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지평 넓힌 박근혜 정부
외교 지평 넓힌 박근혜 정부
  • 미래한국
  • 승인 2015.11.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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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한미(韓美) 정상회담에서 자신의 중국 경사론(傾斜論)을 불식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월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과 확대 오찬회담을 가진 뒤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중국과 아주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을 미국은 원한다”면서 “한국이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중국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밝혔다. 

▲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 미래한국 고문

오바마는 또 “박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만나면 미국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시 주석이 (9월 방미 때) 여기서(백악관에서) 내 음식을 먹고 함께 건배도 하면서 오래 대화도 나누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 역시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한미 관계와 한중(韓中) 관계가 양립 가능하다고 말했으며, 한국 정부의 대(對)중국 정책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의 중국 경사론을 끊임없이 퍼뜨려온 일본의 극우세력을 크게 실망시키고, 박 대통령의 대(對)중국 정책이 너무 나간다고 걱정하는 국내 일부 보수층의 우려도 씻어 주었다. 

이 같은 오바마의 언명을 국내 일각에서는 여전히 외교사령(外交辭令)이라고 평가 절하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소극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한미 정상회담 바로 전날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빌딩에서 열린 국무부의 브리핑 자리에서 일본 기자들이 집요하게 박근혜 정부의 중국 경사론을 끄집어낸 사건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일본 기자들의 끈질긴 질문 

일본 기자들은 박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서 시진핑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 선 데 대해 “한국이 미국의 이익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 아니냐”고 따지고 들었다. 이에 대해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태평양 담당 선임보좌관은 “한·중 관계와 한·미 관계는 제로섬(zero-sum)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한국과 중국 간의 관계 발전이 한미동맹 관계에 영향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일본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되자 그는 “자꾸 도돌이표 대답을 하게 되는데…”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이 점에 있어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입장은 더욱 단호하다. 그는 지난 11월 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행한 한일 두 나라 특파원과의 공동 회견에서 “한국이 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시각은 근본적인 오류”라고 못 박아 많은 한국인들의 고정관념을 무색케 했다. 

여하간 오바마 행정부의 이상과 같은 입장 표명은 박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으로 빚어진 한국 국내 일부의 우려를 씻어준 점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외교의 지평과 행동 반경이 그 만큼 넓어진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일본 조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국의 중국 경사론은 쉽게 사그라질 것 같지는 않다. 과거사 문제, 특히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한중 양국의 인식이 거의 같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11월 초의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 이를 정례화하기로 합의한 점만으로도 그 성과를 평가할 만하다. 오바마의 말없는 지원 아래 한중일 3국 정부의 리더십 발휘로 동북아의 안정 구축에 기초를 놓은 것은 이제 동북아 정세가 바른 트랙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기존 패권국가인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경제적으로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신흥 패권국가인 중국 사이에서 주체성을 지키면서 실익을 거두는 외교를 펴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당장 오바마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한중 양국관계의 양립 가능성을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미국은 중국이 국제규범과 법을 준수하는 것을 원하며 “중국이 그렇게 하는 데 실패한다면 미국처럼 한국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한국의 외교가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상대방 눈치를 보지 말고 신중하게, 그러나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진실의 순간이 바로 다가왔다. 10월 27일 미 태평양사령부 소속 이지스 구축함 라센함(9200톤)이 무력시위를 위해 남중국해로 파견된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만 해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원론적인 논평을 했다.  

“남중국해 인공 섬 용납 못한다”(오바마) 

그는 “남중국해 지역은 우리 수출 물동량의 30%, 수입 에너지의 90%가 통과하는 중요한 해상교통로로서, 우리 이해관계가 큰 지역”이라면서도 “우리는 이 지역의 분쟁은 국제적으로 확립된 규정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하며 남중국해 지역이 평화와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행동도 자제할 것을 국제회의 등 여러 계기를 통해 강하게 촉구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이 같은 청와대의 태도에 대해 너무 미지근하다는 평이 많았다. 

라센함은 예정대로 난사군도(南沙群島·스프래틀리 군도)에 중국이 건설한 수비 환초(중국명 주비자오·渚碧礁)의 12해리(22㎞) 이내 해역에 진입했다. 라센함은 무해통항 원칙을 내걸고 중국이 영해라 주장하는 이 해역을 항행하면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시켰다.  

