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의 영웅 만들기
미국 사회의 영웅 만들기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5.04.10 2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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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

미국인들은 군인·소방관·경찰관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는다
미국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조직’ 1위는 軍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 주의 최대도시인 오마하에 위치한 오펏(Offutt) 공군기지는 미국의 핵미사일 공격을 담당하는 전략사령부 본부가 주둔하고 있다. 

조종사들이 이 공군기지에 착륙하기 위해 공중에서 활주로로 접근하다 보면 기지 앞 콩밭에 새겨진 특별한 메시지를 보게 된다. 

얼마 전까지 조종사들이 본 것은 “Thank you for Feedom(자유에 대해 감사한다)”이란 문구였다. 

공중에서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대문짝만하게 쓰인 이 메시지는 멀리서는 분간이 안 되지만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활주로로 하강하다보면 선명하게 보인다. 

그 순간 조종사들은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한다. 자신들의 노고에 대해 미국 시민들이 기발한 방법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에 감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메시지는 매년 바뀐다. 2011년에는 “You Make America Proud!”, 2012년에는 “Thank you for Freedom” 등 다양하다. 

▲ 네브래스카 주 오펏 공군기지 앞의 콩밭에 지역주민들이 공군 장병들에게 감사하기 위해 쓴 메시지.

하지만 마음은 동일하다. 미국 시민들이 오펏 공군기지에 근무하는 미 공군에 감사를 표하는 내용이다. 

이 메시지는 이 지역 월마트 매니저인 크리스 쇼턴이라는 사람이 시작했다. 그는 2011년 지역사회에 주둔해 있는 군인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데, 궁리 끝에 가을 추수가 끝나면 오펏 공군기지 앞 콩밭에 감사의 메시지를 새기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쇼턴은 12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500개의 막대기와 3500파운드의 밀가루를 트랙터에 싣고 콩밭으로 갔다. 

막대기와 밀가루로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벌판에 그리면 트랙터가 그 모양대로 땅을 파서 대형 글자를 만들었다. 문구는 매년 월마트 직원들의 투표를 통해 정해진다. 

오펏 공군기지 사령관인 도날드 베이컨 소장은 “조종사들은 활주로에 착륙하면서 이 메시지를 본다”며 “이를 통해 우리가 속한 이 지역사회가 우리 군 관계자들을 얼마나 환영하는지 알게 돼 감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날드 슬로트 상병 영웅 만들기

이처럼 미국인들은 군인, 소방관, 경찰관들 덕분에 자신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면서 이들의 ‘영웅적인 희생’을 깊이 존경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해리스 폴의 지난해 9월 발표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1위가 의사(88%), 2위가 군인(78%), 3위가 소방관이었고, 경찰은 7위(66%)였다. 

특히 미국에서 군인들은 최고의 존경을 받는다. 여론조사기관인 갤럽 조사에 따르면 군(軍)은 미국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조직이다. 미국 기관 중 가장 신뢰하는 조직을 묻는 여론조사는 1973년부터 계속되어 왔는데 군은 부동의 1위 자리를 수십 년 간 굳건히 지켜 왔다. 

군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기들의 목숨까지 바쳐 희생한다는 인식 때문에 미국인들 사이에서 군에 대한 존경과 감사는 대단하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제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을 치르며 수많은 미군이 전사(戰死)하고 부상당하는 ‘희생’을 직접 목도해 왔다. 

이를 통해 가족, 친척, 친구, 이웃 중 참전용사가 있고 이들이 감당한 희생을 보며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9월, 40여 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두 명의 군인에게 미군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영예의 메달(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훈장 수여자 중 한 명은 베트남전 당시 전사(戰死)한 도날드 슬로트 육군 상병이었다. 전사 당시 20세였던 슬로트 상병은 부대원들과 함께 정찰 도중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이 굴러오자 다른 곳으로 던지기 위해 이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바로 폭발 위험이 있다고 인식한 그는 지체 없이 자신의 몸을 던져 배로 수류탄을 덮었다. 

수류탄은 그의 배 아래에서 폭발하여 자신은 즉사했지만 그의 살신성인(殺身成仁) 덕분에 주변에 있던 동료 미군들은 무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영웅적인 실화를 소개하며 “그는 피할 수도 있었지만 동료 미군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영웅적인 행동을 했다”며 당시 현장에 있다가 목숨을 구한 두 명의 동료 미군을 소개했다. 

