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빨대’ 로 전락한 포스코
‘권력의 빨대’ 로 전락한 포스코
  • 미래한국
  • 승인 2015.04.0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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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포스코의 성공과 변질, 그리고 정치

우리는 지금 박정희와 박태준에 의해 탄생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있는 중

▲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한국 경제발전의 상징이었던 포스코가 이제 문제아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당장의 이슈는 검찰의 비자금 수사다.

대우인터내셔널 등 인수 합병(M&A)을 통해 새로운 계열사를 늘리는 과정이 배임죄가 되는지의 여부도 수사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포스코 문제는 2013년 말부터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부실 덩어리 애물단지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포스코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3대 철강업체 중 하나였고, 생산성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던 한국에 이렇게 강력하고 건실한 제철기업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박태준의 비범함과 박정희 식 정치가 환상적으로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철강산업을 경제발전의 기본으로 결정하고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인물 박태준에게 철강산업의 건설을 맡겼다.

5·16 거사에 동참하겠다는 박태준을 말리며 사태가 잘못될 경우 자신의 남은 가족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했을 정도로 박정희는 박태준을 믿었다. 그렇기에 박정희는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되는 철강산업 건설을 가장 믿는 박태준에게 맡겼던 것이다. 

박정희는 박태준을 믿는 만큼 포철의 건설과 발전에 관한 거의 모든 전권을 박태준에게 줬다. 그리고 정치가 박태준의 포철을 ‘건드리지’ 못하게 막아줬다. 

▲ 1970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소 착공식에서 버튼을 누르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오른쪽이 김학렬 부총리, 왼쪽이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이다. 박정희는 포철의 전권을 박태준에게 줘 강력하고 건실한 제철기업이 탄생하도록 했다.

포철이 건설되던 당시 한국에서의 기업 활동은 정치나 행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큰 기업들은 정당 차원에서 제기되는 정치자금 제공 요구를 들어줘야 했고, 정치인 개인 차원에서 들어오는 청탁도 들어주지 않으면 비즈니스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사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것은 기업의 규모와 관계가 없었다. 하다못해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구청이나 소방서, 보건소 직원들의 금품 요구를 들어줘야만 했던 것이 한국의 미개한 정치 현실이었다. 

박정희의 보호를 받는 포철은 정치자금을 낼 필요가 없었고, 유력 인사들의 청탁도 뿌리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포철은 외국의 철강기업들뿐만 아니라 국내의 다른 민간 기업들보다 더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다. 

민간 기업들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정치자금 요구나 청탁을 포철은 무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포철은 공기업이기 때문에 규제를 풀고 차관 승인을 받는 것이 더 쉬웠다. 

박정희가 그렇게 보호해줬더라도 박태준이 사익(私益)을 위해 그 특권을 남용했다면 포철의 경쟁력은 높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 박태준은 청렴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익이 아니라 포철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거래선을 찾았고 공법을 개발했다. 


정치바람에 노출되다 

그 결과 포항제철의 철강제품은 품질을 높일 수 있었고, 원가도 낮아 판매가격도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포항제철 제품의 국내가격은 국제가격보다 30~40% 저렴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포항제철의 생산성이 그만큼 높았음을 뜻한다. 

철강 가격이 이렇게 낮았기 때문에 다른 산업들도 경쟁력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자동차, 조선, 건설업 등이 포항제철의 뛰어난 가격 경쟁력과 우수한 품질의 음덕을 단단히 입었다. 

소위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박정희의 포항제철 보호는 불통 또는 독재 그 자체였고, 특혜로 치면 그보다 더 큰 특혜가 없었다. 하지만 그 고집스러운 불통과 특혜가 포항제철의 경쟁력을 만들어냈다. 

박태준이 포항제철을 선진적인 기업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가 정치 외압을 철저히 막아줬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죽음은 자연스럽게 포항제철을 정치바람에 노출시켰다. 이 때 박태준은 포항제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기를 택한다. 

박정희의 역할을 자신이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포항제철의 수호천사 역할도 군대 후배인 전두환과 노태우 대통령 시절까지만 가능했다. 

1992년 대선(大選) 과정에서 ‘민주화’의 리더 중 하나였던 김영삼 당시 대선 후보와 갈등이 발생하게 되고, 박태준은 김영삼의 협조 요구를 거부한다. 

그 결과는 정치 보복이었다.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박태준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었고, 결국 박태준은 병든 육신을 이끌고 일본으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서 포항제철은 더 이상 정치로부터의 보호막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포항제철 회장은 정권 실세가 결정하게 되었고, 당연히 그 아래의 중요 보직들도 정치적으로 결정되기 시작했다.

