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사건, 시시비비보다 아픔의 존중이 우선”
“4·3 사건, 시시비비보다 아픔의 존중이 우선”
  • 김범수 편집위원
  • 승인 2015.04.06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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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터뷰]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제주도민들의 상당수는 현재도 4·3이 큰 상처이자 아픔으로 남아 있어
그런 아픔에 대해 먼저 존중하고 함께 아파해 주는 예의 표시가 필요”

“인터뷰를 사양하겠습니다. 올해 들어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않고 있습니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첫 발언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인터뷰가 무산될 위기.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한마디가 이번 인터뷰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국가가 제정한 ‘4·3 희생자 추념일’을 1주일여 앞둔 시점에서 제주도지사가 이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할 수 없다는 사실. 이것이 지금 첨예한 이슈가 되고 있는 제주 4·3 사건의 현재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 "4·3 당시 북에서 지휘를 하고 지령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역사적 합의가 있지만 희생자 전체를 폭도로 몰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원희룡 지사. 그는 북한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주장했고, 북한인권법 제정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밝혔다.

- 정부가 주관하는 4·3 희생자 추념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념일 행사를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4·3 추념일 문제는 아직 대통령의 행사 참석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고, 민감하기 때문에 제가 일체 언급을 않고 있어요. 담화를 준비해서 4월 1일에 공식적으로 내보낼 예정입니다. 

- 담화가 준비됐다면 공식 입장도 정리가 되셨을 텐데요. 행사를 주관하는 도지사가 문제를 회피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현재 (제주 4·3 평화공원에 안치된) 위패와 관련하여 민감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말하는 겁니다. 

- 그럼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질문하기로 하고, 중국 자본이 주도하는 제주도 개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국 자본은 배척할 수도 없고, 배척해서도 안 됩니다. 개발과 관련하여 저는 환경 등 공공성에 대한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지역 주민과 지역 경제의 동반 상생(相生)을 최대화해야 합니다. 

이게 담보되지 않으면 외국 자본의 제주 개발은 결국 환경 파괴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또 공공자원을 무분별하게 내줘 개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개방정책에 반대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거든요. 

아름다운 자연환경,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 고유의 정체성 이게 제주의 가치인데, 중국 자본이든 미국 자본이든 국내 자본이든 이 부분과 잘 조화되고 관리되는 투자와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저의 입장입니다. 


親환경 동반 相生의 개발을 지향

- 제주도 개발에 관한 최종 허가권은 제주 지사가 갖고 있는데, 도지사로서 개발과 관련된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은 무엇입니까. 또 카지노 확대 문제에 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친(親)환경, 둘째는 투자부문 간에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숙박시설과 체류관광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이게 조화되지 않으면 숙박시설 분양만 하여 부동산 거품으로 끝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개발은 안 된다는 것이고, 셋째는 지역 주민과의 상생 이 세 가지가 원칙입니다.  

카지노는 이미 8개가 개설되어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감독이 잘 안 되는 게 문제였는데 철저한 감독, 적절한 세금 이걸 원칙으로 관리를 하고자 합니다. 

현행법상 이미 허가를 내 준 카지노의 경우 시설 확장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와 관련된 법을 개정하려고 하는데 늦어지고 있어요. 

다만 카지노의 신규 허가는 도지사 권한입니다. 저는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기 전까지 신규 허가는 없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원 지사께서 과격한 반대운동을 벌이다 구속된 사람들에 대한 사면 복권 요청을 중앙정부에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해군기지는 올해 말 완공됩니다. 문제는 기지가 들어서는 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환영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같은 마을에 사시는 주민들이 찬성파, 반대파로 갈려 갈등하고 부딪치는 과정에서 마을공동체가 찢어지고 분열돼 있단 말이죠. 해군기지가 올 연말 완공되는 마당에 이 부분을 치유하고 갈등을 해소하자는 겁니다. 

마을 주민들과 해군과도 협력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상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들이 필요합니다. 

사면은 국가원수에게 주어진 권한이니, 제가 이런 상처를 치유하고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강정마을과 관련된 구속자의 사면 복권 등을 건의 드린 겁니다.

