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도입 노동이사제 독일 모델과 딴판이다
서울시 도입 노동이사제 독일 모델과 딴판이다
  • 정용승
  • 승인 2015.02.0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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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점]

몸에 맞지 않은 옷은 불편하다. 몸보다 큰 옷은 거치적거리고 작은 옷은 몸을 움직이기 힘들다. 비단 옷뿐만이 아니다. 제도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맞지 않은 제도는 삐걱대기 마련이다.

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를 한국에 도입했을 때 계획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 그렇다. 좌파세력이 주장하는 북유럽식 복지제도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한국의 문화, 역사, 인구수 등을 등외시하고 북유럽식 복지제도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북유럽처럼 세금을 걷자는 대통령의 말에 국민들은 반대를 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무조건적인 선진국 제도 도입은 오히려 갈등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이러한 와중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 도입을 앞두고 있어 논란이다. 노동이사제도는 노동조합에서 추천하는 노동이사를 이사회에 파견해 경영에 참가하는 제도다.

 

경영협의회는 경영 관련 사안을 노조와 협의하는 협의체다. 서울시는 지난 15일 산하 공기업에 노동이사제, 노사경영협의회를 도입하겠다는 혁신 방안을 행정자치부에 제출했다.

이 두 제도는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가 통합되는 2016년 도입될 예정이다. 이때 시범적으로 시행한 후 산하기관으로 제도를 확대해나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는 독일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서울시는 독일 노사관계제도 및 사례를 벤치마킹해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고 노동자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를 도입한다는 취지다.

서울시는 참여형 노사관계를 정립하는 데 있어서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가 노동시간 단축 및 고용보장에 합의하고 지방정부 주도의 프로그램 지원 등을 통해 10여 년간 단 한 차례의 파업 없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독일 폭스바겐사와 볼프스부르크시의 사례를 적극 참고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서울시의 의도대로 독일의 발자취를 서울시 산하 공기업이 따라갈 수 있을까. 이미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의 이동응 전무는 서울시의 노동이사제, 경영협의회에 대해 “서울시는 지방공기업의 경영권을 포기한 것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서울시와 경총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몇 가지 쟁점을 통해 독일의 제도가 한국에 적용될 수 있을지 살펴보자.


두 제도 기원은 서울시 의도와 달라

독일식 노동이사제, 경영협의회 제도와 서울시가 도입하는 제도는 같을까. 우선 독일의 두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 도입 배경을 톺아볼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영협의회법은 1920년 제정된 제도다. 독일의 이 제도는 산업별 노사관계 체제와 더불어 오늘날 독일 노사관계의 양대 축을 구성하고 있다.

이 제도는 서울시가 주장하는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보장이라는 취지라기보다 독일기업을 공산주의혁명으로부터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독일은 유럽의 여느 국가와는 다르게 기업 내에 노동조합이 없었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 혁명의 세포 조직은 기업에 침투하기 쉬웠고, 그것은 기업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업 내에 노동조합을 단단하게 만들어 공산주의 세포조직의 침투를 방어해야만 했다. 즉 독일 경영협의회는 기업 내 공산주의 세포조직에 대한 방어와 기업 내 민주적 노사협력체제 구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독일의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는 그 기원이 기업 내에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노사협력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그 덕분에 오늘날 독일에서 노동이사제와 공동결정제는 기업의 경영권에 근본적인 침해를 끼치지 않고 있다. 애초에 서울시가 주장하는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와는 기원부터가 다른 것이다.

한국에서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는 독일처럼 작동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관련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신뢰도가 낮기 때문에 효율적인 경영 참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내하도급 근로자 대표를 원청기업의 노사협의회 참여와 의견 개진 제도 도입조차 제대로 조율되고 있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노사관계 환경에서 경영협의회 방식의 경영참여제도가 도입될 경우 얼마나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경영 참여가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노동이사제도 마찬가지로 근로자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가 생산적 경영감시를 위한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이사역을 하기보다 이익 대변 쪽으로 편중될 가능성이 내재한다.


서울시민의 최종 동의 있어야

서울시는 독일의 폭스바겐사와 볼프스부르크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례는 폭스바겐사의 ‘auto5000(5000인의 취업자)*5000(월수입 5000마르크)’ 프로젝트로서 노사간 두터운 신뢰가 없으면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다.

월수입 5000마르크는 기존 폭스바겐의 단체교섭 기준보다 20% 낮은 수치로서 폭스바겐의 경영협의회가 상당부분 양보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노조가 양보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오히려 단체협약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기업 경영에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근로자의 기업경영 참여, 타당한가? 그렇지 않다. 서울시가 추진하려고 하는 두 제도는 법률로 보장돼야 한다. 독일의 경우 이 두 제도는 독일 법원의 인정을 받은 후 시행됐다. 그러나 서울시는 서울시의 조례 혹은 공사의 정관을 고침으로써 시행이 가능하다.

즉 서울시민이 주인인 서울시 산하 공기업의 정관을 서울시장의 독단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민의 의견을 배제하고 말이다. 이는 서울시민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지적 외에도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의 결합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서울시가 주장하는 효율경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오히려 경쟁구도가 사라지며 방만 경영과 측근인사 비리의 온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와 더불어 양 노조의 결합은 거대노조로 재탄생 돼 정치인들을 압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태가 발생할 시 노조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정치인들은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두 공기업의 부채를 합한 총액이 4조6000억 원에 이르고 있음에도 말이다.

최 부원장은 서울시가 두 공기업을 통합하려면 반드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서울시가 주장하는 두 공기업의 통합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인원은 그대로 두고 기업만 합치면 잉여인력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부채는 더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결과로 인해 받는 피해는 서울시민의 몫으로 돌아간다.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는 과연 어떤 결과를 보여줄까?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대로 방만 경영의 원인이 될까? 혹은 서울시의 주장대로 새로운 기업모델을 보여줄까?

서울시는 이런 우려에 대해 “독일과 같은 제도의 도입 취지를 가져오자는 선언이며 앞으로 이뤄질 제도의 구체적인 설계는 서울시 상황, 한국 상황에 맞춰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노조의 경영 참여는 기초적인 수준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은 차차 정해지겠지만 서울시 산하 지방공기업의 기존 이사회 10~15명 중 1~2명 수준으로 넣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경영권을 포기한다는 의견은 과도한 얘기라는 말로 서울시의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아직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 서울시 공기업의 주인인 서울시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감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용승 기자 jeongys@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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