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지진 안전지대라고?
한국이 지진 안전지대라고?
  •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 승인 2015.04.2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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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총 1951건의 지진 관련기록 발견돼

원전(原電) 위치한 울진, 영광, 영변(北)은 지진 다발지역

지난 4월 25일 오후, 히말라야를 이고 있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남동쪽으로 150km 떨어진 차트완에서 진도 7.9의 강진이 발생, 네팔 전역이 쑥대밭이 되었다.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1만 명이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네팔 거의 전역이 피해를 입었고, 이재민이 660만 명이 발생하면서 네팔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신(神)의 나라’에 대재앙이 내린 것이다. 지진의 여파로 에베레스트에서 연이어 산사태가 발생, 산악인들도 큰 피해를 당했다. 

이처럼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이유는 네팔의 주택들이 거의 대부분 허름한 벽돌 건물로 지어져 지진으로 인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기 때문.

지구촌 곳곳에서 지진 참사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한국을 지진 안전지대라고 굳게 믿고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올해 들어 한반도에서는 리히터 규모 2 이상의 지진이 13회 발생했다. 연평균 지진 발생 횟수도 1980년대 16회, 1990년대 26회, 2000년대 44회, 2010~2014년 58회 등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 특히 규모 5 이상의 강진도 2003년 3월(인천 백령도 해역), 2004년 5월(경북 울진 해역), 2014년 4월(충남 태안 해역)에 세 차례나 발생해 충격을 준 바 있다.

이건 약과다. 조선왕조실록을 들여다보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지진 관련 기록이 발견된다. 기자가 조선왕조실록 CD-ROM을 통해 검색을 해 본 결과 총 1,951건의 관련 기록이 발견되었다. 

▲ 지난 25일(현지시각) 네팔 카트만두 인근에서 발생한 강도 7.8의 대규모 지진으로 현재까지 수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951건의 지진 발생이 기록되어있다. 또한 국내 원전 입지 지역이 과거에 지진 다발 지역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 안전 지대가 아니라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세종 14년(1432) 5월 5일 실록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지진이 없는 해가 없고, 경상도 등 아래 지방에 더욱 많다󰡑는 내용이 발견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에는 지진이 없는 해가 없고, 경상도에 더욱 많다. 지난 기유년(1429)에 지진이 경상도로부터 시작해 충청, 강원, 경기의 세 도에 파급됐다. 그날 나(세종 임금)는 마침 책을 보느라고 지진을 알지 못했다. 서운관의 보고를 듣고야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는 비록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는 일이 없으나 지진이 하삼도(경상·전라·충청)에 매우 많으니 오랑캐의 변란이 있지나 않을까 의심된다."

 이날 세종의 발언 내용을 보면 지진이 해마다 발생했지만 '집이 무너지지는 않을 정도' 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강진(强震)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조선 후기에 해당하는 정조 8년(1784) 2월 7일의 지진 기록은 다음과 같다.

 ‘새벽에 지진이 있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기근이 거듭 들어 백성의 고통이 눈에 넘치므로 내가 밤낮으로 걱정스러워 어떻게 구제할지 걱정이 컸다. 마침 또 재앙이 거듭 나타나 지난달에 혜성의 변이 있었고, 오늘 새벽에는 땅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 지금이 어떤 때인가. 군신 상하가 떨쳐 일어나 덕을 닦고 허물을 살피는 도리를 다해야 할 것이니, 대신들은 내일 와서 모이라. 온갖 병폐의 근원이 다 언로(言路)가 열리지 않은 데에 있는데, 이따금 직언을 구하는 기회를 맞아도 강직한 논의를 듣지 못하고 남의 흠을 드러내는 버릇을 열어줄 뿐이다. 내가 들으려는 것은 내 허물과 시정의 흠이니, 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신하들은 반드시 이 뜻을 알아 내일은 바로잡는 말을 아뢰어 내가 도움을 구하는 뜻을 헤아리기 바란다."