영화에서나 봤던 슬로트 상병의 감동적인 스토리는 이날 영예의 메달 수여와 함께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보도를 접한 미국인들은 그의 영웅적인 희생에 감동하며 ‘영예의 메달’을 받을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교에서 매년 참전용사 감사 행사 

미국에서는 매년 5월 마지막 첫째 주를 메모리얼 데이(현충일)로, 11월 11일을 참전용사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이 되면 미국 전역에서는 성조기로 거리와 건물들이 거의 도배가 되다시피 한다. 일부 거리는 전사한 미군의 이름과, 그 미군이 참전한 전투의 이름이 새겨진 십자가로 가득 채워진다. 

학교는 이날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을 초대해서 그들의 활약상과 희생정신을 들으며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기회를 갖는다. 

지난해 11월 11일 조지아 주 존스크릭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Thank you Veterans(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한다)” 행사가 열렸다. 

14년째 열리고 있는 이 행사는 참전용사들을 초대해 이들의 수고에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시간이다. 행사장 복도에 1, 2학년 학생들이 참전용사에 감사하는 내용을 담은 포스터들이 전시돼 있었다. 

“저는 당신들 때문에 평안히 침대에 누워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글, 일본이 미국에 항복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린 옛날 신문을 붙인 것 등 다양한 포스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공식 행사가 시작됐고 4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육·해·공군과 해병대 군가를 연이어 불렀다. 

육군 군가를 부를 때는 육군 소속 참전용사들이 기립해 박수를 받았고 해군 군가를 부를 때는 해군 참전용사, 공군 군가를 부를 때는 공군 참전용사가 일어나 학생들과 교사, 학부모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어 참전용사에 감사하는 에세이를 학생들이 한명씩 발표했다. 이날 행사를 앞두고 벌인 에세이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학생들이었다. 참전용사들의 희생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됐다며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가장 큰 환호와 박수가 나왔던 순간은 학생들의 가족들 가운데 있는 참전용사들의 얼굴 사진을 담은 슬라이드 쇼. 학생들의 이름과 함께 사진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자 학생들은 환호했다. 

가족 중에 참전용사 및 군복무를 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오는 환호와 박수였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승용차에 ‘나는 예비역 군인이다’, ‘내 아들은 해병이다’라는 글귀를 자랑스럽게 붙이고 다닌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전쟁터에서 귀환한 군인을 태운 차량이 지나가면 길 가던 사람들은 그 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환호하거나 박수를 보낸다.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제복을 입은 군인이 있으면 찾아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거나 음료수나 음식을 사서 주는 미국인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소방관, 경찰은 최초 대응자(First Responder)로 불린다. 사건, 사고가 터지면 항상 사이렌 소리를 내며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건 사고의 처리 과정에서 희생자들이 종종 발생하기도 하는데, 소방관과 경찰은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하는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사망한 2997명의 희생자 가운데 412명이 소방관이다. 전체 사망자의 13%를 차지하는 이들은 맨해튼 세계무역센터가 9·11 테러로 공격을 받자 급히 출동해 건물 내로 들어가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작업을 벌이다 건물이 붕괴되면서 사망했다. 

미국에서는 1977년 이후 4325명의 소방관이 근무 중 사망했고 지난 10년 동안 1500여명의 경찰관이 역시 근무 중 사망했다. 

애리조나 주에서는 지난 3월 6일, 2013년 10월 산불을 진압하다 사망한 19명의 소방관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기공식이 열렸다. 

이들의 희생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지어지는 이 기념공원은 1902년부터 애리조나 주에서 화재와 싸우다 사망한 총 105명의 소방관을 기리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 공원의 건립기금은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100% 기업과 개인 등 민간 차원에서 모금한 것이다. 

소방관과 경찰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행사들은 민간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라이온스클럽, 키와니스클럽 등 미국에서 지역마다 결성된 클럽들은 매년 모범 소방관과 경찰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이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행사를 연다. 

미국인들은 경찰 복지를 위해 매년 내는 기부금 스티커를 연도별로 차에 붙이고 다니며 경찰을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사회의 교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은 매년 소방관과 경찰관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상을 수여한다. 우리는 언제쯤 경찰과 군인, 소방관을 영웅으로 예우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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