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 삶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2025년 한국] 삶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 미래한국
  • 승인 2015.06.1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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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특집] 10년 후의 한국 사회
▲ 복거일 소설가

우리가 살 곳이 미래이므로, 우리는 늘 미래를 예측하려 애쓴다. 실은 모든 지식의 목적이 미래의 옳은 예측이다.

명시적으로 과거를 다루는 역사학도 본질적으로 미래지향적이니, ‘역사의 교훈’이란 말에서 그 점이 잘 드러난다.

닐스 보어의 멋진 얘기대로 예측은 힘들고, 미래의 예측은 특히 힘들다. 개인들은 목숨이 여리고 그들이 꾸리는 삶은 늘 우연적 사건들에 좌우되므로, 그들의 앞날을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사회들은 오래 이어지지만, 워낙 복잡하므로 앞날을 예측하기는 더 어렵다. 게다가 현대 문명에선 모든 것들이 점점 빠르게 바뀌므로, 어렴풋한 예측의 시한마저도 점점 짧아진다.

그래서 10년 뒤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려는 노력은 긴요하고 흥미롭지만 무척 힘들다.  10년 전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이 점이 잘 드러난다.

2005년 우리 사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끌었고 세계는 번창하고 있었다. 몇 해 뒤에 나올 그의 비극적 죽음과 국제적 금융위기를 예감한 사람이 있었을까?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일어서고 있었지만, 경제와 외교에서 지금처럼 압도적 영향력을 지닌 중국을 예견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었던가?

사람들의 삶이 휴대전화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꾸려지는 상황도 보통 사람들은 생각지 못했다.

예측하기 힘든 미래를 그래도 좀 정확하게 예측하려면, 우리는 문명적 차원에서 살펴야 한다. 눈길이 한국이라는 작은 사회에 머물면, 맥락을 놓칠 위험이 늘어난다.

끊임없이 바뀌는 겉모습 아래에서 문명을 다듬어내는 근본적 요소들의 추세를 관찰해야 한다.

그런 요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기술이다. 기술의 발전이 워낙 빠르고 가속되므로, 인류 사회의 성격 자체가 계속 바뀌어 왔다. 


인공지능(AI)의 중요성 

근년에 나온 기술들 가운에 특히 두드러진 것은 컴퓨터의 모습을 한 인공지능(AI)이다. 컴퓨터가 처음 쓰인 것은 2차 세계대전이었고, 인공지능이란 말이 나온 것은 1956년인데, 반세기가 좀 넘는 동안 인공지능 덕분에 인류 사회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생명체들은 지식을 통해서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한다. 그런 지식은 셋으로 나뉜다. 유전자들 속에 든 지식은 본능이다. 뇌에 든 지식은 지능이다. 사회에 퍼진 지식은 문화다. 사람은 다른 종들보다 지능과 문화에서 뛰어나다. 

인공지능은 말 그대로 사람의 지능을 보강한다. 그래서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이뤄진 인공지능은 그저 사람의 근육을 보강하는 종래의 기술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람의 지능의 산물이면서 사람의 지능을 보강하고 대치한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21세기의 개인은 19세기의 국가보다 큰 정보처리 능력을 지녔다.  지금 최신형 휴대전화의 정보 처리 능력은 1969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아폴로 11호를 달에 보낼 때 갖췄던 것보다 우수하다.

생명의 본질이 정보 처리이므로, 정보 처리 능력에서의 이런 혁명적 발전은 우리의 삶의 모습을 근본적 수준에서 바꿀 수밖에 없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능과 달리 인공지능은 꾸준히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뇌의 크기는 바뀌지 않으므로 사람의 지능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물질적 바탕인 컴퓨터의 용량엔 제한이 없고 짧은 시간에 커질 수 있다. 용량이 커지면, 당연히 질적 변화가 나오게 마련이다. 

지금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스스로 배운다.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수많은 해법들을 생각해내고, 그것들을 모두 시험해보아 가장 성공적인 것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나간다. 이제 전문가 체계(expert system)라 불리는 그런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모든 분야들에서 인간 전문가들을 돕는다. 

이런 추세에서 상징적 사건은 한 세대 전에 나왔다. 위상수학이 초기에 이룬 성과들 가운데 하나는 ‘4색 추측(four color conjecture)’의 증명이었다.

맞닿은 지역이 같은 색이 아니도록 지도를 칠하는 데는 네 가지 색깔들로 충분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추측의 증명은 보기보다 힘들었다.

