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국민은 모두가 詩人입니다”
“방글라데시 국민은 모두가 詩人입니다”
  • 미래한국
  • 승인 2015.01.02 09: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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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의 세계여행 37] 에나물 카비르 방글라데시 대사
   
▲ 에나물 카비르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

-‘방글라데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국민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경제적으로는 그리 풍요로운 편이 아닌데도 말이죠.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정말 그렇게 행복한가요. 그 비결이 있다면요?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500달러를 준다고 하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그 10배를 준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을지도 모르죠.(웃음)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이처럼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세로 살아갑니다. 작은 일에도 쉽게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편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건 아마도 무슬림들이 방글라데시에 진출해 사람이란 언젠가는 죽게 되고 가지고 있는 소유들의 가치는 무의미하게 된다는 사상을 전파했는데 그런 인생관이 우리 국민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방글라데시인들은 주머니에 약간의 돈만 있더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쉽게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인해 우리가 큰 야망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 있더라도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행복의 비결이라면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모두가 인생을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점입니다. 어쩌면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세계 시성 타고르도 방글라데시 출신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방글라데시의 문화적인 특징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오래 전부터 로마, 영국, 인도 등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문화가 한 데 녹아 있습니다. 자랑을 하나 하자면 아시아에서 첫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타고르가 방글라데시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이처럼 우리 국민들은 감성적이고 문학적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우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입니다.

다른 문화를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개방적이기도 합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무슬림, 불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고 모든 종교인들이 동등하게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한 자리에 동석하는 것을 꺼리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평화와 조화를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과 방글라데시 양국 관계에 대한 설명을 바랍니다. 1973년에 외교관계를 수립해 작년에 수교 40주년을 맞았지요?

한국과 방글라데시 양국은 수십 년간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하며 핵 확산 방지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분단과 분쟁을 겪은 나라로서 한반도가 역사 속의 고통을 다시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많은 협력을 하며 한국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 진출한 한국 기업 중에는 신발 제조업에서 뛰어난 회사들도 있고 최근엔 엔지니어링 부문에서도 많은 투자가 있습니다.

최근 갠지스강 주변 대규모 공사가 진행 중인데 중국에서 시공을 하고 한국 회사가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방글라데시의 전자산업 발전에도 도움을 주기를 바랍니다.

   
 

-방글라데시가 해외 기업들에게 주는 매력은 무엇입니까.

우선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해 매우 호의적입니다. 차별 대우 같은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내부 분쟁을 겪더라도 외국인들과는 거의 싸우지 않습니다.

또한 주변의 미안마 등 그 어떤 국가보다도 저가의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국가적으로 생산업에 40여 년간 집중해 왔기 때문에 가격 대비 전문성 있는 인력들이 많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분쟁 중에 도로망과 통신 시설이 파괴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거의 복구가 된 상태입니다. 굳이 문제가 있다면 전기 공급이 약간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점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한국으로부터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근로자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언어의 장벽도 높지 않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만든 물품을 유럽과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 관세 없이 수출할 수 있다는 부분도 매력적일 것입니다.

방글라데시의 시장 자체는 작을 수 있지만 다른 큰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종합적으로는 가능성이 매우 열려 있는 시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 한국인 기업인이 기업 수천 개를 들여올 수 있는 넓은 부지를 배정받았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유례가 없는 혜택인데 그 만큼 한국의 기업들과 투자가 방글라데시에서 인정받고 환영받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에 많은 방글라데시 근로자들이 와 있지요. 그들은 만족하며 일하고 있는지요. 어려운 점은 없나요?

차별 대우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지만 일부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며 큰 문제는 아닙니다. 대부분이 만족하며 행복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부 차원에서 바라는 것은 더 많은 방글라데시 근로자들이 한국으로 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싼 값에 좋은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업무 숙련도도 매우 뛰어납니다. 우리 근로자들이 일했던 한국 기업에 다시 고용돼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약 1000명의 방글라데시 근로자가 와 있는데 굳이 예를 들면 네팔의 경우 인구수가 방글라데시의 7분의 1밖에 되지 않는데 한국에 와 있는 근로자의 수는 두 배입니다.

-방글라데시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방글라데시의 지리, 경제적 특성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방글라데시는 인도의 동북부에 위치하며 인도, 미얀마 그리고 벵골 만에 인접해 있습니다. 두 개의 큰 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데 강들의 폭이 12km가 넘기도 합니다. 국토의 대부분은 평지이며 지리적 이점 때문에 1억6000만명의 인구를 포용할 수 있습니다.