   
▲ 인터뷰 중인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미래한국 김범수 발행인

-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는 순수한 의도를 가진 마을 주민들의 반대가 아니라, 외부에서 불순세력이 대거 몰려와 과격한 반대시위를 한 것이 문제의 본질 아닙니까.

외부세력이 들어온 건 후의 일이고, 처음에는 마을에서 당시 마을 회장과 일부 임원들이 유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밀어붙였죠. 

주민들이 찬성하여 통과가 됐는데, 후에 마을 회장이 바뀌면서 절대 다수의 주민들이 반대 의견으로 돌아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 유치를 주장한 마을 회장과 임원 등 지도부가 대표성이 없다고 탄핵되면서 이들의 대표성이 법적인 문제로 제기됐어요. 그 다음에 외부세력이 들어온 거죠. 

현재는 외부세력의 힘이 약화되었습니다만, 당시엔 아무도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때 외부의 투쟁세력들이 적극 나서주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한 약간의 부채의식과 연대의식이 있는 거죠. 

사실 진상 규명을 통해 화합 조치로 가자는 게 제가 제시했던 해결방안이었는데, 이게 관사(官舍) 문제로 물거품이 되었어요. 

당분간은 마을 측에서 손을 내밀어 해군과 협력할 수 있는 적절한 명분이 없어 답답한 상황입니다. 


북한 당국과도 접촉해야 

- 고(故) 황장엽 선생이 생전에 사석(私席)에서 원 지사에 대해 “원희룡 씨가 국회의원 재직 시절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난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의원 시절 민화협에서 정책위원장과 상임이사를 하면서 2006~2008년경 중국에서 북측 인사들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물론 통일부에 정식으로 신고를 하고 만난 공식적인 접촉이었습니다. 그때 고구려 고분 문화재 공동 발굴이라든지 평양에 우리 이동통신사의 진출, 한나라당 의원들과 북한 노동당과의 정식교류를 제가 추진했었죠. 

별 진전은 없었습니다. 이밖에 몰래, 국가나 국회의원으로서의 직무와 동떨어진 접선을 하는 등의 대북(對北) 비밀 접촉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때 북측 인사들과 만나 북한의 내부개혁 문제, 핵무기 개발과 관련하여 언쟁도 많이 했는데, 3차 핵실험을 하고나서는 접촉이 끊어졌어요. 

- 북한의 핵무장과 인권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북한과는 전향적으로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이신가요. 

우리가 북한에 대한 연고권을 최대한 확보해서 북한의 민심이 대한민국을 향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을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중국 동북3성과 대한민국 중 어느 쪽이 더 가깝다고 느끼겠습니까. 민감한 이야기지만 북한 주민들의 민심의 향방을 놓고 그들이 중국의 동북4성에 편입될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에 편입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때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우리 쪽으로 당겨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민심을 사로잡으려면 대화를 할 수 밖에 없죠. 물론 북한 정권과 주민들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고, 핵개발 같은 민감한 문제가 있습니다만, 북한 당국을 창구로 해서 북한 주민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저는 북한 당국을 창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 국회에서 10여 년 째 잠자고 있는 북한인권법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기본적으로 찬성입니다. 요즘 국회에서 논의되는 북한인권법안의 구체적 내용을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만, 북한인권 향상에 대해 우리가 적극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인권을 이유로 대북(對北) 봉쇄를 하고 정권 붕괴를 주장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북한인권은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행복한 삶을 위해서, 북한 주민들과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 일관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북한은 핵 개발이 아니라 개혁 개방을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과 경제 교류를 해야 하고 도로나 모든 인프라들을 뚫고 가야하고, 자유 왕래를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 주민과 대한민국 주민과의 통합 열망이 일어나 북쪽의 민심이 통일한국을 향하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3월 26일이 천안함 폭침 5주년인데, 이런 무지막지한 사건에 대한 사과나 재발 방지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라도 대화는 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저는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을 때 대응 포격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어요. 국지적 도발은 국지적인 대응을 해야죠. 

