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 더 이상은 안 돼!
유언비어, 더 이상은 안 돼!
  • 이성은 기자
  • 승인 2015.05.18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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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조희연 교육감에 대한 1심 선고는
선거 때 무분별한 유언비어 유포 용납 않겠다는 사법부의 경고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4월 24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지난해 5월 그는 교육감 후보였을 당시 기자회견을 열어 “고승덕 후보는 미국 영주권자이므로 교육감 자격이 없다”면서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이 발언에 대해 검찰은 조희연 교육감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이에 대한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 원 이상 판결을 선고받게 될 경우 교육감 직을 상실한다. 

그는 상대 후보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사실로 공격한 대가로 서울시 교육감 자리에서 물러날 위기에 봉착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로부터 지원 받은 선거비용 보전금 33억8800만 원도 반환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희연 교육감의 벌금형 선고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상대 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행위가 실질적으로 ‘당선무효’라는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사례로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右)은 지난해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상대 후보인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제기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 500만 원의 판결을 받았다.

대한민국 선거판에서는 선거일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난무한다. 이는 투표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당락의 결과를 뒤바꾸기도 한다.

유언비어를 앞세운 흑색선전이 역사의 방향을 돌리고, 정치인들의 인생을 뒤바꾸기도 한다.

근래에 유언비어가 당락을 뒤바꾼 대표적인 사례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다. 당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대혼전이었다.

선거를 1주일 앞두고 진행된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중앙일보와 국민일보는 나경원 후보가 근소하게 앞설 것으로 예측했고, 헤럴드경제와 서울신문은 박원순 후보가 근소하게 앞서는 결과를 발표할 만큼 안개 속의 혼전이었다. 


유언비어 폭격으로 패배한 나경원 후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전 속에서 선거를 판가름 짓는 사건은 마지막 여론조사 발표 다음날 발생했다.

나경원 후보를 겨냥한 ‘1억 피부과’ 사건이 터진 것이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나경원 후보가 연회비 1억 원에 상당하는 서울 강남의 초호화 피부과에 다닌다는 보도를 냈고, 이 보도가 삽시간에 퍼져나가면서 나경원 후보에 대한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박원순 후보 캠프에서도 대변인을 통해 “수 천만 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1억 원짜리 강남 피부샵을 들락거리면서 부동산 투자로 13억 원의 시세 차익을 올린 공직자가 과연 서민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겠나”는 발언을 하며 의혹 공세에 합세했다.

결국 ‘1억 피부과’라는 보도로 인해 투표의 향방은 결정됐다. 박원순은 53.4%의 득표로 당선되었고, 막판에 결정타를 맞은 나경원 후보의 득표율은 46.2%에 그쳤다.

▲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안개 속의 혼전이었던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선거의 판도를 결정지은 것은 다름아닌 '1억 피부과 사건'이라는 하나의 유언비어였다.

보궐선거가 종료된 후 경찰은 해당 병원을 압수수색까지 해가며 진료 기록을 분석하고 관련자들을 조사한 끝에 이듬해 1월 30일, “나경원 후보가 지난해 해당 병원을 15차례 찾아 자신과 딸의 피부 관리 비용으로 550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나 후보가 강남 피부과 병원 진료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초호와 피부 관리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의 피부 노화를 방지하기 위한 시술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술 비용도 1억 원이 아니라 550만 원이었다. 하지만 뒤늦은 사실관계 소명으로 이미 끝난 보궐선거의 결과를 돌릴 수는 없었다.


가장 울고 싶은 정치인 이회창

유언비어는 대통령 선거의 승패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회창 전(前) 총리는 16대 대선에서 소위 ‘병풍 사건’으로 고배를 마셨다.

병역 브로커 김대업 씨는 이회창 후보가 자신의 아들 병적기록부를 변조하고 대책회의를 가졌으며, 이와 관련한 진술자의 테이프를 갖고 있다는 내용의 허위사실을 폭로했다.

이 폭로를 계기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하여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48.9%, 이회창 후보 46.6%를 득표하여 패했다.

전문가들은 ‘병풍 사건’으로 인해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4.8~11.8% 정도 떨어진 것으로 추측한다. 박빙의 승부였던 2002년 대선에서 병풍 사건이 당락을 결정적으로 좌우했다는 것이 선거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선거판에서의 유언비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향해 ‘대선 후보자 TV 토론회에서 아이패드를 보고 커닝을 했다’, ‘대선을 위해 1억5000만 원짜리 굿판을 벌였다’, ‘종교단체 신천지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 ‘여론조사 기관에 5억을 주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악성 유언비어가 무분별하게 유포되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이런 악성 유언비어가 SNS망을 통해 무차별로 확산되자 선거 유세 도중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문제의 유언비어가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18대 대선에서는 난무한 유언비어가 선거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박근혜 후보의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18대 대선에서는 유언비어가 선거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지 손상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대선을 앞두고 유포된 유언비어가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2030세대들이 현재까지도 박근혜 대통령을 불신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SNS상에 이러한 악성 유언비어들이 상당 기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돌아다녔고, 박근혜 반대세력들은 지금도 그런 유언비어를 사실인양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6·4 지방선거,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올 4월의 4·29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까지 총 세 차례 선거를 치렀다.

세 차례 선거 기간 동안 정치권은 세월호 정국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정부를 겨냥한 음모론과 유언비어들이 광범위하게 유포 확산되어 국정이 온전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선거 때마다 세월호 관련 유언비어가 모든 이슈를 대신하는 것을 넘어 국가 전체를 지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희연 교육감의 1심 실형 선고는 선거 과정에서 당선을 위한 무분별한 유언비어 유포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법부의 경고 메시지다.

왜곡되고 변질된 대한민국의 선거 환경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이 흑색선전과 심판론,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선거판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선거 환경을 개선시키는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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