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는 남아도는데 가격은 그대로, 왜?
우유는 남아도는데 가격은 그대로, 왜?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11.0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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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남양유업 밀어내기 논란 1년 후

우유는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비타민 등 114가지의 영양소가 들어 있는 완전식품이다. 특히 뼈와 치아를 튼튼하게 해주고 성장을 도와주는 칼슘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어린이들이 반드시 섭취하도록 권장되고 있다.

그런 우유의 재고량이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분유 재고량은 1만5000t에 육박하고 있다. 이를 우유로 환산하면 18만6000t을 넘는 규모다.

업계는 국내 적정 분유 재고량을 5000t 정도로 추산한다. 그렇다면 남아도는 분유가 적정 수준의 3배에 이른다. 우유회사들은 대량 폐기를 피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유의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이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재고가 늘면 가격이 내려가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공급은 넘치는데 가격은 그대로인 이유

업계는 드러내고 말하지 못하지만, 이런 우유시장의 왜곡은 정부의 잘못된 시장개입이 초래한 전형적인 정부실패다. 농가의 원유공급은 늘고 있는데 원유가격을 생산비연동제(낙농가의 원유가격을 생산비와 연계시키는 제도)로 묶어놔서 우유업체들은 우유가격을 인하할 폭이 상당히 좁다.

올해 낙농가의 원유 공급은 따뜻한 날씨로 인해 5%나 늘어난 반면 원유가격은 사료 값이 13%나 올라 우유회사들은 그 가격을 제대로 다 치러야 한다.

반면에 과거처럼 재고 우유를 대리점에 싸게 밀어내는 소위 ‘푸시’도 할 수 없다. 지난해 남양유업 대리점 사태로 업계의 밀어내기 관행에 정부가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중에 공급되는 우유의 양은 제한돼 가격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이 우유회사에게 없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유회사들은 재고를 폐기처분하고 신상품 개발에 주력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사실 우유가 그렇게 좋아서 소비했다기보다는 가격이 싸 많이 사 먹은 것이 사실이다. 우유 가격에 변동이 없음에도 소비가 5%나 줄어든 상황이 현실을 말해준다. 우유는 시장에서 대체재인 두유나 다른 건강음료들과 경쟁하는 관계에 있다.

그러면 과거에는 어떻게 우유를 싸게 먹을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우유회사들의 대리점 마케팅 전략에 있었다. 흔히 우유회사가 사회적 약자인 대리점을 착취한다는 ‘밀어내기’가 사실은 대리점과 소비자 모두에게 시장을 계속 확보해서 판매를 통한 이익을 공유하는 시스템이었다는 사실을 이번 우유 재고 파동은 보여준다.

그렇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이 ‘갑질’이라고 했던 대리점에 상품 밀어내기는 문제가 없었다는 것일까. 우리는 이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밀어내기’ 제대로 보기

먼저 우유는 유통기한이 짧다. 그렇기에 우유회사들은 재고가 늘어날 조짐이 보이면 대리점에 우유를 판매가의 10% 정도 수준으로 밀어낸다. 이때 물량만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판매장려금’이라는 판촉비를 함께 내려 보내게 된다.

이 판촉비는 사실상 우유회사가 유통기한을 넘겨 팔지 못한 우유를 폐기하는 데 드는 비용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사로부터 이렇게 싼 우유가 대량으로 대리점에 내려오면 대리점은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등에 할인행사나 1+1과 같은 판촉 마케팅을 한다.

그리고 신규 소비층을 발굴하기 위해 배달점에 공짜로 우유를 공급하기도 한다. 이렇게 판촉을 하고도 안 팔리는 우유는 본사가 보내준 판매장려금으로 대리점이 결제하고 주변에 나눠주든지 아니면 폐기처분하는 것이 우유 대리점의 시장 관행이었다.

이 시스템은 본사가 우유의 원가를 낮추기 어려운 점을 대리점이 자신의 이윤폭을 조정해서 박리다매로 판다든지, 본사가 싼 가격으로 밀어낸 우유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남양유업의 일부 대리점이 자신들의 매출부진으로 인한 손실을 본사에 떠넘기는 과정에서 과장되거나 왜곡된 주장을 편 점이 있었고, 이를 좌파 매체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새민련의 ‘을지로 위원회’가 나서서 선동적으로 우유회사들을 ‘갑’으로 공격했던 점이 지금의 우유시장의 왜곡을 초래했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규제가 우유시장을 죽이고 있다

당시 대다수의 언론들은 우유 대리점이 부당한 계약으로 인해 본사의 횡포를 받는 사회적 약자인 것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국내 대표적인 우유회사들의 대리점 권리금이 평균 400만~500만원 정도로 거래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유 대리점이 이익을 못내는 존재들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 줬다. 도대체 이익도 나지 않고 본사로부터 밀어내기 횡포만 당하는 우유 대리점들이라면 어떻게 그런 권리금이 붙어서 거래가 되고 있었다는 것일까.

실제로 문제가 됐던 남양유업 대리점은 전국에 약 2000개 정도였으며 밀어내기 문제를 제기했던 대리점은 일부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대다수의 남양유업 대리점들은 그렇게 몇 년씩 본사의 우유 밀어내기 횡포로 적자를 보면서도 높은 권리금을 유지하며 평균 7년에 달하는 영업을 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재 우유회사들은 밀어내기 마케팅을 할 수 없는 관계로 대리점에 재고 우유를 내려 보내지 않는다. 대신 대리점에 내려 보내던 기존의 판매장려금을 재고 우유의 폐기비용으로 돌리려는 분위기다. 결국 낙농가들이 애써 생산한 원유를 쓰레기로 만드는 일이고 대리점도 판매점도 소비자도 다 함께 누릴 수 있는 사회적 효용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정치인들과 정부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여론이 몰아치면 그때마다 원인 해결이 아닌 포퓰리즘에 입각한 처방을 내놓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책임을 지지 않는 관행이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다.

우유는 공공재도 아니며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소비재다. 그러한 재화는 시장원리에 맡겨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낙농가의 이익집단에 휘둘려 원유를 말도 안 되는 생산비연동제로 묶어 놓고 대리점들은 사회적 약자라는 선동에 휩쓸려 본사와의 계약을 무시한 규제 처방을 하는 한 우유시장은 시간이 갈수록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낙농가의 원유 판매는 줄어들 것이고 우유 본사의 수지 악화로 해고가 늘어날 것이며 우유 대리점들과 배달점들의 경영 악화로 일자리는 줄어들고 소비자들의 후생은 감소할 것이다.
모두가 실패자가 될 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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