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한 거룩한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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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5.04.0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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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 읽기] 에우리피데스 著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는 아가멤논의 대함대가 트로이 전쟁을 위해 출항하려다 풍랑으로 발이 묶이자, 아울리스 항에서 안전한 출항을 위해 아가멤논이 자신의 큰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인물 간의 갈등 상황이 여럿 제기된다. 우선 예언자의 말에 따라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켜야 한다고 압박하는 메넬라오스와 딸을 희생시키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아가멤논의 갈등이 전개된다.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여러 나라의 군대를 모아 출진해야 하는 책무 또한 아가멤논을 짓누른다. 

결국 아가멤논은 메넬라오스의 성화에 못 이겨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키려 한다는 거짓 핑계를 대어 딸을 아울리스로 데려 오게 한다.

이후에 아가멤논은 괴로워하다 마음을 돌려 딸을 보내지 말라는 편지를 사자에게 급히 전하게 한다. 

하지만 중간에 메넬라오스에게 편지를 제지당하고, 이피게네이아와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도착한다. 

모든 계략이 들통 나자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을 비난하며 이피게네이아는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결혼 상대자로 거론되었던 아킬레우스 역시 이피게네이아를 구하려 하지만, 희생 제물을 바쳐 전쟁 출발을 바라는 병사들의 압박으로 희생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딸을 희생시키려는 무정한 아버지 아가멤논에 대한 클뤼타임네스트라의 분노와 원한은 훗날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 승리하고 미케네 왕궁에 개선했을 때 그를 살해하는 동기로 작용한다. 

딸을 희생해서라도 전쟁을 수행하려는 아가멤논의 공적(公的) 책무감과 친딸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아가멤논이 겪어야 하는 인간적 고통이 만들어내는 비극적 긴장이 아가멤논의 격정적 독백에 잘 나타난다. 

제물을 바치는 것을 거부할 경우 군대의 반란은 물론 자신의 나라 아르고스가 곤경에 처할까 괴로워한다.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자신의 딸을 제물로 내놓은 아가멤논을 비난한다. 부모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피게네이아의 심정에 변화가 생긴다. 

“고상한 죽음보다 비참한 삶이 더 나아요”라며 살려달라던 그녀가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녀는 헬라스 전부가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수많은 전사들이 헬라스를 위해 죽으려 하는 마당에, 자신의 한 목숨이 이들의 장도(壯途)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죽음으로써 “헬라스의 해방자”라는 명성을 얻는 길을 택한다.
 
이피게네이아는 제단 앞으로 나아가 목을 내민다. 예언자 칼카스가 예리한 칼로 목을 내리치는 순간 신비한 일이 벌어진다. 

제단에는 조국을 위해 인신(人身) 공양하려던 이피게네이아가 아닌 암사슴 한 마리가 피에 흠뻑 젖어 버둥대고 있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이 인간의 고귀한 피로 자신의 제단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이피게네이아를 데려가고 대신 암사슴을 희생시킨 것이다. 

이 작품은 신의 계시에 따른 인신 공양의 풍습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아가멤논가의 비극적 고통이 운명처럼 주어진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거룩한 정신이 신을 감동시켜 구제받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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