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없는 ‘복지’는 없다
‘성장’ 없는 ‘복지’는 없다
  • 이성은 기자
  • 승인 2015.01.3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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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우리나라의 2015년 예산안은 전년 대비 약 5.7% 증가한 375.4조 원이다. 총 예산안 중 복지예산으로 분류되는 보건·복지·노용 분야 예산은 8.5% 증가한 115.5조 원이 마련됐다. 따라서 올해 사상 처음으로 복지예산이 30%를 상회함으로써 ‘복지 중심 예산안’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예산의 주요 편성 사업은 ▲기초연금 지급대상자 선정기준액 상향 조정(선정기준액은 93만3000원(노인부부가구 148만8000원으로 지난해 대비 6.9% 상향) ▲누리과정을 위한 목적예비비 5064억 원 편성 ▲국가장학금 3조6000억 원 편성(작년 대비 1425억 원 증가)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적용 확대(항암제, 유전자 검사법, 유방재건술 등 고비용 검사, 시술, 약제 등 200여 항목에 대해 건강보험 혜택 증가) 등이다.

복지 분야의 대표 사업 일부만 살펴봐도 집권 3년차 박근혜 정부가 광범위한 분야의 보편적 복지사업 추진을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편성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해인 2012년과 2015년의 예산안을 비교해보면 복지예산의 집중도가 고조되는 것을 더 실감할 수 있다. 2012년 예산안은 325.4조 원, 그 중 복지 편성 예산은 92.6조 원이었다.

3년 전과 대비해 증액된 50조의 예산 중 복지예산은 무려 23조 원이다. 즉, 예산 증가액의 절반에 가까운 약 46%가 복지예산에 투입되는 것이다.


아직은 이른 보편적 복지정책

한국에 본격적인 복지지향 정책이 등장하게 된 발단은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이슈다. 당시 서울의 초.중학교 무상급식 혜택을 받는 학생의 비율은 전체 학생의 약 12~13%였다.

이와 관련해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은 소외계층 30%에 해당하는 학생들까지 선별적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의견을 주장했고 민주당은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하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여야의 대립각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무상급식 논쟁은 결국 서울시 주민투표로 이어졌다. 오세훈 시장은 후대에 빚을 물려주지 않는 지속가능한 복지를 해야 한다며 시장직까지 걸고 선별적 복지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호소했지만 야당의 ‘급식도 교육이다’, 곽노현 교육감의 ‘아이들 밥 먹는 문제다’라는 감성 논리에 그의 호소는 힘을 잃고 말았다.

결과는 최종투표율 25.7%. 최소 투표율인 33.3%을 달성하지 못해 결국 투표함은 개봉도 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투표 결과에 따라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장직에서 사퇴했고, 서울시장 자리는 안철수 신드롬을 바탕으로 단일화를 받아낸 정치 신인 박원순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서울시 최초의 주민투표는 단순히 ‘무상급식’ 이상의 결과들을 가져왔다. 미니 대선으로 불릴 만큼 관심이 집중되는 ‘서울시장’직의 정권교체, 안철수와 박원순이라는 야권 정치신인의 등장 무대가 됐다. 이처럼 ‘무상급식’은 엄청난 정치적 지각변동을 불러 일으켰고 포퓰리즘 정책이 여의도를 지배하는 신호탄이 됐다.

4년 전 서울을 뜨겁게 달궜던 무상급식 논쟁은 현재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을까? 2010년 당시 서울시교육청의 선별적으로 소요되던 무상급식예산은 510억 원이었다.

반면 2014년 서울시 소재 초·중학교의 모든 학생이 무상급식 혜택을 받고 있는 현재 무상급식 예산은 2975억 원으로 5.8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무상급식에 투입되는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학교 현장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예산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서울시교육청의 2014년 교육환경개선시설 예산은 1103억 원이다.

이는 2010년 당시 3678억 원의 예산을 차지한 것에 비해 30% 수준이다. 학교 일반시설 예산은 동일 기간 2765억 원에서 130억 원으로 급감해 더 심각한 상황이다.

   
▲ 무차별 공짜 '무상급식'은 따뜻해 보이지만 공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국가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

모든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자는 ‘따뜻한’ 정책이 반드시 필요한 학교 교육 환경과 시설 개선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무상급식은 공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이후 무상급식은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편성 예산은 더 늘어나고 있다. 전국적 수치로 살펴보면 2010년 당시 저소득층에게 투입된 무상급식 예산은 4845억 원이었다.

하지만 2014년 전국적으로 전체 학생의 69.1%가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게 되면서 2조6239억 원의 예산이 사용되어 5.4배가 증가했다.

앞으로 무상급식 대상을 점차적으로 확대해 고등학교까지 적용될 예정인 가운데 전문가들은 무상급식 예산으로 2020년에는 4조~4조5000억 원에 육박하는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선용 보편적 복지 공약과 실제

보편적 복지 논쟁의 시초인 무상급식은 막대한 예산을 소모하며 많은 진통을 낳고 있다. 하지만 2011년 무상급식 논란은 앞서 언급했듯이 정치권이 ‘무차별 공짜’ 공약의 힘을 실감하게 만든 엄청난 사건이었다.

결국 2012년 대선은 ‘보편적 복지’ 공약이 난무하는 싸움이 됐다. 대선 당시 박근혜, 문재인 후보 진영 모두 ▲0~5세 무상보육 ▲고교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실현 등을 공통 공약으로 내세웠을 정도다.