하청업체들의 선정과 하청물량의 배정에도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포항제철이 정권의 전리품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 주인이 없는 기업 포스코. 정권 실세들이 그 주인 역할을 하면서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하던 포스코는 '권력의 빨대'로 전락했다.

김영삼 정권 때는 김만제 전(前)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포항제철 회장이 되지만,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회장 직을 물러난다. 김대중 정권 때는 유상부가 회장에 올랐으나 소위 최규선 게이트라는 정치적 사건으로 물러난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이구택이 회장이 되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1년 후 또 다른 스캔들로 물러난다.

그 뒤를 정준양 회장이 이었고,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임기도 아닌데 물러난다. 지금 그는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포항제철 회장은 정권과 진퇴를 같이 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공기업이라면 그러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된 기업이, 그것도 정부가 주식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것이 매우 독특하고 이상한 일이다. 

이런 사정은 민영화의 결과 지배주주가 분명해진 기업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두산중공업의 경우 포스코나 KT에서와 같은 문제는 전혀 없다. 

이들 기업들이 택한 국민주 방식이란 온 국민이 주주라는 뜻이다. 결국 모두가 주인이라는 말은 주인이 없다는 말이고, 주인이 없는 공백을 정권 실세들이 채우고 들어오는 것이다. 


영업이익률 지속적으로 하락 

기업의 궁극적 존재 이유는 이윤이다. CEO가 정치적으로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포스코의 이윤율은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2005년은 영업이익률이 27%에 달했다. 좋은 가격을 받을 만큼 높은 품질을 유지했고 원가는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2005년부터 이익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해서 2013년에는 7% 수준까지 낮아진다. 

그 여파로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기관들도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강등했다. 물론 영업이익이 급락한 배경에는 중국 철강기업들의 약진과 국내 경쟁자인 현대제철의 등장, 그리고 세계적 불경기라는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 세계 3대 철강회사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됐던 포스코가 최근 권력자들의 이권 개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현대제철이나 일본의 신일본제철 같은 기업들의 실적이 이 정도로 나쁘지 않다는 것은 포스코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그것이 정치의 외압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인이 나타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코 문제의 해법으로 정치가 손을 떼는 데서 찾는다. 포스코의 CEO를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의 독립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포스코나 KT 같은 기업들이 겪는 문제는 주인이 없는 데서 비롯된다. 두산중공업처럼 대주주가 분명하게 민영화된 기업의 경우 CEO 인사에 정부가 개입하는 일은 없다. 

포스코 인사에 정권이 개입할 수 있는 것은 그 개입을 막아설 만한 사람이 누구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가 개입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치가 보여주고 있는 혼란스러운 모습이 포스코 내부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새로운 부(富)를 창조하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지만, 이미 만들어진 부를 소비하기 위한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될지는 유권자들의 윤리와 의식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유권자로부터 표를 얻기 위한 정치인들 사이의 경쟁은 결국 한국 정치를 생산보다는 소비를 위한 장치로 만들어 왔다. 

새로운 부를 창출하자는 요구는 소위 개발독재의 재판으로 여겨지곤 한다. 나는 이와 똑 같은 일이 포스코 내에서도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인 없는 기업의 운명 

포스코 내에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 경쟁은 주주의 표를 얻기 위한 경쟁이나 정권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노동자들과 시민단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경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1997년 부도 이전 기아자동차가 김선홍 회장과 노조의 공동 경영체제로 운영되었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기아자동차는 생산성 향상보다는 노동자의 복지를 최우선하는 기업이었다. 원가 절감, 품질 개선 등 소비자의 요구보다는 임금인상, 노동 강도 감축 등이 우선되었다. 

그러는 동안 이전에 쌓아 놓았던 부는 잠식되어 갔고, 더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부도가 난 것이다.

나는 포스코를 비롯한 다른 주인 없는 기업들도 똑 같은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나마도 주인이 정부이지만, 그마저도 사라지면 그 기업들은 노동자의 천국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쌓아 놓은 부를 까먹다가 결국 시장을 잃고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영국에서 주인 없는 기업들이 전문경영인에 의해서 잘 경영될 수 있는 것은 시장의 규율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적대적 M&A 가능성이 기업이 타락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럴 수 없다. 

소버린 사태나 KT&G 사태에서 이미 겪었듯이 적대적 M&A나 외국인이 지배주주가 되기 위한 시도는 국가적 이슈가 되고 결국은 무산되어 버린다. 누군가 포스코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당연히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지금처럼 정권이 포스코의 주인 행세를 하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노조와 시민단체가 주인 행세를 하도록 할 것인가의 여부다. 

그러나 어느 쪽도 비극적이다. 뚜렷한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한 포스코의 앞날은 어두워만 보인다. 우리는 지금 박정희와 박태준에 의해 탄생한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가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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