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구개발 자금은 ‘눈 먼 돈’?
정부 연구개발 자금은 ‘눈 먼 돈’?
  • 미래한국
  • 승인 2015.05.0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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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달 특집] 국가 R&D 자금의 虛實

정부 연구개발(R&D) 자금 GDP 대비 세계 1위, 규모는 세계 6위.
투자 대비 효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수준

▲ 송치성 서울대 겸임교수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 연구개발(R&D) 자금은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세계 1위, 규모로는 세계 6위다. 그러나 투자 대비 효과 측면에서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수준이다.  

정부 출연 연구소의 역사가 40년이 지난 현재까지 R&D 투자와 파급 효과를 둘러싼 논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어 왔다. 

연구 현장에서는 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규제가 연구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하소연을 해왔지만, 역대 어떤 정권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구 여러 나라들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과학기술이었고, 그 바탕에는 과학기술 정책과 철학이 있었다. 

선진국 사회의 바탕에 깔려 있는 정서와 철학은 ‘합리성’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과학기술 선진국의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의사결정 과정’이다. 

역대 어느 정권치고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하지 않는 정권은 없었다. 현재 우리 헌법 제127조 제3항에 의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설치하여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임무를 규정하고 있을 정도다. 

불행하게도 역대 모든 정권이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지만, 연구 현장은 그 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과학기술 분야는 고도의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정부 공무원은 물론, 같은 분야에 근무하는 전문가들조차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는 과학기술 정책이 언제든 주관적 기준에 의해 바뀔 수도 있음을 잉태하고 있으며, 정책결정자의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학기술 분야 연구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논문 편수, 특허출원 실적, 상용화 계약 등을 지표로 삼기도 하는데, 이런 방식은 근본적인 평가방식이 될 수 없다.

어떤 경우는 과학자의 주장이 100년 이상 지나서야 그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고, 과학자가 사망한 후에야 그의 이론이 규명된 사례도 부지기수다. 

사업화는 또 다른 판단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률적인 평가를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객관성의 결여는 국가가 과학기술을 한 방향으로 몰아붙인 것에서 비롯되었고, 실적 위주의 감사와 불완전한 평가제도가 문제를 꼬이게 하는 데 한몫을 했다.

또 현장 연구자들과 과학기술계 지도자들이 정책, 법률적인 지식, 정부 간의 네트워크 부재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권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

어느 나라의 연구개발(R&D) 투자가 가장 완벽하고 효율적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예산이나 연구 인력의 숫자, 연구개발의 수준, 추구하는 목표가 국가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지어 말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투자의 결과물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여부다. 과학기술계의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단기간의 연구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되고, 연구의 연속성이 사라지며, 성과 위주의 연구비 집행으로 인해 부적절한 투자와 비효율의 악순환이 윤회처럼 계속된다. 

우리의 일천하고 천박한 민주주의 제도 운영 경험으로 인해 정권이 바뀌면 과학기술계의 수장(首長)들도 거의 대부분 친(親)정권 인사나 대선 때 적극 협조한 인물들로 교체된다.

그 결과 과학기술계의 연구비 배분과 기관 운영은 낙하산 인사들이 좌우하게 되어 이로 인해 공유지의 비극이 만들어진다. 

주인은 없고 시어머니만 존재하는 상황에서 현장의 과학기술자들은 적당히 무능한 것이 자신들의 안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재빠르게 이해하고 행동에 옮긴다.

더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치는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은 위기의식 조장보다는 “이러다가 말겠지, 좀 있으면 잠잠해질 것을 왜 이렇게 설치나” 하는 타성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공유지의 비극을 해소하려면 경영 능력이 출중한 주인을 만들고, 그 주인에 의해 연구비 나눠먹기가 아니라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정착시키는 길이 부분적인 해결책이다. 

그러나 정부 출연 연구소는 공공기관이라는 틀에서 일률적인 규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기관장들은 포퓰리즘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이는 예산 낭비, 조직 비대화의 악순환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과학기술 발전의 장애요인이 된다.

이런 공유지의 비극은 걷잡을 수 없는 연구비 부풀리기, 기관 이기주의를 만들고 칸막이를 양산하여 감사와 예산에 대비한 인력 증가라는 악순환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과학 연구를 위한 3대 필수 요건은 예산, 연구시설, 유능한 인재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 자원은 탁월한 인재의 확보이며, 그들이 훌륭한 연구 성과를 창출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R&D의 핵심인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따러 다니느라 시간과 공력을 낭비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연구 현장에 만연해 있는 평등과 평균이라는 개념도 올바르게 정립되어야 하고, 기관장들은 시장 논리에 따라 기관을 운영하고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미래를 위한 장기 국가 R&D 로드맵을 정밀하게 세우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국가는 연구소에 분명한 미션과 목표를 부여하되 그에 해당하는 R&D 로드맵이 정부 정책과 산업전략, 규제 개혁 로드맵과 맞아떨어질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임기 3년으론 아무 것도 못해

그동안 정부는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과학기술 분야의 개편을 시도했지만 개혁은 언제나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과학기술의 특수성을 배제하고, 공공기관이라는 동일한 잣대로 그들만의 기준에 따라 감사하는 사정기관과 다양한 정부 부처의 감사도 개혁을 방해하는 데 한몫을 했다. 

이로 인해 조직 비대화와 과학기술을 빙자한 관변 단체만 늘어나 예산 낭비와 비효율이 오히려 심화되었다. 

