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체코의 전략적 파트너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체코의 전략적 파트너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5.05.24 1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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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의 세계여행45] 토마쉬 후삭 체코 대사

‘벨벳혁명’의 비결은 공산체제 하에서도 살아 숨 쉬던 민주주의 전통

체코 프라하공항의 표지판과 안내문은 체코어, 영어, 러시아어 함께 한국어로 표기돼 있다. 국영 체코항공의 2대 주주가 대한항공이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체코 내 한국의 위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다.

토마쉬 후삭(Tomas Husak) 주한 체코 대사는 한국과 체코 양국의 유사점과 친밀함을 수없이 강조했다.

한국은 체코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아시아에서 유일한 나라이며,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우방국이라는 것이다.

▲ 토마쉬 후삭 주한 체코 대사

체코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평화적으로 전환했고, 슬로바키아와도 평화롭게 분리했다. 이른바 벨벳혁명과 벨벳이혼, 그 비결은 무엇일까.

그리고 과거의 공산주의 형제국인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단호하게 비판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전통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체코로의 지상(紙上) 여행을 떠나보자. 

- 체코에 대한 전반적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체코는 유럽의 심장부에 위치한 내륙국가로서, 고대부터 유럽의 문화와 교역이 소통하는 교차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체코는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양국은 역사적으로 타국에 의한 통치 경험을 겪었죠. 한국은 일제와 한국전쟁 기간 동안, 체코는 40년간의 공산주의 집권동안 유린되기도 했습니다.

천연자원이 없는 환경에서 양국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한 것은 두뇌와 인적자원을 성장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으며 그 점에 대해서 체코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합니다. 

- 체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프라하의 봄’입니다. 1968년의 일이니까 벌써 50년이 지났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요.

당시 저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와 사회 이슈에 대해 활발하게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당시 소련 지도자들은 체코를 침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소련이 체코에 들어오자 공산주의자들이 힘을 가지면서 민주화 노력이 물거품이 됐지요.

이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도 그랬지만 저 개인적으로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저는 공산당의 제재로 수도 프라하에서 쫓겨나 체코 북부 지역의 작은 대학에서 학업을 마쳐야 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하기까지 20여 년을 고통 중에 기다려야 했습니다. 


슬로바키아와 평화롭게 분리 

- ‘벨벳혁명’이라고 불리며 순조롭게 진행된 1989년의 민주화 혁명도 인상적입니다. 1993년 슬로바키아와의 평화적 분리도 그렇고요. 역사적인 사건들이 평화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요.

체코와 슬로바키아 국민들은 몇 세기 동안 이웃으로 살면서 한 번도 심각한 분쟁이나 전쟁이 없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의 계획 하에 두 국가가 합병해서 한 국가를 이루게 되었고, 공산주의가 사라진 것이 확실해지자 민주주의를 맛보았던 저의 부모님 세대를 위시한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벨벳혁명을 이뤘습니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이 거대한 움직임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시민들은 신속하면서도 확고하게 움직였습니다.

1989년 11월 프라하 광장에서 1주일간 지속된 집회에는 약 20만 명의 시민들이 매일 참가했습니다. 당시 광장 한 가운데에는 장미 화단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 곳에 발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만 봐도 당시 시민들이 얼마나 이성적이었으며 혁명의 평화적 정신을 알 수 있을 겁니다.

- 민주주의 혁명 이후 과거 정부에 있던 공산주의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부 공산주의자들은 처벌을 받았지만 강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정한 직급 이상의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서만 혁명 이후 외교 및 공직을 수행할 수 없도록 했으며, 대다수 공산주의 당원들은 처벌 받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공산당원이 되지 않고 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 또한 미래에 대한 보장을 미끼로 공산당에 가입할 것을 권유 받았지만 거절했죠. 공산당 정부는 당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많은 제한을 뒀습니다.

학업도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고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할 수 없었습니다. 당에 대한 적대 행위를 하면 본인은 물론 모든 가족도 처벌을 받았습니다.

독일 강점기 시절 공산주의 레지스탕스와 비(非)공산주의 레지스탕스가 존재했는데, 아버지는 비 공산주의 레지스탕스에 소속되어 있어 공산주의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공산당 시절 어려운 시기를 보냈죠. 

하지만 그 시절 공산당 가입은 살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처벌 받지 않은 것에 대한 별다른 감정은 없습니다.

- 슬로바키아와의 분리가 ‘벨벳이혼’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근 100년을 한 나라로 살아온데 따른 어려움과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두 국가로 나뉜 것은 양 국가 국민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정치적인 결정이었고, 양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가족을 예로 들면 저는 체코 출신이고 아내는 슬로바키아 출신입니다. 이처럼 양 국가와 국민들은 매우 밀접하게 관계를 맺어온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리는 평화적으로 이뤄졌고 상호간의 경제적인 채무도 해결되었으며, 체코와 슬로바키아 양국은 유럽연합(EU)의 일원으로서 서로 우방국입니다.

체코의 공식 언어는 체코어지만 법원 등 공기관에 가면 슬로바키아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두 국가가 평화롭게 분리되었고 친구 같은 우방국가라는 점을 보여주는 단편입니다. 제 아들도 가족의 ‘전통’에 따라 슬로바키아 여성과 결혼했습니다.(웃음)


북한판 ‘벨벳혁명’은 없을 것 

- 올해 초 체코 외교부는 프라하에 있는 북한대사관을 통해 북한인권에 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압니다. 프라하의 북한대사는 김정일의 형제이며 현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의 삼촌이기도 하죠. 오랫동안 외교적 관계를 이어온 북한에 대해 이런 입장을 밝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체코슬로바키아는 공산주의 정권 시절 모스크바의 지시에 따른 외교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당시 체코는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와 바르샤바 협정의 회원국이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도 당시에 조성된 것이죠. 하지만 공산주의 정부가 사라진 이후 대한민국과 외교적 관계를 시작했으며, 필요할 때마다 북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평양에 우리 대사관이 있지만 양국의 외교 관계는 기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현재 체코는 비핵화와 인권 문제를 무시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관련된 기본원칙이 무엇인지를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 체코는 조금 전 언급한대로 평화로운 방식으로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변화를 이뤄 냈습니다. 북한도 그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십니까.