1976년에야 케네스 아펠과 볼프강 하켄이 이 문제를 풀어서, ‘4색 추측’은 ‘4색 정리(four color theorem)’가 되었다.

그러나 증명의 과정이 너무 방대해서 사람이 그것을 다 읽는 것은 불가능하며, 컴퓨터 프로그램만이 따라갈 수 있다. 즉 컴퓨터는 수학적 증명의 본질적 부분이 되었다. 


자율적 기계들의 출현 

본질적으로 지능과 같으므로, 인공지능은 모든 다른 기술들에 작용한다. 그래서 기계들은 점점 자율적이 된다. 첨단 공장들은 거의 다 스스로 움직이고 사람의 개입이 필요한 경우는 드물다.

이제는 스스로 움직이는 수송 수단들이 나타났다. 무인비행기(drone), 운전자 없는 차(driverless car), 스스로 움직이는 화물선(ghost ship)은 체계의 작동 환로(loop)에서 사람의 몫이 거의 없어진 경우들이다. 자율적 기계들이 연결되어 움직이면, 지금 큰 관심을 끄는 ‘사물 인터넷’이 실현된다. 

인공지능은 이처럼 물건들을 만들어 쓰는 ‘물리적 기술’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사회를 조직하는 ‘사회적 기술’에도 혁명적 변화를 불러왔다.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재현해서 살피는 ‘시뮬레이션’은 보다 현실적이고 정교한 제도와 정책을 가능하게 한다. 

휴대전화와 같은 전자 기기들을 통해 수집된 자료들은 사람들의 행태에 관한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제공해서 예측의 정확성을 크게 높인다. 

덕분에 갖가지 시장 설계(market design)가 가능해져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든다. 결혼 시장에서 나온 ‘짝 찾아주기(match-making)’ 기술은 모든 재화들의 수요와 공급을 촘촘히 연결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당연히 현대 사회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변화들은 불렀다. 1) 정보비용이 실질적으로 사라졌다. 2) 교통이 편리하고 값싸졌다. 3) 정보가 실시간으로 온 세계에 퍼지면서, 온 세계가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하나의 범지구적 시장(global market)으로 통합되어 간다. 4) 자연히, 지역성(locality)의 무게가 줄어들었다. 5) 결과적으로, 문화의 진화가 점점 가속되고 인류 문명의 모습은 점점 빠르게 바뀐다. 

이런 사회적 변화들은 기업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1) 짝 찾아주기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영업 형태가 가능해졌다. 예컨대, 수요와 공급이 아주 작은 품목들이 거래되는 ‘긴 꼬리(long tail)’ 시장이 나타났다. 

여행객들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가정들을 맺어주는 사업이나 택시 운전자들과 승객들을 맺어주는 사업은 이미 크게 성공했다. 2) 창업비용이 크게 낮아졌다. 3) 범지구적 시장의 출현으로 성공적 기업들은 아주 빠르게 성장한다. 4) 판을 흔드는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 점점 많아진다.

이제 소비자들의 욕구를, 흔히 소비자 자신들도 모르는 욕구를, 효율적으로 충족시킬 길을 먼저 생각해낸 사람들이 성공적 기업을 일으킬 가능성은 점점 커진다. 5) 자연히, 앞선 기업들의 선점 효과가 점점 짧아진다. 6) 모든 시장들에서 승자가 이익을 거의 독식하는 현상(winner-take-almost-all)이 점점 뚜렷해진다.


유동적 사회의 출현

이런 변화들은 사회가 유동적으로 되면서 나온 현상들이면서 사회의 유동성을 늘리는 데 기여한다. 앞으로 인공지능의 가파른 발전은 사회의 유동성을 점점 늘릴 것이다.

사회의 유동성이 늘어난다는 것은 개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진다는 얘기다. 유동성의 원 뜻이 바로 그것이다. 유체는 고체보다 분자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이런 변화는 이미 여러 해 전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 정치가 자크 아탈리가 주목한 현대 사회의 “유목민화”는 대표적이다.

