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개혁 위해 누가 횃불을 들 것인가?
국회 개혁 위해 누가 횃불을 들 것인가?
  • 남시욱 편집고문
  • 승인 2015.07.0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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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의 정론직필] 국회의 입법권 남용과 민주주의 파괴

더 이상 ‘제왕적 대통령’이 아닌 박 대통령과

최근 더 힘을 과신하는 ‘제왕적 국회’의 대결, 어디까지 갈까?

국회법 개정안 파동이 청와대와 국회 간의 갈등 뿐 아니라 새누리당 내분이라는 정치적 후폭풍을 불러와 국민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기는 하나 국회법 개정안이 몰고 온 이번 사태의 본질이 왜곡되거나 희석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는 두 가지 점에서 한국 의회민주주의의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첫째, 국회법 개정안 파동은 그 동안 입법권 남용으로 ‘제왕적 국회’라는 별명이 붙은 비대화한 의회 권력이 대통령과 정면충돌한 것이다. 그 배경은 국회가 정부의 법률 시행령에 대한 사실상의 수정 변경 요구권이라는 새로운 제도적 통제 장치를 마련하려는 데 있었다. 

민주화 이후 상대적으로 약체화한 행정부에 군림하려는 이 같은 국회의 움직임은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라는 격렬한 비난과 함께 거부권 행사라는 초강수의 제동에 부딪치고 말았다. 

과거 정권에서도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예는 종종 있었다. 가까운 예로 2013년 1월 여야(與野) 합의로 의결한 세칭 택시법안을 이명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다.

국회 측은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해 연간 1조 원 이상의 국고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게 했으나, 행정부 측은 이 법안이 국민의 상식에 부합되지 않는 입법권 남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때도 국회 측, 특히 야당인 민주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반발했지만 곧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 지금 한국 정치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다수결 원리가 작동을 멈춰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극심한 헌정 혼란에 빠졌다.

국회의 입법권 남용 사례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그 때와 달랐다. 취임 2년여 만에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처음으로 격분한 모습을 보인 박 대통령은 이 법안이 ‘국정의 심각한 지체와 퇴행’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이어 여야 지도자들을 향해 “(국민의)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격앙했다. 박 대통령은 또한 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도 직접 거명해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얼마나 노력했는지 의문이라고 힐책했다. 

이번에 청와대가 밝힌 국회의 입법권 남용 사례는 상임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인 연 500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도로법안과, 연 1조4000억 원이 소요되는 국가유공자 예우법안이 대표적이다. 두 건 모두 예산 대책은 전혀 없는 선심성 법안들이다. 

사실 국회의 입법권 남용 사례는 2011년의 예술인 복지법안과 청원경찰관 입법 로비 사건인 청목회 사건으로 기소된 동료 의원들이 면소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정치자금법 개정안, 2012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면소 판결을 위해 사후 매수죄 조항을 수정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발의에서부터 최근의 세칭 김영란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국회의원들에게는 여러 특혜를 준 사례 등 모두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국회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선심성 법안을 마구잡이로 발의한 결과 19대 국회 들어 집계된 법안 발의 건수(1만4387건)가 이미 18대 국회 전 기간의 발의 건수(1만3913건)를 넘어섰는데, 그 85%가 의원 발의 법안이다. 

박 대통령은 유효 투표 51.6%의 득표를 얻어 당선된 다수파 대통령이자, 자신이 만들다 시피 한 새누리당은 과반수보다 10석이나 더 많은 절대 다수의 원내 세력인데도 불구하고 국회의 비협조 때문에 조기 레임덕 상태에 빠질 위기에 봉착했다. 이 점은 박 대통령의 소통 부족 리더십을 인정하더라도 엄연한 객관적 사실이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 파동 때도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박 대통령이 국회를 능멸하고 모욕했다”고 오히려 기세가 등등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 시행령 11건의 명단을 공표하고 이번 기회에 반드시 이들을 바로 잡겠다고 다짐했다.  