이런 참혹한 실태는 정부와 과학기술계 모두의 책임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계 수장의 임기를 정권과 관계없이 연임할 수 있고 강력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중국은 1949년 10월 국가 수립 이래 중국과학원 초대 원장부터 2011년 3월 임명된 현재 원장까지 66년간 단 6명이 윈장 직을 맡아 초지일관 과학기술의 꿈을 중국 땅에 펼쳐 왔다.

현 정부 창조경제의 모델이 된 이스라엘은 기초과학 연구나 창업을 불문하고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사람과 예산은 필요한 만큼 맞춤형으로 지원하며 과학자들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고, 무한 신뢰를 통해 연구를 후원한다. 

산업화 연구에 초점을 둔 독일 프라운호퍼재단 소속 60개 연구소의 기관장은 대부분 종신직이다. 미국 대학의 총장 재임기간은 보통 10년 이상이고 일본 대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연구기관장 임기는 3년, 대학 총장 임기는 4년, 주무부처 장관은 1년 남짓으로 거의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연구와 교육 분야는 일관성과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기관장 임기를 10년 이상 보장하고 있다. 부작용만 낳는 잦은 제도 변화나 수장 교체에는 지극히 신중하다. 

연구소를 책임지고 있는 임기 3년의 기관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중장기적인 비전을 세워 발전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누가 소신을 말할 수 있으며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기관장이 얼마나 되겠는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서투른 실적 홍보와 포퓰리즘에 치우쳐 운영하는 기관장을 보면 서글픈 마음마저 든다. 

제대로 된 기관장을 뽑고, 우수한 기관장은 연임을 시키고, 장기적으로는 기관장 임기를 더 늘리고 권한을 강화해야 연구기관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소신 없이 눈치만 보면서 무사안일하게 연구소를 경영하는 정치적 기관장들은 극소수의 연구비 불량집행 사례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와 감사기관은 알아야 한다. 

R&D 투자 방식은 어떤 게 정답이라고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독일은 정부가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지원하지만, 영국은 특정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는 등 R&D 정책이 다르다. 

공통점이라면 연구 결과물을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획기적인 연구 성과라도 상용화되는 경우는 30% 정도인데 이 비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R&D 정책이 추구해야 할 목표다.


연구자들의 정신력이 중요하다

R&D 투자가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연구자에 대한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연구에 성공할 경우 부와 명예를 함께 얻을 수 있다는 믿음만큼 확실한 동기부여는 없다.

기업은 연구원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정부 역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연구에 적극 투자하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좋은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연구자의 일탈이나 의미 없는 연구를 막을 수 있다. 이것이 정부 예산의 효율을 증진시키고 R&D의 결과를 실용화하는 실질적인 대안이다. 

출연연구소의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정부 정책과 시장 논리에 맞춰 기관이 운영되어야 한다. 정부는 일반 기업들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 기초연구분야 연구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기초 분야는 지금 당장은 쓸모없을지 몰라도 미래에 유용성을 찾는 연구다. 선진국들은 아무리 불확실성이 높아도 하고 싶은 연구자가 나타나면 과감히 지원하고, 일부만 건져도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한다.

▲ 대덕연구단지가 만들어진 이래 우리나라 연구개발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R&D 예산 대비 효율성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진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대덕연구단지를 시찰하는 모습.

연구원들은 오랜 기간 한 분야를 연구하고 공부하며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것을 원한다. 때문에 한 분야에 몰입하면서 ‘내가 최고’ ‘내 방식이 옳다’는 식의 타협할 줄 모르는 외곬 성격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런 문화는 지나친 개인주의로 확산되며 공동체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인 대덕특구가 구심력 없이 관치(官治)에 의해 운용되는 현실은 자신들의 안위를 스스로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과학기술자들의 연구에 대한 자율성은 보장하되 시장 논리를 반영한 조직운영과 행정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을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고, 이를 위한 근본적인 제도의 변화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필요하다.

과학기술이란 연구 인력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핵심 인재를 보호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과학기술자들도 자신들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과 윤리,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스스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공공자금을 지원했으면 규제하고 간섭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들의 전문성 부재와 단기간의 효과와 실적에 연연하여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는 주인을 찾으면 해결되는 일이고, 주인은 시장 논리대로 결정하면 된다. 

기술 개발에는 돈이 필요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연구자들의 정신력이다. 미래 지향적 연구는 죽기 살기로 해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는 연구 의지가 약해 성공 가능성이 낮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강력한 동기부여와 함께 시장의 논리와 책임, 그리고 무분별한 감사를 지양하고 규제 완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어떤 기술을 국가가 주도해서 개발할 것인가는 국민, 정부, 국회가 참여해 우선순위를 정하는 정치적 결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부처별로 국가적으로 기술을 개발해야 할 분야의 예산을 확보한 뒤 책임지고 기술 개발을 주도해야 하며, 이 과정에 민간을 참여시켜야 한다. 

효율적인 예산 집행을 위해서는 정책의 연속성과 시장 논리, 그리고 실질적인 거버넌스가 병행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송치성 서울대 겸임교수>
(前)한국 기계연구원 본부장, 미 하버드 케네디스쿨 연구원, 서울대 졸업
원자력 플랜트 국산화 연구업적으로 마르퀴즈 미국인명정보기관,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가 발행하는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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