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방송’ KBS 그들에게 국민은 누구인가
‘국민의 방송’ KBS 그들에게 국민은 누구인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5.03.0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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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광복 70주년 다큐 ‘뿌리깊은 미래’ 논란

KBS가 논란이 됐던 광복70주년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를 2부작만 방영하고 나머지 방송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과 6·25를 설명하면서 곳곳에 대한민국 건국사에 배치되는 주장을 심었다.

예를 들어 흥남부두 철수는 북한 공산주의가 싫어서가 아니라 미국이 원자탄을 원산에 투하하려 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든가 대한민국을 ‘남녘’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6·25가 북한의 남침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 보수성향의 시청자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특히 6·25 와중에 북한 인민군이 자행한 학살만행은 일체 언급하지 않고 국군에 의한 보도연맹에 대한 총살집행과 같은 사실만을 ‘억울한 죽음’으로 표현해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당연히 제작 PD로서는 ‘뭐가 문제인가’라는 반론을 펼 수 있다. 제작은 제작자의 양심과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기에 PD가 저널리스트로 자신의 직업적 양심을 지켰다면 그것도 언론의 자유이니 할 말이 없는 것도 맞다.

하지만 KBS가 국민들의 준조세인 수신료로 운영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KBS가 표방하는 ‘국민의 방송’에서 KBS가 생각하는 국민은 누구인지 묻게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DJ정부 ‘현대사 기획반’이 기반

KBS는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현대사 기획반’이라는 연구·제작 특집팀을 구성해 수년간 근현대사에 관한 방송제작의 이념적 스탠더드를 설정해 왔다.

이 팀에는 KBS 내 PD뿐만 아니라 외부의 작가와 교수 등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했다. 성향은 당연히 진보좌파적이었고 당시 수정주의사관에 따라 대한민국 건국과 이후의 역사적 전개는 정통성 없는 남한 정권의 독재사로 확립됐다.

이러한 이념적 틀에서 그동안 수많은 현대사 다큐멘터리들이 제작 방송됐다. 그러한 내부적 관성은 2000년 이후 소련의 북한의 남침을 지시하는 문서들이 공개됐고, 북한이 국제협정을 깨고 핵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지난 2012년 1월 KBS가 북한 인민군가를 비롯 수많은 북한 군가를 작곡했던 재중교포 정률성을 미화하는 다큐멘터리를 내보내 보수진영으로부터 격렬한 비난이 일었을 때 당시 제작 책임자였던 PD는 항의하는 진영에 ‘기득권 친미주의자들’이라는 반론을 펼쳐 국론을 아예 절단냈다.

사회 갈등을 통합하고 여론을 수렴한다는 공영방송의 기능이 정치와 이념노선에 의해 국론분열을 가져왔던 사건이었다. 지난해에는 편파 왜곡으로 논란이 됐던 KBS의 문창극 보도로 도대체 무엇이 공영방송의 책임과 역할이냐는 문제를 불러 일으키며 좌-우 진영간에 한치의 양보 없는 공방전이 일어났다. 공영방송 KBS는 그렇게 대한민국 정치, 그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방송 KBS에게 국민은 누구인가. 이 문제에 올바르게 답하려면 우리는 공영방송의 개념을 제대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법에는 ‘공영방송’에 대한 규정이 없다. 공영방송을 언급하는 법조문은 선거법에서 유일하다.

선거방송을 위해 공영방송의 개념을 한차례 언급할 뿐이다. 학자들은 공영방송에 대해 재원구조가 공적이면 공영방송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공영방송이 상업방송과 같은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이념적으로 반대한민국적 가치를 담은 방송을 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제 공영방송은 방송의 내용이 공공성에 부합하는 방송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 공공성이란 제작에 있어 제작 PD의 개인적 주관에 대한 끊임없는 견제와 모니터링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KBS 내부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제작 PD들과 기자들은 공영방송을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방송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 헌법의 정신에 비춰보면 KBS는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국민 권력은 배제하겠다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민주주의원리에 맞지 않는다.

KBS가 국민으로부터 준조세에 해당하는 강제적 수신료를 받아가는 방송이라면 KBS는 이념이 다른 모든 국민들의 최소공배수 내지는 최대공약수적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좌우 이념이 다르더라도 인정할 수 있는 가치 내에 KBS의 방송이념이 존치돼야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KBS의 제작과 보도 현업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방송이 세상을 바꾸는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는 북한 인민군가를 만든 종북주의자 정률성에 대해 미화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하고 이를 비판하는 국민에게 ‘기득권 친미주의자’라는 제작 PD의 발언은 이해될 수 없다.

KBS가 그런 PD를 징계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대신 이승만 대통령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제작 PD는 KBS 내에서 좌천돼 제작 일선에서 추방됐다.


이념 중립적 편성이 해법

KBS가 국민의 방송이라면 누가 국민인지 이제는 KBS 스스로 대답해야 하는 문제는 아닌가. 속칭 ‘깨시민’이라고 불리는 ‘깨어 있는 시민’이 국민이고 그렇지 않은 국민들은 KBS가 말하는 국민은 아닌가.

그렇다면 KBS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만 외칠 것이 아니라 ‘깨어 있지 않은 시민’들이 내는 수신료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국민의 방송이 되는 길은 이념적 중립을 지키든지, 아니면 서로 다른 이념들을 반영하는 방송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이념적 중립이라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어떤 것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려면 이념의 인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KBS는 차라리 제작이 아니라 편성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하는 데 적절할 수도 있다. 현대사를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 좌-우의 역사해석을 충실히 반영하는 다큐멘터리를 50:50으로 편성하라는 이야기다. 

혹자는 KBS가 어떻게 한 입을 가지고 두 개의 반대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사실 KBS가 어떤 한쪽의 이념적 입장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공영방송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KBS는 사실과 진실에 충분히 입각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 된다. 문제는 KBS가 근현대사의 사실과 진실이 모두 진보좌파진영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향성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수신료도 그러한 사람들에게 받아 가면 된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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