예견돼 있었고, 이제야 터지고 만 것에 가깝다. 이미 ‘정치’로 노선을 잡은 그들은 ‘다이빙벨’의 상영을 강행할 것이고 유가족들이 반대하든 말든 극장개봉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중요한 건 영화의 작품수준이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운동으로서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괴벨스는 이렇게 한국영화계를 숙주 삼아 똬리를 틀고 환생하고 있다.

일련의 상황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필자가 2년 전 ‘한국영화에 침을 뱉어라!’라는 책을 통해 이미 경고한 바도 있다.

대한민국 영화, 본질 아닌 ‘수단’으로 전락하나

부산영화제 측과 영화인들의 일방적인 행동과 소통의 부재, 언행 불일치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서는 30년 전쯤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야 한다. 1980년대, 한창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시절 대학을 중심으로 한 영화 제작 동아리들이 생겨났다. ‘장산곶매’나 ‘서울영상집단’, 여성영화집단 ‘바리터’ 등 영화집단이 많이 생겨났지만,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의 기본 의식은 순수 영화제작이 아니라 ‘운동으로서의 영화’였다. ‘영화를 통한 운동’이 아니라 ‘운동으로서의 영화’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영화는 단지 대중을 현혹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자 도구였을 뿐이었다. 급기야 그들은 노동자와 학생들을 선동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드디어 1980년대 말 ‘장산곶매’가 제작한 ‘오! 꿈의 나라(1989)’, ‘파업전야(1990)’ 등의 영화들이 대학가를 돌며 흥행몰이를 하게 되면서 ‘운동으로서의 영화’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필자도 청소년기에 전북대에서 ‘파업전야’를 볼 정도였으니 당시의 흥행은 굉장했었다.

이제 그들은 영화계와 사회 곳곳으로 그람시(Gramsci)의 명을 충실히 받들어 ‘진지전’을 펼쳐갔다. 똑똑한 인물은 대학이나 공무원으로, 영화 잘 만드는 인물은 충무로로, 일 잘하는 인물은 미디어를 통한 대중교육과 영화제로 진출해 그들만의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충무로를 장악한 이들은 과거의 선배 영화인들을 군사정권의 하수인쯤으로 치부해 버리고, 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을 장악하고는 그 안에서 일반인과 어린 학생에게까지 마르크시즘, 러시아와 한국의 노동운동사를 영상으로 가르쳤다. 영화제는 자신들의 의식을 확대시키기 위한 대중운동과 함께 젊은 영화인들에게 상장과 상금을 던져주며 젊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기 위한 창구로 사용됐다.

그들만의 축제로 변질되는 영화제

그렇게 영화계를 완전히 장악하자 드디어 그들은 정치적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광우병 촛불집회가 지나고 1년 후,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영화와는 상관없는 광우병 촛불 집회 1년을 돌아보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전주영화제는 4대강 반대시위와 함께 전주 시민을 힘들게 했던 민주노총의 버스파업에 동참했다. ‘천안함 프로젝트’, 비전향 장기수의 생을 다룬 ‘송환’의 김동원 감독 특별전을 상영하는 등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시선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게 30년 전에 ‘운동으로서의 영화’로 시작된 영화인들이 이제 영화계의 주류가 됐다. 그러니 부산영화제를 비롯해 다른 영화제들이 한쪽의 시선만을 드러내는 이유는 당연한 것이고, 그들의 생각은 무조건 옳다는 전제는 386운동권 출신답게 늘 깔려 있다. 80년대에 머문 그들의 의식은 변함이 없이 그대로 영화제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현재의 영화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난 후 다른 시선을 가진 영화들은 철저히 외면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필자의 후배가 영화를 개봉시키려 할 때 포스터가 파랗다는 이유(당시 한나라당의 색깔)로 거부된 적이 있고 노동자를 살인자로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개봉을 시켜주지 않은 영화도 있다.

이런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부산영화제의 정치 성향이라고 다를 건 없다. 평양에서 원정 출산한 황선-윤기진 부부를 다룬 다큐멘터리 ‘불안한 외출’이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정치적 관점이 다르다는 점이 그 작품 자체에 대한 반대가 될 수는 없다. 문화인들의 특성상 그런 시선의 영화들은 이미 많이 만들어지고 있고, 작품의 완성도가 아닌 ‘내용’을 가지고 문제 제기를 한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이빙벨’은 그런 테두리 안에 넣어서 얘기할 사안이 분명 아니었다. 잘못된 부산영화제의 판단이 결국 이번 논쟁의 불씨가 된 것이다.

그래도 발견할 수 있는 부산의 ‘가능성’

하지만 이렇게 퇴보하려는 부산영화제에서 필자는 이번에 일말의 가능성을 보았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만난 몇몇 부산의 시민들은 분명 부산영화제에 큰 자긍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다 우연하게 극장 앞에서 만난 부산의 한 시민께서는 처음 본 필자에게 열변을 토하시며 부산 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부산영화제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내시는 말씀을 하시고 난 후, 이번 ‘다이빙벨’ 논란에 대해 부산영화제의 집행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부산 시민들이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키운 영화제며 부산의 자랑인데 그걸 이렇게 망가뜨리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60억 원을 부산 시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부산영화제의 주인은 분명 부산 시민, 나아가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리고 분명 그 부산 시민께서는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시겠다고 하셨다.
그 분을 보고 있노라니 전주영화제가 갑자기 생각났다. 영화계 정치꾼들이 전주영화제에 밀려들 때 그곳은 아무런 방어도, 관심도 없었고, 결국 ‘디지털 대안영화제’라는 새로움에서 ‘디지털 독립영화제’로 대안 없이 전락해 버렸다.

필자는 이런저런 이유로 전주영화제를 가장 사랑했지만 이젠 가지 않는 곳이 돼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비록 몇 분이나마 부산 시민들의 영화제에 대한 애정을 보니 부산영화제는 변화할 수도 있겠다는 나름의 기대감이 생겼다.

반드시 부산 시민으로서 주인이 주인다운 모습으로 부산영화제의 자긍심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영화판의 ‘독고다이’이긴 하지만, 이런 필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보내줄 것이다. 부산영화제 집행부는 이제 제발 정신 좀 차리시길. ‘다이빙벨’이 국내 최대의 영화제에서 초청될 만한 수준에는 한참 미달했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최공재 차세대문화인연대 고문
다양성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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