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안 읽어서 문제라고?
책을 안 읽어서 문제라고?
  • 미래한국
  • 승인 2015.07.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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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의 문화코드로 본 세상

솔직히 나는 국민들이 책을 안 읽어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읽을 사람은 다 읽는다. 말려도 읽고 방해해도 읽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세상을 끌고 간다. 어설프게 한 독서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미래한국 편집위원

한국인은 왜 이렇게 책을 안 읽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읽는 사람이 많으면 그 이유를 역으로 추적 가능하지만, 안 읽는 이유는 추적을 시작할 지점이 없다. 

더 쉽게 예를 들자면 공부 잘하는 애가 왜 잘하는지는 평소 습관을 보면 된다. 못하는 애는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른다. 하여간 안 읽는 건 확실하다. 

1인당 연간 독서량이 세계 200위니 하는 건 사실 별 의미가 없다. 100위나 200위나 꼴찌나 큰 차이 없다. 반에서 20등 밑으로는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는 이유와 같다. 

책을 안 읽는 이유는 연령대별로 봐야 한다. 20대까지는 입시와 취업이 독서 유무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의 중고등학생이 책을 읽는 이유는 국어 단어와 고전 요약과 토론 비법과 공부 기술(연상 암기 등)을 익히기 위해서다. 

20대부터는 취업과 관련된 책만 읽는다. 시험 문제에 나올 가능성이 있는 조각 상식만 늘어놓은 책이 전부다. 

정리해 보자. 한국 사회는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사회 분위기를 구조적으로 조장한다. 고전을 읽지 않고는 대학을 갈 수 없는 나라, 고전을 읽지 않고는 대학 졸업이 불가능한 나라, 고전을 읽지 않고는 취업이 절대 안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은 아니다. 

책을 안 읽어도 되는 나라 

30대부터는 습관이다. 이전까지 안 읽었으니 새로 읽기 시작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세상은 너무 재미 있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지식은 필요하고 교양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중의 하나다.

이들은 책을 읽는 대신 저자를 초청해서 강연을 듣는다. 인터넷에서 관련 동영상을 찾아서 본다. 그러니까 책을 눈으로 읽어서 뭔가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기만 한다. 

미안하지만 이 행위는 TV 시청과 별 차이가 없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과정에 의문과 반성과 사유의 두뇌활동이 꾸준하게 개입되는 것이다. 지식을 듣는 것과 뇌를 사용하는 것은 같은 영역의 활동이 아니다. 

우리 민족은 원래 책을 안 읽었을까.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기록을 보아도 먹고 놀기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만 나온다. 책을 읽는 건 사대부들만의 권리이자 의무였다. 과거 시험이란 게 있었으니까, 그리고 아랫것들을 주자학으로 압박하고 눌러야 했기 때문에. 

사대부는 전체 인구의 10% 안팎이었다. 90%는 읽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읽을 시간도 없었다. 중요한 건 그 사대부들이 읽은 게 무엇이었는가이다. 

연간 독서량을 나라별로 보여주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 건 독서량이 아니다. 정말 따져야 할 것은 ‘무엇’을 읽는가이다. 1년 동안 홉스와 로크 두 권을 읽은 것과 해리포터 시리즈 전부와 자기 계발서 20권을 읽은 것 중 가치가 있는 독서는 어느 쪽인가. 해서 단순한 수치로 나열한 나라별 독서량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라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세인트존스 대학은 학과나 전공이 없다. 커리큘럼은 4년 간 고전 100권 돌파가 전부다. 세인트존스 대학 신입생 중 고교 성적이 상위 10% 안에 들었던 사람은 10% 내외다.

미국의 명문대 벨트인 이른바 아이비리그는 거의 100%가 상위 10% 출신이다. 명백하게 우등생과 열등생의 경쟁이다. 4년 후 전세는 역전된다. 세인트존스에서는 학자와 사상가들이 배출된다. 아이비리그에서는 월급쟁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미국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차이는 학비의 고저(高低)가 아니다. 공립학교에서는 고전을 거의 읽히지 않는다. 사립학교에서는 고전 읽기의 비중이 대단히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립학교의 목적은 시민이나 노동자를 배출하는 것이다. 사립학교의 목표는 사회 리더의 배출이다.  고전 읽기를 권하지 않는 부모가 있다면 친부모가 맞는지 의심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 한국인의 연간 독서량이 세계 200위라고 한다. 책을 읽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청소년들에게 좋은 책을 선별해 읽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아무 책이나 읽으면 되지 고전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누가 그랬다. 고전이 없으면 우리는 모든 문제를 처음부터 다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고전은 세월과 사유의 압축이다. 책 읽는 문제는 학교 몇 곳과 기업 한 두 개만 정신 차리면 해결된다.

이른바 ‘스카이(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지칭)’에서는 고전만 가르치고 삼성과 현대에서 그걸 읽은 사람만이 입사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도입하면 끝이다. 다 따라온다. 

솔직히 나는 국민들이 책을 안 읽어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읽을 사람은 다 읽는다. 말려도 읽고 방해해도 읽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세상을 끌고 간다. 그리고 어설프게 한 독서는 안하느니만 못한 독서다. 사회과학 서적 나부랭이 몇 권 읽고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불평을 달고 다느니 차라리 안 읽는 게 낫다. 

내가 걱정하는 건 전체 소비량이 줄기 때문에 내 책이 안 팔리는 것이다. 공부가 짧아 대중적인 글 밖에는 못 쓰는 데, 그 대중이란 것들이 안 읽으니 걱정인 것이다. 국민 전체의 지력(知力)이 떨어지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그게 왜 걱정인지 모르겠다. 그러면 그냥 망하면 된다. 그리고 꼭 망한다는 법도 없다. 

스마트폰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세다. 인류 역사상 가장 멍청한 세대가 등장했고 그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려되는 건 이른바 리더가 될 아이들조차 시시한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그건 문제가 좀 있다. 그런 세상에서는 올바른 사회적 아젠다 설정이 불가능하다. 리더가 될 아이들에게는 좋은 책(결국 고전이다)을 필수로 읽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럼 나머지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는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라는 멋진 대사가 나온다. 나머지는 내 알 바 없다. 자기가 망하겠다는 데 굳이 나서서 간섭하기 싫다. 사람은 자유 의지에 따라 살고 자기 노력에 따라 보상받으며 거기에 맞춰 인생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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