갑자기 유동성이 늘어난 사회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개인들을 유목민에 비긴 것은 멋진 비유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 우버 택시의 등장은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형 서비스나 신산업, 업종의 등장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대담한 상상력이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사회의 유동성이 커진다는 사실은 개인들의 선택이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신분과 관습의 제약이 많이 사라지고, 정보 비용이 실질적으로 사라지고, 빠르고 싼 교통 수단이 나오고, 짝 찾아주기 기술이 발전하면서 보통 사람들도 사회적 및 지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거의 모든 일들에서 자신의 필요와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직업과 직장과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일들에서 그런 선택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 선택들의 가능한 조합은 한 작은 집단의 경우에도 천문학적 수준에 이른다.

이런 사정은 사회 체제에 대한 근본적 함의를 품었다. 1920년대 초엽 사회주의가 실제로 수립되기도 전에, 미제스는 사회주의 체제가 생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시장은 본질적으로 방대한 정보 처리 기구인데,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을 대신할 중앙계획기구는 정보 처리에서 너무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이어,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의 경이로운 통찰은 70년 뒤에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 증명되었다.

이제 개인들의 정보처리 능력이 엄청나서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에 관해서 선택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사회에서 사회주의적 체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의 계획과 규제는  점점 비현실적이고 비능률적이 되어간다. 

점점 유동적이 되어가는 사회는 정부의 몫을 되도록 줄이고 시장을, 즉 개인들의 선택들을, 늘려야 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확고하게 떠받친다.


사회 발전의 평준화

사회과학의 발전은 사회 발전을 위한 효과적 처방을 가능하게 했다. 사회 발전의 바탕은 경제 발전이다.

경제 발전은 경제 영역이 다른 영역들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야 가능하다. 경제 영역의 독자성은 재산권의 확립을 통해서 얻어진다. 달리 말하면, 시장 경제의 이상에 가까운 사회일수록 더 빠르게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 

20세기 중엽까지도 널리 퍼지지 않았던 이 소중한 지식은 이제 온 세계가 공유한다. 덕분에 시장 경제를 채택하고 발전시킨 사회들은 그렇게 하지 않은 사회들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했다.

이제는 앞선 나라들과 뒤진 나라들 사이의 격차가 빠르게 줄어든다. 세계가 점점 하나로 통합되면서, 국경은 점점 낮아지고 성기어진다. 덕분에 점점 많은 정보들이 점점 쉽게 국경을 넘는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다시 국경을 더욱 낮추고 성기게 만든다. 정보 비용이 실질적으로 사라졌다는 사실과 겹쳐, 이런 상황은 후진국들이 선진국들을 따라잡는 일을 점점 쉽게 만든다. 앞선 기업들의 선점 효과가 점점 줄어드는 현상이 국가들 수준에서도 나오는 것이다.

뒤진 국가들이 앞선 국가들을 따라잡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은 잘 알려졌다. 반 세기 전에 나온 앨릭잰더 거셴크론의 ‘후진성 가설(Backwardness Hypothesis)’은 여러 나라들이 경험으로 잘 증명되었다. 

정보와 지식이, 특히 지식에 관한 지식이, 점점 늘어나고 정확해지면 당연히 시행착오가 줄어들고 단숨에 최신 기술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점점 많은 사회들이 경제 발전에 성공할 것이고 나라들 사이의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 것이고 세계는 모든 면들에서 보다 균질적으로 될 것이다.

이런 사정이 품은 뜻들 가운데 우리에게 특히 큰 중요성을 지닌 것은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과 인도가 지닐 국력이다.

기술 수준에서 미국이나 유럽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면,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아 시장이 큰 두 나라의 국제적 위상은 무척 커질 것이다. 이미 중국의 그림자 아래 놓인 우리로선 깊은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대담한 상상력의 중요성

앞으로 변화는 가속되고 개인이든 기업이든 나라든 미래를 예측하기는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환경이 거의 변하지 않았던 원시 시대에 형성된 터라, 우리의 뇌와 마음은 그런 변화를 상상하기 힘들다. 어느 사회에서나 늘 부족한 자산은 상상력이다.

우리 사회처럼 젊은이들에게 그저 안정된 직업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가르치는 사회에선 특히 그렇다.

다른 편으로는 대담한 상상력으로 낯선 미래를 예측하면 우리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불안해진다. 이미 우리는 우리 마음에 너무 낯설게 다가오는 환경에서 사는데, 더욱 낯선 사회가 오리라는 전망은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한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삶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프랑스 격언대로, “바뀔수록 같은 것”이다. 

미래를 대담하게 예측하려는 노력은 사회를 활기차게 만들고 방향 감각을 지니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옳은 예측을 통해서 미래를 맞을 준비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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