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의 진실,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
“연평해전의 진실,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
  • 이성은 객원기자
  • 승인 2015.06.2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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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평해전> 김학순 감독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면 그들의 전사(戰死)는 무의미하다. 기억한다는 것은 그분들이 있었기에 감사하다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조국의 미래는 무엇일까?’라는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 

“연평해전에서 유가족들은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었죠.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면 그들의 전사(戰死)는 무의미할 뿐이에요. 우리가 그분들을 기억해야 의미가 있는 건데, 기억한다는 것은 그분들이 있었기에 감사하다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왜 일어났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태어났고, 우리의 조국의 미래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는 차원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애국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입식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사람들이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나라의 소중함이 자연스럽게 싹트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해지길 바란 겁니다.” 

▲ 영화 <연평해전>의 김학순 감독

잊혀진 역사였던 ‘제2의 연평해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학순 감독이 7년에 걸쳐 만든 영화 <연평해전> 때문이다. <연평해전>은 개봉 5일 만에 143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뜨거운 관심 속에 영화가 흥행하면서 기억 속에 사라졌던 제2 연평해전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의 움직임도 벌어지고 있다.

개봉 직후 김학순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개봉 초반부터 관객들이 내놓는 뜨거운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이 정도로 좋은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영화를 많이 찾아주시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영화를 통해 전사자와 유가족분들에게 무언가 해드리고 싶었던 것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영화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졌을 연평해전 전사자 유가족들과 국방부를 관계자들은 영화를 보고 김 감독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영화를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사실 유가족분들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영화가 잘 만들어지지 못해서 사람들이 영화를 외면하면 연평해전이 또 다시 잊혀질 수 있다는 걱정들을 많이 하셨죠. 그런데 영화가 다 만들어지고, 관람을 하신 후에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안도가 되었죠.”
 

돈 없어 촬영 중단하기도 

사실 영화 <연평해전>은 제작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 주제에 대한 무관심과 정치적 요소가 담겨 있다는 시선 속에서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투자를 구하기 위해 많은 분들을 만나고 협조를 구했는데, 처음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부담스러운 반응들을 보였어요. 저는 이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정치적인 것과 전혀 무관하게 전사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담아내고, 기억하기 위해 기획한 것인데, 분위기가 좋지 않더군요.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분위기 때문에 투자가 안 된 거죠.

한계에 부딪쳤지만 무조건 촬영부터 시작했습니다. 모든 걸 진해 바다에 나가서 찍었어요. 3D 카메라로 촬영을 했는데,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촬영이 잘 될 리가 없죠.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할 쯤 제작비가 바닥나기 시작했어요. 계속 고민하다가 2013년 6월쯤에 촬영 중단을 결정하고 모두 서울로 올려 보냈어요. 스태프나 배우들에게도 ‘이제 투자를 받아야하는데,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확답을 줄 수 없으니 다른 작품을 해도 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결국 영화는 중단됐다. 언제 다시 촬영이 재개될 수 있을지 감감했다. 김학순 감독은 영화 제작이 힘들어지면 다큐멘터리로 만들 생각까지 했다. 그러던 중에 마지막으로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서 영화를 제작하자는 것이었어요. 우리나라의 1970~80년대 영화 중에 시민들의 모금을 받아서 영화를 제작한 사례가 있는데 그게 떠오른 거죠. 그래서 이 영화가 어떤 영화고, 왜 꼭 만들어야 하는지 글을 써서 크라우드 펀딩 업체에 부탁을 했어요. 그런데 예상 외로 반응이 뜨거웠어요.

며칠 만에 4000만 원이 모였고, 한 달 안에 초기 목표액인 1억 원을 모았습니다. 2차 펀딩 때도 한 달 안에 1억 원이 모였어요. 3차는 영화 사이트에서 자체 펀딩을 진행했는데, 6억~7억 원이 모였어요.

그 후에는 연평해전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관련된 칼럼도 나오면서 전국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각계각층에서 후원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죠.” 
 

해군부인회 바자회로 3억 원 모아 

펀딩 후에 해군부인회에서 바자회를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김 감독은 바자회 규모가 그렇게 클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고, 해군부인회도 전국에서 1억 원 정도 모금을 예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 기업에서 물건을 후원해주고, 도움도 줘 바자회를 통해 3억 원 정도가 모였다. 

바자회가 끝난 후에도 “영화 제작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해군 측에 후원을 하겠다고 하는 전화가 계속 왔다. 그 돈을 다 모으니 10억 원이 되었다.

김 감독은 제작비 마련을 위해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는데, 사연을 들은 은행 측도 “대출보다는 투자를 하겠다”고 나서 대규모 금액을 투자 받은 셈이 되었다. 이런 곡절 끝에 배급사가 선정되었고, 비로소 영화 제작의 모든 요건을 다 갖출 수 있게 되었다. 

