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지록위마’ 행보
박원순의 ‘지록위마’ 행보
  • 정용승
  • 승인 2015.01.09 1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터치]

지록위마(指鹿爲馬). 교수신문에서 발표한 2014년 사자성어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의 이 사자성어는 거짓된 행동으로 윗사람과 아랫사람들을 농락해 권세를 휘두르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새해가 밝은 이 시점에서 2014년의 사자성어를 언급하는 이유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작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했던 발표가 이 사자성어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어떤 발표를 했기에 ‘지록위마’와 어울린다는 말일까. 우선 작년 12월 29일 서울시가 발표한 것을 살펴보자. 서울시는 박 시장이 취임 시 시민에게 약속한 ‘채무 7조 원 감축’ 목표달성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2011년 10월 박 시장 취임 당시 서울시의 채무 잔액은 총 19조9873억 원이었는데 현재 채무 잔액은 12조9476억 원으로 7조397억 원을 감축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31일 공사채 2000억 원을 추가로 상환할 예정이어서 연말까지 감축액이 7조2400억 원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 지난 12월 29일 오전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열린 서울시 채무 7조원 감축 목표 달성 선포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

서울시 채무액 줄어

채무감축액은 기관 별로 △SH공사 6조8000억 원 △양대 지하철공사 4886억 원 △서울시 600여억 원 등이다. 이 중 시가 감축한 600억 원은 순세계잉여금을 활용한 지방채 조기상환, 지방채 발행 최소화 등으로 마련됐다.

이 중 감축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SH공사는 택지, 주택분양을 통해 20조8865억 원을 회수하고 임대주택 건설비 등으로 14조865억 원을 지출, 총 6조8000억 원의 빚을 감축했다.

그동안 마곡·은평·문정지구 등 대규모 도시개발 사업 선투자 비용 등으로 13조5000억 원 규모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SH공사 등 8개 공로 기관은 감사패를 받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박 시장이 이명박,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쌓아놓은 채무를 감축시켰다는 말로 박 시장의 공로를 추켜세웠다. 그러나 채무액의 감소는 ‘예정돼 있었던 수순’이었다라고 한다면 어떨까. 과연 이 감축액이 박 시장의 공로라고 할 수 있을까.

가장 많은 감축액이 발생한 SH공사의 채무는 ‘선투자 후회수’ 방식에 따라 원래부터 회수될 돈이었다. 박 시장이 아니었더라도 그 돈은 다시 들어올 돈이었다는 것이다.

SH공사의 채무액의 흐름을 잠시 보자. SH공사의 채무액은 지난 2002년 2000억 원에 불과했지만, 대규모 도시개발 사업에 투자를 감행하면서 부채가 크게 늘었다. 투자규모는 마곡지구에 4조1000억 원, 은평지구에 3조5000억 원 등으로 큰 액수였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11년 10월 SH공사의 채무규모는 13조5789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보통 이런 사업의 경우 초기 투자금액이 많고 5~7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투자액이 회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 지난 10여 년간 SH공사의 채무는 택지개발사업의 보상비와 기반시설 조성비 등으로 쓰였으며 택지 개발이 되면 자연스럽게 회수될 예정이었다.

서울시가 이번에 채무를 줄였다는 SH공사 항목의 6조8000억 원 역시 용지가 매각되면서 주택 분양 등으로 벌어들인 금액이다.


부채에서 채무로, 말 바꾼 박 시장

그래도 채무가 줄어들은 것은 사실이니 박 시장이 자신의 공약을 지킨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박 시장은 서울시장 후보였을 2011년 10월 당시 서울시의 ‘부채’를 줄이겠다고 했다. 25조5000억 원 규모의 서울시 부채를 임기 중 매년 10% 감축해 2014년 18조 원 규모까지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선 직후 그는 말을 바꿔 서울시의 ‘채무’를 줄이겠다고 했다. 왜 갑자기 그는 말을 바꿨을까. 애초에 박 시장도 자신이 서울시의 부채를 갚기에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그리고 박 시장이 말을 바꾼 것처럼 서울시의 채무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후보 때 말했던 부채는 오히려 늘어났다.

작년 12월 22일 서울시의회 최판술 의원이 서울시에서 제공받은 자료에 의하면 서울시 산하 5개 공기업의 부채가 작년 6월 말 기준 23조6558억 원으로 2013년 말보다 6222억 원 늘어났다.

세부 내용을 보면 SH공사가 18조7581억 원으로 전체 부채 79%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메트로 3조3836억 원, 서울도시철도 1조2674억 원, 서울농수산식품공사 1932억 원, 서울시설공단 535억 원 순이었다.

그렇다면 부채와 채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왜 앞에서는 SH공사의 채무가 줄었는데 부채는 늘어난 것일까. 부채는 채무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향후 자원이 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현 시점의 모든 의무를 포괄한다.

이 때문에 채무뿐 아니라 임대보증금, 퇴직급여충당금, 미지급금, 선수금 등이 포함된다. 반면 채무는 이자를 붙여 갚아야 하는 돈으로 쉽게 말해 ‘빚’이다. 금융기관 등에서 빌려 일정 기일에 상환해야 하는 차입금, 지방채증권 등으로 한정된다.

지난해 대비 SH공사의 채무가 줄었지만 부채가 늘어난 이유도 임대주택 공급에 따라 임대보증금이 6642억 원, 토지매각 등 선수금이 1조25억 원 늘었기 때문이다. 임대보증금 및 선수금은 채무가 아닌 부채에만 포함된다.

박 시장의 이러한 행보를 ‘지록위마’라는 말로 표현한다면 과장일까. 당선 전후로 달라진 공약과 자연스럽게 감축될 채무를 자신의 업적처럼 말하는 모습을 보면 과장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정용승 기자 jeongys@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