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또 하나의 ‘국민 호갱법’ 되나
도서정가제, 또 하나의 ‘국민 호갱법’ 되나
  • 이성은 기자
  • 승인 2014.11.18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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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11월 21일 개정되는 도서정가제가 전격 시행된다.

‘개정’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도서정가제는 이번이 처음 시행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 여론은 마치 도서정가제가 처음 시행되는 것처럼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도서정가제의 역사를 한 번 되짚어보자. 도서정가제는 지난 2003년 2월 출판및인쇄진흥법(현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 발안되면서 도서정가제의 모태가 되는 관련 법안이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발행된 지 1년 미만의 도서에 한해 온라인 판매에만 10% 할인을 허용하고, 오프라인 판매는 할인을 불허해 온·오프라인의 가격제도에 차등을 두는 방식이었다.

이후 현재 개정 시행을 앞둔 도서정가제의 모델이 만들어진 것은 2010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다. 당시 발효된 도서정가제는 서점이 도서 판매 시 적용할 수 있는 할인 한도를 정가 대비 19% 이내로 한정했다.

또한 도서정가제의 적용 대상은 ‘실용서와 초등 학습 참고서를 제외한’ 서적 중 발행된 지 18개월 미만의 신간만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따라서 발행일 기준 18개월이 지난 신간과 실용서, 초등 학습 참고서는 도서 정가제의 규제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도서정가제 적용 분야 제한을 폐지했다. 따라서 신간과 구간, 실용서적 및 초등 참고서에 관계없이 국내 발행되는 모든 서적이 도서정가제의 규제를 받게 됐을 뿐만 아니라 가격 할인 한도도 기존 19%에서 15%로 바뀌었다.

   
 

도서정가제가 간과하는 3가지

그렇다면 소비자들의 불가피한 부담이 예상되는 도서정가제 시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정부가 밝힌 도서정가제 개정안 추진 배경은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보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 출판사와 동네서점을 살리겠다는 취지이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등의 대형 서점과 인터파크를 비롯한 온라인 서점에서는 구간 도서와 실용서적에 대해 대폭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출판사 및 동네서점은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할인 폭을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가격 경쟁에 밀려 어려움을 겪는 중소 출판사와 동네서점을 살리기 위해 도서정가제를 개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작은 출판사와 서점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인위적으로 시장경제에 개입하며 도서정가제를 개정하는 것이 과연 효과를 발휘할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의문점이 제기된다.

첫째는 대형 서점과 중소 서점의 불가피한 마케팅 역량의 차이다. 합리적인 소비자는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책을 구매하기 위해 가격 비교를 하며 책을 고르는 것이 당연하다. 하물며 도서정가제가 개정된다면 미세한 가격 차이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서정가제는 서점의 정가할인 한도 이외에 적용되는 마케팅 영역의 할인은 통제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서점과 제휴를 맺은 신용카드 회사 및 이동통신사의 제휴카드 할인은 허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책값의 차등이 거의 동일한 환경에서 소비자들은 제휴 할인을 통한 도서 구매방법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전히 현실적으로 이와 같은 마케팅이 실현가능한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으로 구매가 집중될 것이다.

둘째는 도서 구매자들의 이미 정형화된 소비 구조이다. 매년 출판업계가 불황이라고 떠들고 있지만 온라인 서점의 매출 추이는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매출 증가를 나타내고 있다. 대형 서점 역시도 꾸준한 매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이 온라인 서점을 통한 도서구매가 정형화돼 있으며 오프라인 구매 시에도 다양한 종류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서점을 찾아간다는 방증이다. 온라인 서점은 한 권의 책을 구매해도 무료배송을 해준다는 것은 이미 당연시 되는 일이다.

특정한 책을 살 때 온라인 구매를 통해 굳이 밖에 나가지 않고 통상 1~2일 안에 무료로 책을 받아 볼 수 있는데 당장 필요한 책이 아니고서야 오프라인으로 책을 구매할 사람은 많지 않다.

따라서 목적성이 있는 소비자들은 저렴하고 편리한 온라인 서점을 이용이 고착화돼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오랜만에 독서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거나 관심이 가는 분야의 책을 살펴보기 위해서 동네의 작은 서점을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동네 서점에는 책의 종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책 구경을 가더라도 다양한 종류의 분야의 책을 보유하고 있고 책의 수량이 많은 대형서점에 가는 것이 이미 통상적인 흐름인 것이다.

셋째는 출판사와 서점 간에 이뤄지고 있는 가격 차등 공급의 문제이다. 현재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서점의 서적 수요의 정도에 따라서 공급 가격에 차등을 둬 납품하고 있다. 따라서 정가 1만원의 서적을 동네서점 A에는 8000원에 공급하면서 대형서점 B에는 6000원에 공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역시 출판사 입장에서는 박리다매가 가능한 대형 서점에는 적은 마진을 남기고 책을 납품하고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적은 중소 서점에는 좀 더 많은 마진을 남기는 것이 시장경제의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근본적으로 중소출판사와 서점을 살리기 위한 목적이라면 차등 공급의 구조를 바꿨어야 하지 않나 싶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 해도 거의 비등비등한 가격에 책이 판매되는 상황에서 대형 서점의 마진율은 증가할지언정 동네 서점의 실질적인 마진율은 여전히 개선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불 보듯 뻔한 도서정가제의 결과

중소 출판사와 동네 서점을 살리겠다는 도서정가제의 목적 실현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 보인다. 소비자들의 도서 구매 패턴은 정형화됐다.

특정한 책을 주문하고자 하면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고 흥미 있는 분야의 책을 찾는다면 다양한 장서를 보유한 대형 서점에서 찾는다. 즉,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작은 서점은 이미 사양산업이다.

대한민국은 시장경제체제다. 시장경제는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소비자가 만족하는 값을 지불하고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할 선택권을 갖는 것이 기본이다.

따라서 공공재와 같은 천문학적 비용이 발생하는 시스템 이외에는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모든 경제정책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공공사업도 아니고 활성화되는 산업도 아닌 산업에 심폐소생술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찌 보면 아이러니라는 지적도 있다.

과연 도서정가제 개정이 순수하게 작은 출판사와 골목 서점들을 살리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안인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는 의미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도서정가제 개정으로 도서 평균가격은 권당 1만4678원에서 220원 인상될 것으로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온라인과 대형서점에서 반값 판매 행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도서정가제 개정 시행을 앞두고 최대 90%할인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1.5% 남짓의 가격 상승을 예상하는 것은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 분석이다.

최근 한 증권회사는 정가 1만원 도서를 기준으로 권당 900원의 가격이 상승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더불어 영업이익률은 최근 3년 이익률 평균치의 두 배 가까운 영업이익 상승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물론 이 역시 예상 수치지만 도서정가제의 수혜를 기대하면서도 여론의 반발을 의식하고 분석 결과를 내놓았을 전자보다는 철저하게 상업적인 조사 결과를 내놓은 후자의 분석이 신뢰가 간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가격통제정책은 경제 질서를 왜곡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한다. 가격을 통제해 모두가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을 산다는 건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똑똑한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물건을 사고 기업은 경쟁을 통해 최대한의 이윤 추구를 하도록 두는 것이 옳지만 정부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결국 도서정가제도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에 이어 제2의 ‘국민 호갱법’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성은 기자 nomadworker@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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