민주화 이후 더 이상 ‘제왕적 대통령’이 아닌 박 대통령과, 최근 더 힘을 과신하는 ‘제왕적 국회’의 대결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국민들은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民意의 전당’ 아닌, ‘정치꾼들 야합의 전당’ 

둘째, 이번 사태는 말썽 많은 ‘국회선진화법’이 한국의 후진적인 정치 풍토를 감안하지 않고 겁도 없이 도입한 사이비 ‘합의 정치’ 실험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입증했다. 오히려 이 법으로 여당이 왜소화하고, 야당이 거대화해 국회가 ‘민의(民意)의 전당’이 아닌, ‘야합의 전당’으로 전락했다. 이 법은 극약처방이 아니고는 치유가 어려운 ‘한국병’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2013년 18대 국회 회기 마지막에 통과된 이 법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 원칙을 폐기한 입법권 남용의 대표적인 예다. 헌법 49조가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한 것은 국회의 단순과반수를 원칙으로 하는 다수결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이 규정은 국회의 운영을 사실상 합의제로 변질시키고 이로 인해 다수파가 소수파의 볼모로 전락시킨 국회선진화법을 위헌(違憲)이라고 하는 주장에 설득력을 준다. 

근대 민주주의 사상의 선구자인 존 로크는 그의 <정부에 관한 두 편의 논문>(1689)에서 다수결 원리에 관해 명언을 남기고 있다.

그는 “사회는 오직 그 구성원 다수의 의사와 결정에 의해서만 비로소 일체로서 행동할 수 있다”고 갈파한 다음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 사회는 하나의 조직, 하나의 공동체로서 행동하면서 존속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그의 예언은 300여 년 후의 한국의 정치판에서 놀라울 정도로 적중했음이 입증된 셈이다. 

지금 한국 정치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다수결 원리가 작동을 멈춰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극심한 헌정 혼란에 빠졌다. 이 ‘한국병’을 하루 빨리 고치지 않으면 환자가 위태롭게 된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후 나타난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의 발언이 워낙 충격적이었던 탓으로 얼마 전까지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박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주문했던 언론마저도 그의 리더십 행태를 비판한 점이다.

이들 언론은 박 대통령이 과거 국회의원 시절에 문제의 국회법 개정안과 유사한 법안의 발의에 두 번 참여했으며, 그가 새누리당 대표이던 시기에는 국회선진화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명박 대통령이 열심히 추진하던 세종시의 과학도시화 계획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연설을 본회의장에서 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를 소리 높이 질책한 박 대통령에게 지난 날 정치적 실책이 있었다면 언론의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정치적 역풍을 맞아 그의 리더십에 상처가 나고, 경우에 따라서 조기 레임덕 현상이 생기는 경우 국가의 장래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국회를 혁명적으로 개혁하려면 
 
국민을 더 안타깝게 하는 사실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격정적인 담화가 있은 다음에도 새누리당 수뇌들이 털어놓은 국회의 어두운 미래상이다. 

김무성 대표는 “국회선진화법 아래에서 야당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밝혔으며 유승민 원내대표는 “국회 사정상 야당이 반대하면 꼼짝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그 야당은 한마디로 다음 총선 승리에 이은 대권 재탈환 이외는 별로 관심이 없는 지도자들이 이끌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 이 답답한 사태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근본적인 방법은 국회를 혁명적으로 개혁하는 작업이다. 헌법재판소에 계류된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지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거나, 다음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 규정의 개정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데 있다. 그 때까지는 가능한 당장의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국회개혁자문위가 5개월의 진통 끝에 마련한 개정안은 여야 간 이견이 없는 무쟁점 법안의 신속처리제, 연중 상시 국회,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축소 등 10개 개선 방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야는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겠다”는 등의 의례적 말만 되풀이했다. 국회 개혁을 위해 누가 횃불을 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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