체코는 유럽에서도 가장 우수한 수준의 민주주의적 배경과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일의 점령과 1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를 누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 민주주의 체제를 갖추는 데 약 5년이 걸렸지만, 체코의 경우는 3년이 걸렸습니다. 그 직후 공산당이 국가를 장악했는데, 당시 민주주의 사상과 원칙을 알고 있었던 부모님 세대는 공산당이 약해지자 민주주의 헌법을 제정하고 벨벳혁명을 이뤘습니다.

▲ 인터뷰 중인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인(左)과 토마쉬 후삭 주한 체코 대사.

애석하게도 북한은 민주주의적 배경이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체코와 같이 평화적인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래에 북한에서 민주화가 이뤄질 것을 확신합니다.

통일에 대한 한국의 투자와 노력은 반드시 한반도의 융합을 이뤄낼 것입니다. 매우 힘든 과정이 되겠지만, 유럽연합 등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통일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 민주주의 체제를 강력히 추구했던 체코의 초대 대통령 마사리크와 한국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비슷한 점이 참 많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계속 말씀드렸듯이 두 국가는 비슷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체코를 상징하는 드보르작, 카프카 

- 양국은 1990년 이후 외교관계를 이어왔는데, 양국 간의 주요 현안은 무엇입니까.

처음 몇 년간 양국 관계는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그 이후 매년 교역 규모가 계속 증가해왔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올해 2월 우리 총리와 한국의 대통령이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습니다.

체코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아무 국가와 맺지 않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몇 개 되지 않고, 아시아에서는 유일한 체코의 전략적 파트너입니다. 우리가 많은 부분에서 협조할 수 있고,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전략적 파트너십이 체결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난주에는 체코의 국방부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했고 조만간 체코 재정부와 의회 대표단, 외교부 장관이 방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부총리 대행과 교육, 과학R&D 분야 관련 대학과 과학 분야 전문가들이 금년 내 한국을 방문할 것입니다. 체코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일도 머지않아 있을 것으로 봅니다.

- 어떤 면에서 한국과 체코 양국이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할 만큼 서로의 관계가 특별하다고 보십니까.

양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이기 때문에 수준 높은 교육과 학생 및 연구 인원들을 보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체코에서 매우 인기가 있습니다.

프라하에서는 한국 관련 연구도 많이 진행 중입니다. 1949년에 한국의 언어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유럽 최대의 한국연구기관이 설립되었습니다. 당시에 300명 이상의 학생들이 한국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이를 통해 체코 서적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등 한국과의 문화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 현재 양국 간 문화적, 인적 교류 현황은 어떻습니까.

서울에 체코문화센터가 있는데 각종 문화공연 및 전시회 등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저는 체코에 있었을 때 프라하에서 한국에 관한 전시회를 기획했고, 한국에 와서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프라하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작년에는 25만 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체코를 방문했습니다.  체코 공항에 오면 한국어로 된 표지판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인 관광객의 수는 중국과 일본의 관광객보다 더 많습니다.

- 체코의 문화적 특징이 궁금합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유럽의 교차로에 위치한 체코는 항상 아이디어와 스타일이 교통하는 장소였습니다. 우리의 문화는 과거에는 강한 국가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지만, 100년 전부터는 보다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체코의 전통춤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는 체코만의 독특한 전통 문화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드보르작이나 카프카와 같은 체코 작곡가나 작가도 유럽문화 안에 녹아 있죠.


교역량 30배 증가
  
- 현재 체코의 경제적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미래의 국가적 열망과 목표가 있다면.

체코는 은행을 재정비하여 건전한 체계를 구축했기 때문에 수 년 전 세계경제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경제위기 당시 중앙은행이 경제에 개입하며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도 시장 경쟁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줬습니다.
 
우리 정부는 기반시설에 투자하여 2019~2020년에는 R&D 경쟁력 면에서 세계 20위권에 진입하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목표는 체코의 성장률이 유럽연합 평균을 상회하고, 전년 대비 2.5~2.7% 가량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수출량은 매년 5%씩 성장하고 있고, 무역흑자도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잘 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이는 지난 선거 때 경제를 중점으로 한 정당이 많은 지지를 받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근 러시아에 대한 국제 제재가 악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러시아와의 무역이 전체 교역량의 5%밖에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과 체코가 첫 교역을 시작했을 당시 1억 달러 규모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총액 30억 달러 규모에 이르렀습니다.

- 체코는 미국과 미사일방어(MD)협정과 미군주둔협정(SOFA) 등을 맺고 있는 몇 안 되는 유럽 국가인데 반미(反美)의 목소리는 없습니까.

일부 국민들이 반미 감정을 갖고 있고, 또 반러 감정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특별한 우려는 없습니다. 작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유럽을 방문했을 때, 그리고 최근 미군 수송훈련과 관련해 소규모 반미 시위가 있었지만 대다수는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우리는 나토(NATO) 멤버이고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견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일이지요.

* 이 기사는 '미래한국TV'를 통해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해당 영상 링크 : https://youtu.be/f52zYPNjANM

정리 박종하 미래한국 인턴기자
사진·영상 이모람 미래한국 객원기자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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