여름에는 매우 덥고 겨울도 있긴 하지만 한국의 추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12월 말이 되면 우기가 시작되고 두 달간의 기간 동안 강우량 54mm에 달하는 비가 내리면 전 지역에 홍수가 발생합니다.

다행히 최근 몇 년간은 홍수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교육환경은 현대화돼 있습니다. 아직도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가난한 편이지만 산업은 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의류 및 방직 수출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전자와 가죽 분야에서도 많은 발전을 보이는 등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근로자 많이 고용해주시길…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과 한 나라였다가 분리가 됐죠. 그 전에는 인도와 한 나라였고. 역사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바랍니다.

원래 방글라데시(구 파키스탄)는 지금의 한반도와 같이 두 개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1947년 영국의 식민지배가 끝났을 당시 인도 내 이슬람지역은 동(東)파키스탄과 서(西)파키스탄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러다가 1971년 우리는 벵골 국가라는 뜻의 방글라데시라는 나라를 만들게 됐고 독립했습니다. 동-서 파키스탄이 공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두 나라 사이에서는 역사나 언어 등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착취와 폭력이 가해졌는데 경제적으로 국가 소득의 많은 부분이 서 파키스탄에게만 편중되게 재투자됐고, 사실상 동파키스탄이 서파키스탄의 식민지와도 같은 상황으로 전락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독립을 쟁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파키스탄은 우리를 무력으로 저지하려 했으나 9개월간의 투쟁 끝에 우리에게 항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국가들이 우리를 지원하였습니다. 인도와 소련을 비롯해 여러 국가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우리는 벵골로 시작해 동파키스탄을 거쳐 벵골의 이름을 딴 방글라데시가 된 것입니다.

-독립 이전에 동-서 파키스탄은 인도를 사이에 두고 수백 km가 떨어져 있었는데 동파키스탄은 어떻게 서파키스탄을 사실상 지배할 수 있었습니까.

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를 통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죠. 과거 서구열강의 식민 지배를 봐도 그렇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영국의 식민정책으로 인해 일어난 일입니다.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 사람들은 인도 지역 출신이지만 단지 종교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언어·문화·역사 등 다른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벵골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묶이게 된 것입니다.

-1971년 독립 전후 방글라데시의 상황이 많이 어려웠을 텐데요, 당시 상황을 간략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쟁이 그렇듯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지지하는 세력과 이를 반대해 파키스탄에게 도움을 준 세력으로 나뉘었습니다. 파키스탄을 지지했던 세력은 방글라데시의 독립과 자신의 패배를 마음 속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계속 우리의 독립을 위협했으며 그들이 처음으로 준비했던 음모는 국부인 세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암살이었습니다. 또한 파키스탄의 군사 정부가 파키스탄 내부의 통신시설, 도로망, 식량 저장고, 학교, 병원 등을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거쳤고 아직도 그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있지요?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병하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곳에 임의적으로 파병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의 임무 부여에 따라 행동합니다.

또한 파병 주둔국의 동의 없이는 군 병력을 파견하지 않습니다. 세계 평화유지라는 명분에 동의하기 때문이고 물론 경제적 이유도 있습니다.

   
▲ 에나물 카비르 방글라데시 대사(왼쪽)와 미래한국 김범수 발행인(오른쪽)

유엔 평화유지군 가장 많이 파견

-북한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은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군에게 공격받았을 때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던 나라 중 하나입니다.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줬던 나라를 기억할 수밖에 없지요. 다만 방글라데시는 평화와 공존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북한에게 주변 국가들과 조화를 이루는 국가 운영을 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대사님 개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한국생활은 어떠신지요.

방글라데시 다카(Dhaka)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1981년 외교부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모든 지원자들이 한 번에 고위 공무원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그 중 최상위 10명만이 외교부에 선발돼 들어갑니다. 한국 대사로 발령받기 전에는 프랑스, 베트남, 부탄에서 대사로 근무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인들은 강인한 자아와 뛰어난 열정이 있으며 스마트하고 예의가 바릅니다. 그리고 남녀의 관계나 노인 공경 같은 보수적인 부분은 방글라데시와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가 매우 잘 정착된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한국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쓰고 있는 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인터뷰/김범수 편집위원 www.kimbumsoo.net
정리/박종하 인턴기자 saintjoepark@gmail.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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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ㅁ 2015-09-08 16:03:56
방글라데시하면 떠 오르는건 강간밖에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