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크리스마스 전쟁’
미국의 ‘크리스마스 전쟁’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5.01.03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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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네시 교계가 세운 친 크리스마스 광고

‘메리 크리스마스 법’은 지난해 텍사스에서 채택된 법이다. 이 법은 텍사스 내 공립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교사나 학생들이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고 인사해도 소송을 당하지 않고, 공립학교에 아기 예수가 마구간에서 태어나는 장면을 묘사한 조형물(Nativity)를 설치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이 나온 배경은 미국에서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벌어지는 이른바 ‘크리스마스 전쟁’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전쟁은 정교 분리를 근거로 미국 사회에서 특히, 기독교의 상징을 제거하려는 무신론자들과 기독교계의 충돌을 말한다.

무신론자들은 정교 분리를 근거로 공공건물에서 아기 예수 탄생 조형물 등을 제거해왔고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할리데이’ 사용을 주장하면서 대형 전광판에 반(反) 크리스마스 광고를 해왔다.

지난 1일 테네시 밀워키 인근의 한 도로에 세워진 대형 전광판에는 무신론자들이 세운 반(反) 크리스마스 광고가 실렸다. 한 여자 아이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인데 그 내용은 이렇다.

“산타 할아버지, 제가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것은 교회를 가지 않는 것이에요. 저는 크리스마스가 동화 속 이야기라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컸거든요.”

미국 무신론자 협회에서 광고비를 내고 실은 이 광고는 테네시, 미주리, 아칸사스 내 5개 도시에서 12월 24일까지 나갈 예정이다. 무신론자 협회는 매년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반(反) 크리스마스 광고를 해왔는데, 올해는 미국 남부 지역에서 무신론자들이 편견과 차별을 받고 있다며 남부 지역에 광고판을 세운다고 밝혔다.

반발은 컸다. 테네시 내 기독교계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기부한 돈으로 무신론자 협회가 세운 광고판 인근에 반대 내용의 광고를 내보냈다. “산타 할아버지, 제가 원하는 것은 크리스마스가 계속 성스럽고 놀림받지 않으며 기념하는 날이 되는 것이에요”라는 내용이다.

▲ 워싱턴DC 내 400여개 교회가 전면광고로 낸 크리스마스 광고

‘메리 크리스마스’냐, ‘해피 할리데이’냐?

‘크리스마스 전쟁’은 미국 기독교계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지금은 기독교계가 승리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분석이다.

한때 미국 사회에서는 ‘해피 할리데이’가 ‘메리 크리스마스’보다 일반 소매업체들이 내는 광고에 더 많이 사용됐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시켜 비기독교인 소비자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이제 메리 크리스마스를 쓰는 소매업체들이 훨씬 많아졌다. 그 배경에는 기독교 단체인 미국가족협회(AFA)의 활약이 컸다. 미국가족협회는 몇 년 전부터 100대 소매업체들의 웹사이트, 미디어 광고, 매장 사인 등을 살펴 어떤 업체가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는지 분석해 가장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는 업체, 그렇지 않은 업체들을 분류해 발표했다.

올해는 별 다섯 개를 받아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 업체들로 월마트, 하비 로비, 벨크, 로스, 시어스 등이 선정됐다. 크리스마스에 가장 비우호적인 업체들로는 대형서점인 반스앤 노블, 사무용품 업체인 오피스 디폿, 오피스 맥스, 스테이플, 그리고 애완동물 물건업체인 펫스마트가 선정됐다.

미국가족협회는 이 가운데 펫스마트에 대한 불매 운동을 전개, 100만명의 회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펫스마트 물건을 사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 불매운동은 효과가 있어 왔다. 지난해 가장 비우호적인 업체로 선정된 전자업체 라디오섹은 미국가족협회의 불매운동으로 매상이 급격히 줄어 올해 200개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 무신론자들이 세운 반 크리스마스 광고

그 결과 라디오섹은 지금은 입장을 바꿔 많은 프랜차이즈 업주들이 미국가족협회 회원이 돼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쓰고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을 ‘해피 할리데이’보다 더 좋아하는 미국인들도 많아졌다. 퓨 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인 57%는 두 표현 중 ‘메리 크리스마스’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미국 교계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주요 신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전면 광고를 내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워싱턴 DC 지역의 400개 교회들은 ‘사람이 하나님께 가려고 할 때 그것은 종교라고 불린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을 크리스마스라고 한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전면 광고를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신문에 게재할 예정이다.


워싱턴=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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