조선왕조실록의 지진 관련 기록 중 걱정되는 부분은 국가 동력의 생산지인 원자력 발전소가 위치한 강원도 울진, 전남 영광, 북한 핵 시설이 밀집한 평안도 영변 지역에서 숱한 지진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숙종 7년(1681) 5월 11일 실록에는 “강원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 같았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 

양양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소리가 물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의 신흥사와 계조굴의 거암이 모두 붕괴됐다. 삼척부 서쪽 두타산 충암은 예로부터 돌이 움직인다고 했는데, 모두 붕괴됐다. 

그리고 삼척부 동쪽 능파대 수중의 10여 장 되는 돌이 가운데가 부러지고 바닷물이 조수가 밀려가는 모양과 같았는데, 평일에 물이 찼던 곳이 100여 보 혹은 50~60보 노출됐다. 

평창, 정선에도 산악이 크게 흔들려 암석이 추락하는 변괴가 있었다. 이후 강릉, 양양, 삼척, 울진, 평해, 정선 등의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땅이 흔들렸는데, 이때 8도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고 되어 있다.

이 시절의 지진은 세종 시절 󰡐집이 무너지지 않아 다행󰡑이던 정도에 비하면 담벽이 무너지고 기와가 날아가 날아가 떨어지고, 거암이 붕괴되고 산악이 크게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강진이었다. 이 밖에도 울진 지방에서는 ▲세종 26년(1444) 5월 11일 ▲명종 1년(1546) 11월 22일 ▲효종 1년(1650) 1월 9일 ▲효종 10년(1659) 2월 24일 ▲숙종 7년(1681) 11월 2일과 11일 ▲숙종 8년(1682) 2월 11일 ▲숙종 35년(1709) 6월 5일 등 모두 여덟 차례 지진이 발생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일단의 사례를 소개한다.

▲강원도 강릉, 삼척, 울진, 평해, 양양 등의 지역에 여러 날 계속해 지진이 일어났다(숙종 7년 11월 11일).

▲강원도 평해, 울진 등의 고을에 지진이 있었다(숙종 2년 11월 20일).

▲강원도 울진, 평해 등지에 지진이 있었고, 평창의 냇가에서 땅이 함몰했다(숙종 8년 2월 11일).

▲울진현에 여러 날 지진이 일어났다(숙종 35년 6월 5일).

▲강원도 평해, 울진에 지진이 일었다(세종 26년 5월 11일).

문제는 조선 초기보다는 후기로 갈수록 지진의 빈도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울진뿐만 아니라 영광에서도 10여 차례, 평안도 영변에서도 10여 차례 지진이 발생했던 사례로 보아 이 지역들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단종 2년(1454) 12월 28일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 영광에 지진이 일어나 인명 피해까지 발생한 사건에 대해 실록은 “경상도 초계, 선산, 홍해와 전라도 전주, 익산, 용안, 흥덕, 무장, 고창, 영광, 함평, 무안, 나주, 영암, 해남, 진도, 강진, 장흥, 보성, 흥양, 낙안, 순천, 광양, 구례, 운봉, 남원, 임실, 곡성, 장수, 순창, 금구, 함열 및 제주의 대정, 정의에 지진이 일어나 담과 가옥이 무너지고 허물어졌다. 

사람이 많이 깔려 죽었으므로 향과 축문을 내려 해괴제(解怪祭․천재지변을 해소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세조 1년(1455) 10월 4일에도 전라도 영광군에 지진이 일어나 향과 축문을 내려 해괴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태종 13년 1월 16일 경상도 거창현에서는 인시(새벽 3~5시)부터 진시(오전 7~9시)까지 모두 20여 차례나 지진이 발생한 사건도 있었다. 

단종 2년(1454) 3월 28일에는 평안도 평양, 영변, 박천, 정주, 안주, 태천에 지진이 발생해 향과 축문을 내려 해괴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하필이면 조선시대 지진 다발지역인 울진, 영광, 영변에 원자력발전소와 핵 관련 시설을 지었을까. 발전소 부지 선정하시는 분들은 조선왕조실록 열심히 들여다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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