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광복군을 아십니까?
여성 광복군을 아십니까?
  • 이성은 객원기자
  • 승인 2015.10.1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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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발굴] 여성 광복군 이야기

광복군 중 여성이 20%. 대부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의 가족들

지복영, 권기옥, 남자현…. 이들은 일제 시기에 항일 운동을 벌였던 여성 광복군들이다. 지복영은 한국광복군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딸이다. 그녀는 광복군 제3지대에 배속되어 대원을 모집하고, 적군의 정보를 수집하여 군사 전략을 세웠다.

권기옥은 공군으로 참전하여 전투기를 조종했던 우리나라의 1호 여성 비행사, 남자현은 영화 <암살>의 여자 주인공 안옥윤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소속되어 일본 총독 암살을 시도했다. 

여성 광복군들은 남성들과 동일하게 군사훈련을 받았고, 목숨 건 각종 활동에 투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는 여성 광복군이라는 용어가 낯설게 느껴진다. 광복군 중에 여성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조차 생소하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여성 광복군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월 황인자 의원(새누리당)은 국가보훈처와 함께 ‘통일의 길, 한국 여성독립운동에서 찾다’를 주제로 국회에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토론회에서 진행되었던 발제문들을 모아 지난 8·15 광복절에 토론회 주제와 동명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여성 독립운동가를 ‘남자’로 표기

이 책은 전체 여성 독립운동가의 생몰연도와 포상연도, 훈격과 운동계열 등을 정리 수록하고 있다. 기존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는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가 주를 이뤘기 때문에 위와 같은 부분을 다루지 못했던 만큼 남다른 의미가 있다. 

여성 광복군 토론회 개최와 단행본 발간의 주역 황인자 의원은 광복군 내에서 여성들이 차지했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경(重慶·충칭)에서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언문에는 ‘남과 여와 노와 소가 모든 계급자 모든 종파를 물론하고 일치로 단결하여…’라며 남녀평등을 강조하고 있는데, 광복군 창설 과정에서도 여성을 적극 수용했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위치했던 중경에는 우리 민족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과정에서 지청천·김학규·이범석 등 군사 간부들, 중국 군관학교를 졸업한 한인 청년들과 함께 합류한 여성들은 대부분 임시정부 요원의 가족들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 소집된 30여 명의 대원 중 6명이 여성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전체 광복군 556명 중 여성이 20%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여성 광복군의 실체가 왜 이렇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유는 사료의 유실과 연구 부족이다. 일부 여성 지사들은 공로를 인정받아 추서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여성 광복군들이 활약상을 입증할 명확한 사료가 보존되지 않아 증거 부족으로 서훈을 받지 못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사료와 연구가 부족하다보니, 유공자의 성별이 잘못 기재되는 등 웃지 못 할 해프닝들이 벌어지고 있다. 황인자 의원의 설명이다. 

▲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에 앞장서고 있는 황인자 의원.

“충북 진천 출신의 임수명 애국지사는 만주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을 지낸 신팔균 장군의 아내이자, 평생을 비밀문서 전달과 군자금 모금에 힘쓰셨던 분입니다. 이미 공적을 인정받아 포상까지 받았죠. 문제는 이 여성 독립운동가의 인적 사항이 수십 년 째 ‘남성’으로 분류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후손들이 항의했지만, 오랜 기간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최근에서야 수정하여 이 분에게 여성 독립운동가로서의 명예를 되찾아드릴 수 있었어요. 

앞으로 정부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이들의 활동이나 행적과 관련된 자료를 집대성하고 기리는 작업에 앞장서야 합니다.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수집하여 한 명이라도 더 찾아내고, 작은 공적이라도 발굴하고자 애써야 합니다. 그 분들의 뜻을 기리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 시대에 여성들은 국내외에서 항일단체를 결성했고 조직적인 구국활동을 펼쳤다. 그 시초격인 국내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은 을미사변 이후 30명의 여성 의병을 모집해 의병장으로 활동했고,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 독립운동을 수행했다. 

국내에서는 송죽회와 근우회, 해외에서는 애국부인회와 한인부인회, 중경의 한국혁명여성동맹 등 수많은 여성단체들이 활동했다. 여성단체들은 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운동자금 지원을 하는 등 항일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잊고 산다 

이러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중요도 있는 활동들이 관심과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황 의원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자 선조들의 피와 땀이 일궈낸 결실입니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잊고 삽니다. 특히 역사의 곳곳에서 드러난 한국 여성의 위대한 행적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채 묻히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황 의원은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활동상의 뿌리가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항일 운동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들의 활동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통일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여성은 국권 회복과 독립운동에 앞장섰고, 일제 침략과 근대화, 독립운동, 광복과 건국 과정에서 진취적인 활동으로 민족 통합의 주춧돌을 놓은 주인공 역할을 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한 그분들의 활동을 되새겨 통일로 향하는 길목에서 국민 화합과 통일의 원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현재 정부로부터 독립 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서훈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전체 독립운동가의 약 2%에 해당하는 266명이다. 하지만 여성 독립운동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서훈을 수여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훈체계에는 갖가지 문제점들이 발견되고 있다. 독립운동을 펼친 사실을 입증할 만한 자료가 있는 인물이 선정에서 누락되는 사례가 발생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자신의 선조는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다고 양심 고백을 하기도 했다. 

이런 차원에서 여성 광복군을 포함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 작업이 본격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번에 발간된 ‘통일의 길, 한국 여성독립운동에서 찾다’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출생지도와 활동지도, 포상 현황 등을 상세히 수록하고 있어 향후 여성 독립운동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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