중국은 자국(自國) 군함으로 미국 함정을 추적하면서 맞대응하는 등 강력히 반발해 일촉즉발의 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중국 측의 자제로 군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 측이 이처럼 중국에 대해 강경한 행동으로 나온 배경은 지난 9월 25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남중국해에 인공 섬을 만들어 군사시설을 만드는 건 도무지 용납이 안 된다. 그만두라”고 강력한 어조로 요청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그곳은 중국 영토”라고 맞받아치며 격한 논쟁이 벌어졌다. 만찬이 끝나자마자 격노한 오바마는 측근 보좌관을 통해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에게 연락하여 군사행동을 지시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태도는 열흘 만인 지난 11월 4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3차 아세안확대국방장관회의(ADMM-Plus)에서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한민구 국방장관은 중국의 인공 섬 문제와 관련, “남중국해에서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조항을 폐막 공동선언문에 넣어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에 찬성하는 발언을 미중(美中) 양국 국방 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행한 것이다. 

한 장관은 미국·일본·호주·필리핀 등과 함께 남중국해에서 항행·비행의 자유를 보장하고, 분쟁이 일어났을 때 무력이나 위협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행동수칙(COC)을 공동선언문에 반영하자는 데 미국 측과 뜻을 같이 했다.

그는 ADMM-Plus 본회의에서도 남중국해에서의 항행·비행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관련 당사국 간 체결한 행동선언(DOC)의 효과적이고 완전한 이행과 함께 행동수칙의 조기 체결 노력에 실질적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아세안 10개국과 한·미·중·일 등 8개국, 모두 18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이날 회의는 남중국해 문제를 논의한 뒤 점심 때 공동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필리핀·베트남·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4개국과 이들을 지지하는 미국·일본·호주 등 국가들이 전날부터 고위급 실무 접촉을 통해 문구를 조율했음에도 불구하고 ‘1대 다수’로 몰린 중국이 완강하게 거부하는 바람에 끝내 공동선언을 내지 못했다. 

중국에 ‘No’라고 말한 한민구 장관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진행 중인 영토 분쟁은 해당국과 중국이 1대1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동선언에 ‘남중국해’라는 말 자체가 들어가선 안 된다”고 버텼다. 이날 오후 중국 국방부는 “공동선언이 무산된 책임은 이 지역에 있지도 않으면서 회의에 참석한 특정 국가에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미국을 겨냥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다. 

중국 측은 남중국해 영토분쟁에 관해 제3국이 관여하는 것을 아주 꺼리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 점을 알면서 한국 측이 ADMM-Plus 회의석상에서 공개적으로 미국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중국에 대해 ‘노(No)’라고 할 것은 ‘노’라고 할 수 있는 단호함을 과시한 것이다. 

회의가 결렬된 뒤 미 국방부 발표대로 애슈턴 카터 국방 장관은 11월 5일 중국 측을 압박하기 위해 핵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를 타고 남중국해 인근을 항해했다. 말레이시아의 히삼무딘 후세인 국방장관도 카터를 동행했다.

한민구 장관의 연설이 끝난 뒤 열린 한중 국방장관회담에서 중국의 창완취안(常萬全) 국방부장은 양국 간에 핫라인을 설치하자는 데 합의하면서도 한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한 장관은 밝혔다. 

남중국해는 전 세계 물동량의 50% 이상, 원유 수송량의 60% 이상, 한국 경우에는 중동산 원유의 전량과 무역량의 90% 정도가 이 해역을 통과한다.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에는 280억~300억 톤의 원유와 7500㎦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평화적 굴기(起)를 내세우는 중국 정부는 작년부터 남중국해를 사실상 자국의 지배 아래 두기 위해 이 해역 가운데 가장 많은 섬들이 집결해 있는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힘을 배경으로 7개 인공 섬을 건설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이번에 중국 측에 분명한 입장을 밝힌 것은 오바마가 그에게 보인 협력적 태도에 대한 보답이기는 하지만 외교 지평이 넓어진 한국의 책임 있는 행동으로 국제사회에서 평가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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