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선교에 평생 바친 1세대 북한선교사, 이삭 목사의 순종 일대기
북한선교에 평생 바친 1세대 북한선교사, 이삭 목사의 순종 일대기
  • 이성은 기자
  • 승인 2015.04.03 11: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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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예, 하나님> 이삭 저, 문광서원

현재 북한은 한국 교회 선교사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선교지가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통일대박론을 언급하며 통일 의지를 내비쳤고, 정부 내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하여 본격적인 통일준비에 착수했다. 

교계에서도 북한선교 관련 집회를 대내외적으로 조직하는 등 북한은 반드시 선교가 필요한 사역지라는 당위성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30년 전 북한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선교지역이었다. 이삭 목사는 북한선교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 일평생을 헌신한 1세대 북한 선교사다. 

이삭 목사가 모퉁이돌선교회를 설립한 뒤 본격적인 북한선교를 시작하면서 교계와 정치권은 맹렬한 반발을 쏟아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북한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느냐”고 반대했고, “갸(김일성)가 있는 동안은 안 돼!”라고 소리쳤다. 그가 북한선교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 우리나라는 반공 의식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원수나 다름없는 북한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시대적 정서와 배치되는 것이었다. 

진보세력은 손가락질을 했고 보수세력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북한선교는 시작부터 가시밭길이었다. 

하지만 그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북한선교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어머니의 신앙 교육 때문이었다. 목사의 사모이자 전도사였던 어머니는 그에게 날마다 성경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삭 목사가 7세 되던 해 그의 어머니는 “너 목사 돼라, 너 목사 되면 갈 나라가 있어. 몽골, 소련, 중국 그리고…북한에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 거기서 죽어, 거기서 묻혀”라는 평생의 소명이 된 말씀을 남겼다. 

고작 7세의 어린아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힘든 말이었지만, 그는 어머니의 말씀에 “예, 어머니”로 답했다. 

그는 17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북한선교를 위해 미국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 40세가 되던 해, 본격적으로 북한선교에 뛰어들었다. 

북한이라는 복음의 불모지에서 만난 북한의 성도들은 그에게 어둠의 땅에도 하나님은 살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증언했고, 이는 그가 북한선교를 하며 숱한 고난과 암살의 위협을 겪으면서도 북한선교에 온 몸을 던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올해 70세를 맞는 이삭 목사가 그의 사역 인생을 회상하며 던지는 한마디는 결국 ‘하나님이 하셨다’는 고백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사역 이야기와 더불어 아내와의 만남과 결혼, 도미(渡美) 후 이민 생활, 자녀 교육 등 공개하지 않았던 사역의 뒷이야기와 가정사를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이삭 목사가 그의 만년에 회고하는 담담한 술회를 통해 국제 사회가 집중하는 북한의 인권 문제와 통일을 염두에 두며 접근해야 할 북한선교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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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2017-08-09 10:36:40
한마디로 북한선교는 정문선교든 후문선교든 그누구를 막론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해야하는 선교이기에 더욱 어려울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