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석 요구에 기념관으로 화답한 중국
표지석 요구에 기념관으로 화답한 중국
  • 이성은
  • 승인 2014.11.03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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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하얼빈 역사 안에 건립된 ‘안중근의사 기념관’의 의미
▲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의거 장소인 하얼빈 역사 내에 건립된 안중근의사 기념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 저격해 사살했다. 한국 식민지 역사의 가장 큰 쾌거로 손꼽히는 이 사건은 올해로 거사 105주년을 맞이했다.

안중근의 의거는 한국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근대 역사에도 이념을 불문한 대대적인 주목을 받은 세계사적인 사건이었다. 중국의 국민당 장제스 총통은 안중근 의사를 기려 “장렬한 뜻이 천년 길이 빛나리”라고 애도했다. 이처럼 안중근 의사는 중국 사람들에게도 항일영웅으로 인식되고 있는 항일 역사에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안 의사의 업적이 무색하게 그의 유적은 무심히 방치돼 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얼빈 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거사의 흔적은 안 의사의 저격 장소와 이토가 쓰러진 장소를 일언의 소개 없이 빨간 페인트로 각각 세모와 네모 표시로 칠해놓은 것에 불과했다.

한국 정부는 2006년 이후 꾸준히 하얼빈 역 내에 표지석 설치를 요청했으나 중국 측은 일본과의 외교적, 경제적 마찰을 의식해 난색을 표해왔다.

 

▲ 하벌빈역 내의 저격 장소에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 장소임을 밝히는 현판이 설치되었다.

눈치만 보던 중국이 달라졌다?

그런데 중국이 올해 1월 19일 하얼빈시와 철도국이 공동으로 건립비용을 부담해 하얼빈 역사 안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했다. 단순한 표지석 설치에도 유감을 표시해 온 중국이 아예 기념관을 건립한 것은 대반전에 가까운 일이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건립은 지난해 6월 한중정상회담에서부터 이뤄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중근 의사가 한·중 양국민이 공히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인 만큼 하얼빈역의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석을 설치하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고 시 주석이 이를 받아들여 이루어진 결과이다.

이러한 중국의 파격적인 행동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동북아 국제정세는 영토분쟁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중일(中日) 관계는 아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섣불리 안중근 의사 기념관 건립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해 단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는 엄연히 양국 국가원수간의 약속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시기적으로 시진핑 주석이 방한을 한 지난해 6월은 중국 내의 반일민족주의 감정이 고조되는 상황이었고 한국도 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 등으로 인해 일본과 첨예한 긴장상태를 이어가고 있던 때였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이 일본에 관한 영토분쟁의 측면에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항일공동전선을 형성하자는 중국의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할 수 있다.

중국이 영토 분쟁으로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한국과 일본 관계도 유사한 상황에서 역사적 공통분모를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 변화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일본이 영토분쟁의 억지를 부리는 만큼이나 중국은 계획적으로 역사왜곡을 강행해 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장은…

▲ 중국 산시성 시안에는 광복군 표지석이 세워졌다

중국의 긴 역사공정의 역사는 목표가 분명하다. 우리나라가 직접적으로 당면한 동북공정을 시행하기 이전부터 중국은 주변국가의 역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는 작업들을 시행해 왔다.

그들의 역사공정은 1959년의 서남공정으로 출발했다. 그 이후 서북공정, 동북공정 1단계, 마지막 단계로 한국의 고조선, 고구려, 발해 역사를 중국 편입시키는 작업인 동북공정 2단계까지 아주 치밀하게 주변국의 역사를 자국 역사로 종속시켰다.

따라서 50여년에 걸친 역사공정을 마무리한 상황에서 이러한 중국 정부의 행보는 ‘이중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역사공정을 통한 자국 역사의 개조와 현재 중국이 당면한 일본과의 대립 관계에서 일본의 전근대적인 패권주의 역사를 부각시키는 것은 그들에게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안중근의사 기념관’ 건립은 중국이 동북아시아 국제역학상의 미일동맹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정치적 차원에서 한반도를 이용하고 있는 모양새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선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건립으로 안 의사 의거 장소에 그의 족적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됐다는 사실에는 고무적인 평가를 부여해야 한다.

하얼빈역은 올해 안으로 개축 공사에 돌입하면서 안중근의사 기념관 역시 더 큰 규모로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 이미 설계도면에 안 의사 기념관이 포함돼 있으며 기념관은 현재 집중적으로 조명된 저격 당시의 모습 뿐 아니라 안 의사의 정신세계까지도 담아 낼 전망이다.

이뿐 아니라 올해 5월 중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 제2지대가 주둔했던 중국 시안 지역에 ‘광복군 기념비’를 건립했다. 안 의사 기념관 건립에 이은 또 하나의 반가운 상징이다.

이를 통해 봤을 때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중국이 반일 감정을 앞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안 의사의 항일 족적을 조명한 것이라고 가정해도 추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중국의 행보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지에 ‘안중근의사 기념관’ 탐방 소견을 전달한 이태휘 전 서울교대 총장는 “중국의 이와 같은 행보는 현재로서는 매우 환영할 일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은 한국 항일 역사를 대표하는 안 의사의 의거 표지석만이라도 세우자는 우리의 오랜 숙원에 대해 중국이 기대 이상의 화답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기자 nomadworker@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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