그런데 천안함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영원히 교류를 하지 말자? 현재 교전 중인 나라들 간에도 외교가 있고, 전투 중에도 대화가 있고, 포로교환이 있고 그런 것 아닙니까. 

북한을 엄하게 응징할 때는 응징하면서 어떤 때는 외교, 경제, 정치 등을 군사적인 부분과 분리시켜 우리가 선택지를 많이 가지고 종합적으로 다뤄야 하지 않을까요. 

- 영남, 호남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제주도에는 ‘괸당문화’ 라는 게 있지요.
 
괸당문화는 일가친척에 의한 공동체 문화인데요. 부정적인 면은 끼리끼리, 공사(公私) 구분 없이 배타적으로 섞인다는 게 문제고, 긍정적인 것은 한국 특유의 정, 인간적인 정, 그 안에는 이념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공동 행동이 가능하다는 점들이 장점이겠죠. 

제주도도 급격히 변하고 있기 때문에 10년 전 제주가 지금의 제주와 완전히 다른 것처럼 앞으로 10년, 20년 뒤의 제주는 지금보다는 훨씬 젊은 세대들, 개방의 효과로 외국에서 이주해 온 인구 비율이 많아지면서 지금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진취적으로 바뀔 것으로 생각합니다. 

- 최근에 한라산 산신제에서 제주도지사의 소관인 제관식 수행을 기독교 신앙을 이유로 거부했다고 하여 뉴스가 됐었죠.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데 개인적인 신앙은 당연히 존중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날 도지사를 대신하여 정무부지사가 참석하여 예를 표했고, 저도 절하는 시간을 피해서 행사에 참석하여 모든 성의와 예를 표했습니다. 공적인 제주도정(道政)의 책임은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 4·3 추념일과 관련하여 다음 주에 어떤 메시지를 발표할 예정이신지요.

4·3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제주 사회가 요동을 치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만, 화해와 상생의 메시지를 준비 중입니다.

   
 

- 4·3사건에 대한 인식이나 평화공원과 관련하여 제주도민의 인식과 도지사님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질문 자체가 지나치게 공격적입니다. 도지사는 도민(道民) 통합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하는데, 정부에서 하는 행사에 대해 맞았니 틀렸니 하고 일일이 코멘트해서야 되겠습니까. 


희생자 전체를 폭도로 몰아서는 안 돼

- 4·3사건이 기본적으로 공산혁명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제주도민들도 인정합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습니다. 당시 북에서 지휘하고 지령을 내렸던 것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평가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데, 희생자 전체를 폭도라고 몰아붙이거나, 폭도에 의해 동원되었던 사람들이라고 색칠되는 부분이 문제로 남아 있죠. 

당시 아무 죄 없는 분들의 비극적인 희생이 컸기 때문에 이것을 치유하자는 차원에서 화합적으로 접근하고, 학살 책임자도 따지지 않는 것이죠. 

이 사건을 이념적으로 규정하고 부각시켜서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에 대해 유족들이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겁니다. 

- 문제가 있더라도 지금은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 아직도 고통이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아픔을 치유하는 게 우선이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일단 아픔의 치유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제주도민들의 상당수는 현재도 4·3이 큰 상처이자 아픔으로 남아 있어요. 

당시에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 수천 명이 희생되었는데, 그런 아픔에 대해 먼저 존중하고 함께 아파해 주는 예의 표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4·3 기념관 위패 중에 옛날 무장투쟁 주동자가 있지 않느냐고 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보면 제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통해 전체를 부정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피해의식이 남아 있어요. 반발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그때 무수한 아이들을 죽인 책임자를 찾아내야 한다’ 이렇게 나오면 해결할 수 없는 역사의 갈등만 잔뜩 풀어놓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죠. 역사의 상처는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고, 또 아픔의 상처가 남은 분들을 배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게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 이 기사는 '미래한국TV'를 통해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해당 영상 링크 : https://youtu.be/cONyEbA_Ziw


인터뷰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위원
정리 박진우 미래한국 기자 newsthat@futurekorea.co.kr
사진·영상 김학성 미래한국 객원기자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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