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에 드리워진 ‘강요된 평등’의 그림자
교육계에 드리워진 ‘강요된 평등’의 그림자
  • 정용승
  • 승인 2014.11.1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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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서울시교육청, 자사고 폐지 움직임 가시화

‘취존’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때 대부분은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취존은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라는 말을 축약한 단어다. 말 그대로 상대방의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아달라는 완곡한 표현이다.

이 단어는 그동안 획일적이었던 문화가 깨지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이 단어가 널리 퍼질 즈음 사회 많은 부분에서 다양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음악, 패션, 음식 등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취향을 내세우는 분위기가 장려됐고 관련 전문 블로그들이 생겨났음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생각도 존중해야 한다는 흐름이 나타났다. 바야흐로 상대방의 선택을 인정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부문이 있다. ‘교육’이다. MB정부의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가 시행되고 생겨난 자사고(자율형 사립고등학교)들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학생들에게 전인교육, 교육 프로그램의 다양화, 학생자치활동 지원 등 여러 변화를 통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던 이 프로젝트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 의해 사라질 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조 교육감은 자사고 폐지를 지난 선거 때 공약을 내세웠고 지난 10월 31일 서울시교육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자사고 6개교를 지정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2개교는 2년간 지정 취소유예를 결정했다. 지정 취소된 학교는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우신고, 이대부고, 중앙고등이며 지정 취소 유예된 학교는 숭문고, 신일고 등이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연합

진보 교육감의 진보적 교육?

조 교육감은 같은 날 ‘자사고 지정 취소 발표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으로 담화문을 발표해 지정 취소의 이유를 밝혔다. 자사고 평가기준 점수에 미달된 8개교 중 6개교에 대한 지정 취소를 확정했고 2개교에 대해서는 확고한 개선 노력 의지를 확인 후 지정 취소를 2년 유예했다는 것이 근거였다.

이어 조 교육감은 ‘자사고 정상화’라는 말을 사용하며 ‘정상적 자사고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조 교육감이 말하는 ‘정상적 자사고 모델’의 조건은 두 가지다. 기존 자사고가 가지고 있던 ▲학생 선발권과 ▲교육과정 자율권을 없애는 것이다.

그는 이 두 가지를 말하며 ‘특권’이라고까지 주장했다. 학생 선발권을 일반 고등학교와 같은 ‘완전추첨제’로 바꿔 ‘일반고화된 자사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수평적 다양성’을 추구하겠다는 의견도 내비쳤다.

이런 그의 정책에 자사고 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은 반발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조 교육감이 말하는 평등은 실현될 수 없으며 전체적인 하향평준화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지역 자사고 학부모연합 회원 1000여 명은 지난 3일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독립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공교육 정상화의 해법은 결코 ‘자사고 폐지’가 아니며 교육 실험을 위해 우리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라”고 외쳤다.

물론 서울시에 있는 모든 자사고가 폐지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6개교 폐지를 시발점으로 많은 학교들도 같은 위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이 학교를 선택할 기회마저 빼앗는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취향’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고 봐도 무관하지 않다. 자칭 ‘진보’ 교육감인 조 교육감에게 학생들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선택의 기회를 없애는 것이 ‘진보’하는 것일까.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재원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현재 자사고는 일반고와 다르게 교육청으로부터 인건비와 운영비를 지원받지 않고 있다.

만약 6개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하게 된다면 교육청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조 교육감은 지난 7월 일반고로 전환하는 자사고 한 곳당 5년간 최대 14억 원을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예고된 안전사고

또한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재정소요 추산에 의하면(자사고가 올해 교직원 수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가정과 사립고에 지원하는 인건비, 운영비 등 재정결함지원액을 기준으로 물가상승률을 감안했을 때),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지정취소 대상이 된 6개교가 일반고로 전환될 경우 재정소요액은 총 980억 원에 달한다.

현재 서울에 위치한 많은 고등학교에서 시설문제로 인해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언론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된다면 그동안 일반고에 지원되던 재정은 더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열악한 시설을 가진 학교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앞당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재정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또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내년까지 혁신학교를 100개교로 늘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미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달 27일 55개교 내외의 서울형 혁신학교 공모를 골자로 하는 ‘2015학년도 서울형 혁신학교 공모 계획’을 발표했다.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교당 평균 6500만 원(재지정교 4500만 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가뜩이나 재정이 부족한 일반고의 재정을 더 깎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또 하나 논란이 되는 것은 ‘조 교육감은 왜 자사고만 건드리는가’에 대한 논란이다. 조 교육감이 말하는 평등교육을 위해서라면 특목고부터 폐지하는 것이 수순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조 교육감은 특목고에 대한 말은 언급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조 교육감의 아들이 특목고를 졸업했기 때문’이라는 푸념도 터져 나온다.

자칭 ‘진보’ 교육감의 이런 행보가 학생들을 ‘진보’시킬 수 있을까. 과연 학생들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이 진보일까. ‘개성’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오히려 개인의 개성을 없애고 있는 조 교육감의 행보가 어디에서 멈출지 의문이다. 어쩌면 모든 것은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정용승 기자 jeongys@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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