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김구를 어떻게 평가할까
북한에서는 김구를 어떻게 평가할까
  • 미래한국
  • 승인 2014.11.1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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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란의 평양별곡]

탈북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백범기념관이 건립됐고 ‘백범일지’를 접하게 됐다.

▲ 이승만과 김구

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북한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을 소개할 때 ‘김일성의 위대성에 탄복하여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창건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것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왜곡된 역사를 배웠고 특히 근현대사에 대해서는 너무도 헷갈리는 것이 많았던 시절이라 그런가보다 생각을 했었다.

최근 대한민국 건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과정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백범 김구 선생이 정말 대한민국 건국에는 별로 기여한 바가 없었고 북한에서 주민들에게 교육한 내용들이 어느 정도 과장은 있었지만 완전히 지어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조선의 반공주의자인 김구 선생까지도…”

북한은 정권 수립의 정당성을 설명할 때마다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 언급하면서 남조선의 우익정객이자 반공주의자이며 민족주의자인 김구 선생까지도 김일성 장군의 위대성에 탄복을 하여 한반도에서 정통성이 있는 정부는 김일성이 세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선전을 했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도 수록이 되고 일반 책자로도 발간되었으며 1986년경에는 ‘위대한 품’이라고 하는 영화까지 제작하여 영화문헌 학습을 시키고 영화감상문을 써서 제출하도록 하는 등 사상선전사업을 했던 것이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혁명력사 교과서들과 1982년 조국통일사가 발행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이란 책자 등은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온 백범 김구 선생이 김일성을 만나 “조국이 없으면 민족이 없고 민족이 없으면 무슨 주의, 무슨 단체가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현 단계에 있어서 우리 전 민족의 최대의 유일과업은 통일독립의 전취인 것입니다.

그런데 목하에 있어서 통일독립을 방해하는 최대의 장애는 소위 ‘단선단정’입니다. 그러므로 현하 우리의 공통한 투쟁목표는 단선단정을 분쇄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과 단독선거를 반대하였다고 소개하였다.

그러면서 30대의 젊은 지도자 김일성을 만난 남조선의 노(老)정객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위대성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고 소개하면서 “특히 김구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권위와 넓으신 도량, 우리 당의 통일전선 정책에 깊이 감동되어 수령님께 미제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여 끝까지 싸울 것을 맹세하였다.

그는 자기가 평양에 와서 느낀 바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고 소개하면서 “장군님의 공산주의는 절대 찬성입니다”라며 “장군님의 공산주의야말로 누구나 절대 찬성할 공산주의요, 내가 일찍이 장군님을 알았던들 벌써 그분을 받들어 왔겠는데 이제야 참된 애국자를 알았으니 나는 늦게나마 장군님을 받들어 나의 여생을 바쳐나가겠습니다”라는 김일성에 대한 맹세를 인용하기도 했었다.

또한 1997년 5월 26일 북한의 노동신문은 ‘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렬사-신념과 절개로 목숨 바쳐 지킨 성시백 동지의 결사적인 투쟁을 두고’라는 제목의 글에서 성시백과 김구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성시백의 요청으로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게 된 김구 선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었다.

 

▲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서 만난 김구와 김일성

‘창작’과 ‘사실’ 사이 아슬아슬한 평가

그뿐 아니라 북한은 1986년에 ‘위대한 품’이라는 제목으로 김구 선생의 방북과 남북련석회의 참석을 다룬 영화를 만들었는데 고루한 민족주의자이자 대표적인 우익정객이며 지독한 반공주의자였던 김구 선생이 김일성을 만나고 나서 김일성의 위대성에 감동되어 김일성을 장군으로 부르면서 김일성이 영도하는 북에 한민족의 정통성이 있고 미래가 있다고 하면서 김일성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김일성 주석님, 받으십시오”하며 상해임시정부의 옥쇄를 바치는 장면도 있었다.

그러면서 김구 선생은 김일성의 정권 수립을 기정사실화하면서 김일성이 김구 선생에게 남한으로 가지 말고 북한에서 그냥 지내라고 권고하자 남한에 내려가서 기어이 남한의 단독정부수립과 단독선거를 막고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나는 통일이 되면 주석께서 황해도 고향에다 땅이나 몇 평 주면 과수원이나 하며 말년을 지내겠다” 또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려가며 “지난 날 장군님을 몰라 뵙고 반공운동을 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모든 것이 창작인지 사실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에 백범 김구 선생이 ‘디딤돌’의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는 것,

오늘날 지옥 중에 지옥으로 전락한 김일성의 3대 세습 독재정권을 만들고 정당성과 정통성을 부여해주는 데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 대해서 완전히 부정하기는 힘들 것으로 사료된다.

 

이애란 편집위원·북한전통음식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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