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흥행이 반가운 이유
<국제시장> 흥행이 반가운 이유
  • 미래한국
  • 승인 2015.02.04 15: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 진단]
남정욱 편집위원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을 앞두고 있을 무렵이다. 제작사인 명필름은 고민이 많았다. 첫 번째는 연출을 맡은 박찬욱 감독 때문이었다.

명필름에서 실토한 대로 그는 실패한 감독이었다. 데뷔작인 <달은… 해가 꾸는 꿈>은 지루했고 몇 년 만에 내놓은 야심작인 <삼인조>는 고통스러웠다. 이후에도 그의 행보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 영화계 주요 자금줄이었던 삼성 영상사업단에서는 박찬욱 감독을 이렇게 기억한다.

‘각종 희한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내용이 담긴 이상한 시나리오를 들고 다니던 사람.’

그러니까 박찬욱은 관객과의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열혈 영화광으로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구석에 처박힌 B급 무비의 걸작들을 섭렵한 끝에 자신을 스스로 전위(avant garde)로 여기면서 자멸해가는 과정을 밟고 있었던 셈이다.

명필름은 그를 과감하게 실패한 감독으로 대중들에게 소개했으며 이는 개봉에 임박해 역풍으로 불어올 감독의 자질 시비에 대한 사전 방어막이었다.

두 번째 고민이 진짜 고민이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총을 겨누고 있는 남북한의 병사들이 특정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예외적인 상황이라지만 서로 친밀하게 지낸다는 설정이 과연 관객의 동의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사실 답이 없었다. 영화판 용어로 ‘까 봐야’ 아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좋았다. 흥행은 대성공이었고 관객들은 우려했던 상황에 대해 ‘개연성 있음’ 혹은 ‘정서적으로 동의함’이라는 판정을 내려줬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 공동경비구역 JSA

하나의 영화 장르가 마케팅 차원에서 검증이 됐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공동경비구역 JSA>가 있었기에 <웰컴 투 동막골>이 나올 수 있었고 <의형제>와 <고지전>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키워드는 ‘민족’이었다. 한국의 영화 관객들은 민족을 심리적으로 가장 윗선에 놓고 그 외의 문제들은 부차적인 것들로 여겨 눈감아 줬던 것이다.

<국제시장> 역시 그런 관점에서 보고 이해해야 한다. 말 같지도 않은 시비를 걸어 온 인간들이 있기는 했으나 <국제시장>은 누가 봐도 이념적으로 경도된 영화가 아니다. 그저 한국 현대사의 주요 부분을 ‘아버지’를 통해 그렸을 뿐인, 인상 비평 수준의 영화다.

<국제시장>의 천 만 관객 돌파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이런 정도의 ‘시대 그림’을 돈 내고 봐줄 수 있는 관객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기 때문이다(여기서 관객은 중장년이 아닌 20~30대의 젊은 층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영화가 또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 웰컴투동막골

관객과의 접점 찾기에 성공한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 급물살을 탄 이후 이런 저런 논의들이 있었다. 앞으로 나올, 흔히 말하는 우파 영화들의 낮은 질이 기세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뭐 맞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작정 동의하기 어렵다.

영화는 딱 두 종류다.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 이후에 개봉할 영화들이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면 그건 영화를 못 만들어서 그렇지 우파 영화이기 때문이 아니다. 관객은 재미를 찾아 극장에 들어오지 이념을 탐구하려고 극장을 찾는 게 아니다.

흔히 문화는 좌파들이 장악했으며 우파는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들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100% 맞는 말도 아니다. 문화를 좌파들이 쥐락펴락 하는 건 우리나라만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지 않은가. 물론 좀 심할 뿐이기는 하지만 그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니다.

모든 자본은 수익을 향해 움직인다. 거칠게 말해서 돈이 된다면 뭐든 만든다. 영화 자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영화 자본에도 좌우 깜빡이 같은 건 없다.

한국 현대사는 콘텐츠의 보고다. 그동안은 인권 탄압, 고문, 양민 학살 같은 어두운 네거티브에 시선이 집중됐지만 이제는 아닐 수 있다.

   
▲ 국제시장

그렇다고 바로 ‘선견지명 이승만’, ‘위대한 독재자 박정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조금씩 병풍으로 등장할 것이다.

영화 자본은 그 병풍의 존재에 따라 관객수 수십, 수백만이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어느 날인가는 그 병풍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네거티브 전략으로 승부를 걸 수도 있겠다. 물론 아주 가까운 미래는 아니다.

영화 기획자들은 콘텐츠의 리스트를 뒤질 것이다. 가평 전투를 찾아낼 것이고 지평리 전투와 다부동 전투의 일지를 꼼꼼히 훑어볼 것이다. 베트남 전쟁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하얀 전쟁>과 <님은 먼 곳에>는 일종의 클리셰 영화였다.

한국군은 나쁘고 미군은 더 나쁘고. 그런 웃기는 전쟁이 세상에 어디 있나. 베트남 전쟁 당시 적이 던진 수류탄에 몸을 던져 수많은 전우를 살리고 산화한 고 이인호 소령의 영웅담 같은 걸 내세우진 않을 것이다. 그건 1980년대에 <람보>시리즈로 끝났다.

<국제시장>의 덕수가 영웅이 아니었듯 우리 주변의 사소한 인물을 찾아내 다듬고 가공할 것이다. 어느 시대나, 어느 현장이나 가슴 아픈 사연은 다 있다.

영화 자본은 흥행 공식에 따라 이동한다. <명량>과 <국제시장>으로 간을 봤고 마케팅 차원에서 검증을 마쳤으니 조심스럽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관객과의 접점을 찾을 것이다. 그것이 <국제시장>이 우리에게 준 희망이자 흥행이 반가운 이유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