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교육정책이 청년의 꿈을 앗아간다
졸속 교육정책이 청년의 꿈을 앗아간다
  • 이성은 기자
  • 승인 2014.12.12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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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22년 역사상 가장 큰 혼란에 빠졌다. 작년과 올해 연이어 터진 대형사고 때문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 10월 31일, 2015학년도 수능을 2주 앞둔 시점에서 지난해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출제 오류를 뒤늦게 시인했다. 대학 입시가 끝난 후 1년 남짓의 시간이 흐른 후 결과가 번복된 수능 역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최근 시행된 2015학년도 수능에서는 영어 홀수형 25번 문항과 생명과학Ⅱ 8번 문항의 출제오류가 발견돼 복수 정답이 인정됐다. 두 문항의 복수 정답 처리는 수능 제도의 도입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작년 수능 오류를 끝내 인정하지 않고 버티다가 가늠할 수 조차 없는 수험생들의 운명을 뒤바뀌게 한 것도 모자라, 올해 수능에서도 치명적인 출제 오류가 2개씩이나 발견돼 수능 자체의 존폐 논의가 거론될 정도로 논란이 거세다.

그 결과 김성훈 평가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불명예스러운 사퇴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능 개선위원회를 발족해 수능 출제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며 사태 수습을 마무리하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

   
▲ 김성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작년과 올해 반복된 출제 오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입시제도의 역사와 수능의 변천사

대한민국의 입시제도는 1969학년도 대학입학 예비고사 도입 이래로 지난 47년간 39번의 변화를 겪었다. 이는 수능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한국의 입시제도가 확고한 정착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올해로 22년째를 맞이한 수능에서 지속적인 결함이 발견되는 결정적인 이유 역시, 수능이 여전히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리를 구축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수능의 변천사를 살펴봐도 거의 매년 수능 제도에 수정을 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994년 도입된 이래로 올해 22주년을 맞은 수능이 전년도와 동일하게 치러진 해는 단 4차례에 불과하다. 앞으로의 변화를 예상해 보더라도 2017학년도부터 한국사가 필수 과목이 되고, 2018학년도에는 영어 영역의 절대평가가 도입될 예정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수능 제도는 수험생들에게도 큰 혼란을 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험생들이 고등학교 3년간 일관된 계획을 가지고 입시 준비를 하기가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재수생들은 고등학교 3년간 아예 배우지 못한 영역의 학문을 1년이라는 재수 기간 동안 배워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학력고사의 시대가 저물고 수능 시대가 도래한 것은 암기 능력이 평가 준거가 되는 학력고사 제도가 인재를 가려내는 시험방식으로 알맞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따라서 수능은 수학(修學)능력을 평가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그렇기 때문에 수능은 교과 범위 내의 지식을 토대로 다양한 상황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평가원에서 매년 발행하는 수학능력시험 출제 매뉴얼을 보면 사실 수능이 고도의 과학적인 평가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 당시 사교육 폐지라는 이상적인 취지로 EBS 교재의 수능 연계 정책을 시행하면서 수능은 본질적으로 손상을 입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후 EBS 정책은 더 강화돼 수능 연계율은 70%를 선회하게 됐다.

EBS 정책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대로 수능은 수학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능 제도가 지향하는 학습 방법은 교과 범위 내용을 숙지한 뒤 다양한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하지만 EBS 연계율이 70%를 넘어가면서 수험생들은 수학능력의 향상보다는 EBS 교재의 문제풀이에만 집중하게 됐다.

수능의 취지는 수학능력 평가지만 수능에 EBS 교재의 지문과 문항까지 똑같이 나오는 판국이므로, 학습 방식이 EBS 문제풀이와 암기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교 현장에서도 교과서는 등한시 한 채 EBS 교재만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사교육 현장 역시 일찌감치 EBS교재 문제풀이 강의가 지배하고 있다.

EBS 정책은 수능출제 매뉴얼도 훼손시키고 있다. 수능 출제 위원들은 학생들의 수학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문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출제 방법을 고안한다.

하지만 결코 검증됐다고 단언할 수 없는 EBS 교재를 바탕으로 70% 이상의 문항을 출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양질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실제로 올해 수능에서 문제를 야기한 생명과학 8번, 영어 25번 문제 모두 EBS 연계 문제였다. 대다수의 관계자들은 이번 출제오류 사태는 EBS 교재가 검증 없이 수능에 출제되면서 나타난 문제라는 의견에 입을 모으고 있다.

   
▲ 한 대학입시설명회에 대학 지원을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몰려있다

한 치 앞 아닌 백 년 내다본 교육정책을 …

교육은 백 년 앞을 바라보고 세우는 백년대계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 입시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입시제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고, 수능이라는 제도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점은 끊이지 않고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처럼 한국 입시제도에 혼란이 지속되고 교육 시스템의 복합적 문제가 나타나는 이유는, 교육이 바라보는 ‘궁극적인 지향점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교육’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목표에 대해 사회적 함의가 이뤄져 있지 않다.

가장 올바른 대입 시험 형태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라는 궁극적 교육목표를 통해 정착한 백년대계의 결과물이다.

차별 없는 평등교육의 국가로 꼽히는 핀란드 역시 국가의 생존을 위해 경쟁이 아닌 개인 스스로의 경쟁력을 신장한다는 교육원칙을 고수하며 이뤄진 선진적인 교육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로, 과거의 독일은 주입식 교육을 선도한 국가였다. 하향식 교육제도 하에 선행학습이 만연했던 독일은 목적이 불분명한 채 경쟁만 붙이는 현재 한국의 교육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하지만 독일의 교육은 현재 깊이 있는 사고를 추구하는 느린 교육으로 탈바꿈했다. 따라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사회성을 갖춘 인간을 길러내는 전인교육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프랑스의 대입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시험 현장

한국의 본질적인 교육 목표는?

독일의 교육이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주입식 교육과 선행학습으로 빚어진 각종 폐해로부터의 본질적 반성을 이끌어내고 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독일은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교육의 대목적을 설정했고 이를 토대로 해서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내게 됐다.

이처럼 선진 교육 국가들의 교육제도는 지리적·문화적 환경에 맞는 궁극적인 교육의 지향점을 바탕으로 해서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대입제도의 혼란을 없애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시각으로 궁극적인 교육 원칙과 목표 정립을 선행해야 한다.

최근 2년간 수능 제도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하지만 대대적인 손질도 폐지도 둘 다 궁극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 도리어 또 다른 혼란만 증폭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한민국의 지리적·문화적 환경 속에서 추구해야 할 한국 교육의 대목적은 무엇인가?

한국이 필요로 하는 도덕적이며 본질적인 교육의 목적을 설정하는 것,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답을 찾는 것이 대한민국의 대학 입시제도, 나아가 올바른 교육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성은 기자 nomadworker@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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