▲ 해상 촬영 중인 실제 참수리 357호 358호(왼쪽), 실물 크기로 직접 제작한 고속정 세트(오른쪽)

제작비가 없어 촬영 중단 사태까지 벌어졌던 영화 <연평해전>은 국내 영화사상 최대 규모의 크라우드 펀딩과 후원금 유치에 성공, 3D 작업에 돌입할 수 있었다. <연평해전>은 이러한 투자를 바탕으로 스튜디오 세트 제작이 가능해졌고, 컴퓨터 그래픽(CG)을 사용하게 되면서 제작의 질적 수준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영화는 제작 수준 뿐 아니라 스토리 구조에서도 실제 연평해전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의 평이 실제 전투 장면과 비슷하다고들 이야기 하시는데,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제가 당시 연평해전 전투 현장에 없었고, 그 중요한 전투 장면을 대충 상상해서 만들 수도 없잖아요.

철저한 고증을 통해 적으로부터 어떻게 공격을 받았고, 우리 해군은 어떻게 대응을 했고, 어떻게 전투가 종결이 되었는지를 담아냈습니다. 전투에 참전했던 병사들과 장교들, 부사관들을 만나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들었습니다. 전투가 벌어지면 자기가 서 있는 주변밖에 볼 수가 없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 때문에 상황에 따라 약간씩의 개인차는 있었어요. 당시 함교에서는 이희완 소령, 전창성 전자장, 권기형 병장이 전체 상황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분들의 이야기를 다 들었고, 갑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갑판장의 이야기를 듣고, 기관실, 통신실 등등에 계셨던 분들의 이야기들을 모두 취합을 하여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완성했습니다.” 

해군 수병 출신인 김 감독은 전투 과정에서 북한 경비정이 포를 어느 방향으로 발사했고, 우리 해군은 어떻게 대응을 했고, 고장이 난 포는 무엇이고, 기관은 어떤 식으로 공격을 받았는지 등등을 상세히 담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촬영을 디테일하게 한 후 편집 과정을 거치고 나니 실제 전투 시간과 거의 같은 30분 분량이 나왔다. 


인간과 가족에 포커스 맞추고 싶었다 

그는 ‘제2 연평해전’이 대화와 전쟁이 공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단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사건이라고 이야기했다. 

“얼마 전에 독일 외신기자가 ‘이 영화가 통일에 얼마나 기여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하더군요. 저는 ‘실제 그 당시에 일어났던 팩트(fact)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답했어요.  

6‧25 전쟁 이후 우리는 북한과 한편에서는 대화와 협상을 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끝없는 전쟁을 벌여 왔습니다. 제2 연평해전이 벌어진 2002년이 그런 아이러니를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죠. 한쪽에서는 월드컵 축제에 젖어 있고, 한쪽에서는 목숨 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거죠.”

그는 영화 <연평해전>에 대한 이념 논쟁과 정치적 해석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저는 <연평해전>을 만들면서 이 영화가 좌우 대립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간극을 좁히고 한뜻으로 모아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치적인 면보다는 인간과 가족에 포커스를 맞추기를 바랐습니다.

좌우,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가족이 있는데 가족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면 못 풀게 뭐가 있겠습니까. 자꾸 정치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니 이상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김학순 감독은 영화 <연평해전>을 통해 국민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 

“연평해전에서 유가족들은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었죠.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면 그들의 전사(戰死)는 무의미할 뿐이에요. 우리가 그분들을 기억해야 의미가 있는 건데, 기억한다는 것은 그분들이 있었기에 감사하다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왜 일어났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태어났고, 우리의 조국의 미래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는 차원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애국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입식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사람들이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나라의 소중함이 자연스럽게 싹트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해지길 바란 겁니다.”
 

“영화 통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모습 보여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그가 계획하고 있는 영화 인생의 그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저는 영화에서 한 장르에만 국한된 활동을 하지 않았어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실업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다뤘었고 여기까지 왔죠. 저는 70~80살이 되어 거동을 못하더라도 시나리오를 쓰고, 손으로 그린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극장에서 개봉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현장에 나가지 못하고, 제작비가 없더라도 나는 끝까지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해요. 후배들에게도 그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어요. 창작하는 사람들은 말보다는 실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영화 <연평해전>을 만들면서 대중들의 많은 우려 속에서도 항상 속으로 생각했던 건, 선입견 갖지 말고 영화가 개봉하면 영화를 보고 판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말보다 실천이라고 하잖아요. 말보다 영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걸 보고 판단하고, 평가하라는 거죠.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영화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종군위안부 문제도 오래된 우리의 역사이고, 최근의 천안함 피격 사건도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슬픈 역사뿐만 아니라 통쾌한 역사도 다루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힘으로 국민들을 구출해낸 ‘아덴만 여명작전’같은 주제를 다루고 싶습니다. 영화를 통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모습, 힘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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