이외에도 새누리당은 ▲암·심장병·중풍·난치병 등 4대 중증질환 100% 국가부담을, 민주통합당은 ▲임신·출산 필수 의료비 전액 지원을 내세우는 등 실현 가능성은 뒷전으로 하고 일단 지르고 보는 식의 보편적 복지 공약 전쟁을 벌였다.

이처럼 보편적 복지 공약이 쏟아진 결과 현 정부는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 2014년 현재 국가채무는 약 527조 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GDP 대비 35% 수준이다.

정부는 OECD 국가 평균대비 재정 건전성을 낙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국가채무가 571조40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는 등 국가채무의 증가속도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결코 안정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무차별 복지정책 확대에 따라 매년 지출되는 복지예산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수 조달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지난해 예산 정국에서 핵심 쟁점으로 대두됐던 것이 바로 ‘법인세 인상론’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법인세율이 낮아 대기업들이 부과하는 세금이 적기 때문에, 최고 법인세율을 늘려서 세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법인세 인상 논리를 제시했다.

이와 더불어 각종 법인세 감면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된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법인세 인상은 시기상조이며 오히려 글로벌 경제의 흐름은 법인세 인하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론적으로 법인세 인상은 여야의 합의 끝에 현행을 유지하게 됐다. 하지만 법인세 인상에 대한 주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납부하는 법인세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법인세 인상의 맹점을 생각해야

가장 최근의 통계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법인세를 지불하는 삼성전자가 2013년 한 해 동안 부과한 법인세는 4조8100억 원이다.

국내 기업들이 당해 년도에 부과한 법인세 총액 46조 원의 11%를 삼성전자가 홀로 부담한 것이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국내 상위 1% 대기업이 부담하는 법인세 금액은 국가 전체 법인세의 86.1%에 육박하는 엄청난 비중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R&D 세액공제 등 각종 부가세 감면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된다는 일부 주장은 논리적으로 허점이 있음이 드러난다. 사실상 대기업들이 국가 대부분의 법인세를 납부하는 상황에서 각종 연구 및 투자액이 많은 만큼 이를 명목으로 하는 세액공제 비중이 높은 것은 당연한 구조이지 않을까.

또한 우리나라는 GDP 대비 법인세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상황이다.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은 GDP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4.0%다. 이는 노르웨이와 룩셈부르크에 이어 가장 높은 수치다.

주요 국가들은 살펴보면 미국은 2.6%, 프랑스는 2.5%, 독일은 1.8%에 불과해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대기업들이 법인세를 납부해 국가를 지탱하고 있는 비중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편이다. 반면에 글로벌 경기 위축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여건 속에서 법인세를 늘린다면 냉정한 시각으로 판단할 때 긍정적 측면보다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많다. 최근 들어 기업들의 저조한 실적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업 실적은 최근 5년간 지속적인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꾸준한 감소를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매출액증가율은 5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법인세를 인하하거나 현상 유지를 고수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글로벌 경제의 흐름 속에서 법인세 인상은 오히려 기업 활동 위축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 간의 기업 이전이 매우 자유로운 상황에서 고법인세 정책을 펼친다면 기업들은 국내가 아닌 해외로 사업 기반을 이전할 가능성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실제로 영국은 고법인세 정책 당시 다수의 기업들이 영국을 떠났다. 하지만 지속적인 법인세 인하 정책으로 방향을 변경하자 기업들은 다시 영국으로 되돌아왔다.


대책 없는 보편복지는 ‘망하는 복지’

복지국가를 실현할 수 있는 도구는 크게 3가지다. 빚, 세금, 그리고 성장이다. 이 중에서 건강한 복지를 운영할 수 있는 도구는 ‘성장’ 뿐이다.

즉 ‘성장’을 전제로 하지 않는 복지는 결국 국가의 위기를 불러온다. 이 사실은 보편적 복지를 시도했으나 뼈아픈 실패를 겪은 수많은 국가들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복지 선진국으로 불리던 독일, 프랑스 등은 기존의 보편적 복지제도를 수정하고 있다.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은 막대한 국가부채를 지게 됐다.

그리스는 EU에 가입하며 흘러들어온 자금을 성장의 동력이 아닌 복지 자금으로 소비한 결과 가장 심각한 국가 부도위기에 직면했고 결국 EU 탈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 그리스는 최근 EU탈퇴까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복지는 ‘성장’이 전제돼야 한다. 다시 말해 가장 좋은 복지의 길은 경제의 ‘성장’이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복지를 할 만큼의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업들의 경영은 매년 힘겨워지고 있다. 동시에 국가 채무는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정부는 담뱃값 인상 등 다양한 세원을 통해 세수를 확장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결국 ‘빚’은 쌓여가고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도 늘어나는데 성장조차 못하는 ‘망하는 복지’의 길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15일 한국은행은 2015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3.5%로 전망했다.

이는 기존 예상치인 3.9%에서 대폭으로 하향조정을 한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예상치보다 크게 낮아진 영향”이라고 조정 이유를 밝혔다.

이처럼 올해 한국경제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국제 유가의 하락이 한국 경제에 호재로 작용하겠지만 그 외의 변수들은 희망적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경제 위기의 타개가 시급한 시점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무상복지는 대한민국의 앞날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정책이다. 국민 정서를 이용한 ‘공짜’ 논리를 내세운 대책 없는 재정지출은 국가를 어렵게 할 뿐이다. 안타깝지만 현재 한국이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은 ‘없다’.


이성은 기자 nomadworker@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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